18년 4월 16일의 일상 기록
봄기운이 흐린 하늘을 걷어냈다. 4년만에 4월 16일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오전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새누리당 시절 당대표실이 있던 장소에서 열렸다. 내가 국회를 출입하고 처음이었다.
길을 헤매다 회의실에 들어갔다. 백보드에는 흠칫 놀랄 말이 적혀 있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
자조 섞인 탄식과 비정한 계산이 함께 있는 문장이다. 허를 찔렸지만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 원내대표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세월호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오늘은 세월호 4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 날의 안타까운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의 아픔을 딛고 그동안 우리사회가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숙연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원내대표의 일정에 세월호 영결식 참여는 없었다. 회의가 끝난 뒤 백블에서 눈치를 보다 원내대표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오늘 3시에 세월호 영결식이 있다. 안 가시나. 원내대표는 말을 더듬으며 눈을 회피했다. 대답을 기억한다.
"그 부분은 뭐...지금 당하고 협의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제가 답변을 드릴 입장은... 당이 일정을 챙기고 있습니다."
화가 나기보단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유는 정리가 안 된다.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11시 일정을 챙겼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선배가 날 불렀다. 오늘 세월호 유족이 올 수도 있다는데? 왜요? 항의방문이라나봐. 몇 시에요 선배? 12시쯤 온대. 근데 카더라라서, 잘 모르겠어. 사회부 동기나 유족한테 한 번 확인해볼게요. 응 부탁할게.
가지고 있는 유가족 번호가 있었다. 대책위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었다. 전화를 건 적은 없었다. 12시 햇살을 받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실 줄 알았다. 6번의 신호가 울렸는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유가족이 먼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해야 하는데 대답을 망설였다.
정치적 사상을 떠나 세월호는 내게 아픔이었다. 누가 세월호를 두고 전 국민의 온갖 트라우마라 했다. 나도 자유롭지 않았다. 그 날 하루의 기억은 동영상처럼 생생히 재생된다. 촉감과 시각과 청각마저 기억나는 슬픔 속에서 나는 온전히 유족의 편이었다.
그러나 질문을 해야 했다. 영결식을 앞둔 유족에게 달갑지 않을 질문이었다. 직업이 부끄러웠다. 내가 어느 매체의 누구인지 말하는 순간 공감과 아픔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멀리 선을 그어버려진다. 그 점이 너무 슬펐다. 직업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직업을 숨기고 싶었다.
소속과 신분을 밝혔다. 달갑지 않은 응대가 돌아왔다. 질문을 했다. 혹시 한국당 당사에 항의방문을 오시나. 누가 그래요? 여기 현장에서 이야기가 들려서 여쭤보는 거다. 아니 오늘 영결식인데 어딜 가서 항의를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혹시 몰라서.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고요. 유가족은 움직일 계획 없다. 감사하다.
통화를 끊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손에 잡힐듯 느껴졌다.
도움을 준다는게 뭘까. 도움을 주지만 객관적이라는 게 뭘까. 계속계속 곱씹으며 생각했다. 답을 찾지 못 했다. 당연하지. 돌이켜보면 4년동안 언제나 그 경계를 찾고 있었다. 경계를 찾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만든 겅계에 서있고자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봄은 계속 찾아왔다. 국회의사당 둘레 철조망에는 또 한번 장미순이 올라왔다.
가방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기약 없는 상징(embl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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