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프레스센터에서 느낀 세 가지 이야기
2018년 4월 26일 오전 5시 30분.
가벼운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문을 열자 새벽 기운이 얼굴을 휘돌았다. 모처럼 차려입은 정장이 생각보다 얇아 어깨를 움츠렸다.
일산 킨텍스 제1 전시장까지는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안네데스크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줬다. 서류처리를 하고 노란 바탕의 목걸이와 회색 ID카드 한 장을 받았다. 내 사진과 이름, 매체가 써있었다. 소지품 검사와 검색대 통과를 마쳤다. 드디어 남북정상회담 메인 프레스센터(MPC)에 들어섰다.
1박 2일동안 MPC에 머물었다. 3천 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했다. 나는 6끼의 도시락을 먹었고 여덟 잔의 커피를 마셨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만큼 열심히 하려 했다. 잘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치면서도 즐거웠다. 회담 결과도 좋았다. 행복하게 기사까지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온갖 팩트는 홍수처럼 쏟아져 있다. 여기서는 메인 프레스 센터에서 느낀 '나의' 뒷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상 이번 회담에서 내가 피부로 느꼈던 공간은, 판문점이라기보단 MPC였으니까.
4월 27일 아침 8시 경.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출발했다. 축구장 1개 크기만큼 큰 MPC가 산발적으로 웅성거렸다.
"야, 간다간다" "중간에 내리네?" "저거 태극기부대 아냐?" "왜 왔대, 누가 저쪽에 가 있나?" "어, 인사한다!" "이야 악수도 다 해주네"
취재진의 손과 눈과 입이 따로 놀았다. 쉴새없이 타자를 치며 스케치를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생중계 화면을 바라봤고 입으로는 옆 동료들과 대화를 나눴다. 여기까진 취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흔해빠진 회사별 개인플레이였으니까.
분위기는 북쪽 정상이 판문점 계단을 걸어내려올 때 바뀌었다.
북쪽 정상의 모습이 처음으로, 생중계로 보이자 취재진 모두는 탄성을 질렀다. 수행원이 걸음을 멈추고 북쪽 정상은 홀로 군사분계점으로 걸어왔다. 화면을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윽고 두 정상은 콘크리트벽을 두고 손을 맞잡았다. MPC 취재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먼저 시작해 전염된 박수가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고, 모두가 함께했다.
꽤나 오랫동안 그랬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점을 사이에 놓고 고무줄 놀이를 했을 때 킥킥대는 웃음이 나왔다. 손을 잡고 걸어가자 탄성이 나왔다. 스케치를 맡은 사람도 입을 떡 벌리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감탄과 함성, 기쁨과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요상하게 공간을 감쌌다. 공간에 퍼진 감정은 1차 회담이 시작되고 두 정상이 문 뒤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그 후 취재진은 거리낌없이 감정을 드러냈다. 북측 정상이 "냉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갔거나"고 말하자 모두는 서로를 돌아보며 크게 웃었다. 산책길을 거쳐 도보다리를 건넌 정상의 모습에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30분이 넘게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누자, 취재진은 서로 무슨 대화를 할지 추측하기 바빴다.
최고봉은 단연 선언문 발표였다. 선언문은 이미 두 정상이 사인을 하기 전, 기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이미 아는 내용인데, 두 정상이 사인을 하자 MPC 취재진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박수를 쳤다. 두 정상이 나란히 연단에 서 선언문을 소개하자 항목항목마다 감탄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다"는 말에서, 일부는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엔 아무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통 취재진은 현장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선언을 하든 발표를 하든 사과를 하든 취재진은 그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기 바쁘다. 고개를 숙이는 대기업 회장 앞에서 수백 명의 취재진이 얼음장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다. 사실, 정당 대표가 취재진에게 와 "고생 많다"고 말을 해도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거나 공개적으로 '수고했다'고 답례를 보내지 않는다. 우리는 집단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관찰자니까. 그런 모습을 보아 왔고 나도 그렇게 행동했다.
취재 내용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동화된 취재진들의 모습을, 나는 4월 27일 MPC에서 처음 봤다. 그게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는 게 또 한 번 놀라웠고 신기했다.
개인적으로는 평화라던가 정의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인간 모두에게 공유되는, 그러니까 본능적인 무언가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평화의 기준은 누구에게라도 다를 수 있다 - 지구상에 내가 옳다 생각하는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게 아니겠단 생각이 MPC에서 들었다. 모두가 공유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정말 존재할 수도 있겠다.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MPC에는 (15시 통계 기준) 37개국 374개 언론사 3,071명의 기자들이 찾아왔다. 그중 내신은 176개사 2,142명이었고 외신은 198개사 929명이었다.
48시간동안 함께 있었는데, 외신 기자석에는 동양권 국가의 취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중 일본과 중국이 1,2위를 다퉜다. 홍콩과 싱가폴 등의 매체도 간혹 눈에 띄었다. 서양권에서 온 기자도 있었다. 내 예상보단 많았다. 그러나 929명이라는 외신 기자의 수에 비춰봤을 때 백인의 외모를 가진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서양권 매체 이름이 적힌 테이블 앞에 앉은 사람들은 동양계 국적인이거나 현장 상주 취재기자처럼 비춰졌다. 거두절미하면, 외신 테이블에도 검은 머리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비추어진 화면은 백인 기자들이 우선이었다. 프레스센터 외신기자들을 제목으로 찍은 사진의 주요 피사체는 주로 백인 기자였다.
그리고 반성한다. 나도 그렇게 했다. 일하는 중 외신 기자들의 참여와 소감을 묻는 인터뷰를 따러 다녔다. 외신 기자석을 온종일 돌아다녔다. 내 눈은 백인 기자를 먼저 훑고 있었다. 따야하는 인터뷰가 최소 네 개였는데, 그래도 한 두 개 정도는 백인 기자로 채우고 싶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게 더 "그림이 됐다." 화면만 봤을때도 바로 느낌이 오게 만들려면 일본이나 중국 기자보단 서양인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변명은 변명일 뿐. 결국 내 안에도 외신 기자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이 점이 조금 부끄러웠다.
킨텍스 전시장은 본래 창고마냥 뻥 뚫려있는 공간이다. 그 곳을 임시 프레스센터로 바꾼거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 지원이라는 업무는 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말 골치 아프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자들은 타고나길 성격이 좀 더러운 듯한데, 당췌 조금의 불편함이란 걸 참질 못하고 투덜거린다. 취재 자체에 대한 원활한 정보 제공이야 일적인 일이니 그렇다 친다. 다만 화장실 위치나 콘센트 개수, 인터넷 속도와 랜선, 청소와 간식, 하다못해 공기마저도 불편하다 느껴지면 거리낌없이 짜증을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쪽 업계 종사자들이 좀 고쳐야 하는 생활태도라고 생각한다.
여튼 이번에는 취재진들 사이 시설이나 취재 지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사실, 인내심 인계치가 높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불평할 게 하나도 없었다.
취재 지원 시설과 관련해 기억나는 것들이 몇 개 있어 나열해본다.
1. 내부 파리바게트 설치. 프레스센터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번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커피를 마시러 나가기조차 쉽지 않았는데, MPC 내부에 설치된 파리바게뜨가 커피와 간식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해줬다. 파리바게뜨 규모는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커피가 나오는 속도는 주문량에 비해 생각보다 빨랐고, 맛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적어도 최소치는 충분히 충족해주는 편의시설이었다.
물론 빵값은 꽤나 비쌌다. 샌드위치 반쪽에 7000원이 가뿐히 넘어 쉽게 사먹진 못했다.
2. 각종 체험관 최소화. 보통 이런 행사에는 기업 후원을 받은 듯한 온갖 체험 부스가 즐비하다. 대학 축제마냥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MPC에는 그런 체험관을 최소화했다. 입구 옆에 이산가족 관련 향수 작품 전시장이 작게 마련되어 있고, 휴대폰 충전 시설과 3D 체험관 정도가 마련된 게 전부였다.
3. 취재 지원 시설 최대화. 나머지는 오롯이 취재 지원에 집중했다. 메인 프레스룸에 넘쳐날 정도로 멀티탭을 가져다두었고, 자리마다 제공된 랜선 속도는 꽤나 빨랐다.
토론회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서 정상회담 하루 전부터 다양한 취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대여섯 개의 인터뷰 룸과 영상취재기자·사진촬영기자 공간 등을 마련해놨다. 방송기자 오디오 부스와 방송사를 위한 개별 공간도 마련해줬다. 오디오부스같은 경우는 별도 관리 인력이 있어서 혼선이 생기지 않게 세심하게 조율했다.
원활한 방송 송출을 위한 부조도 아낌 없이 갖췄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해야 하지만, 각 방송사들이 좋은 백그라운드를 깔고 중계를 탈 수 있도록 높이를 올린 중계 중계 공간을 마련해줬다. 동시통역사들에게도 상시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닥 넓지많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공간 활용과 편의시설 배치를 매우 훌륭하게 해두었다. 덕분에 하나도 불편함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3,000명이 앉아야 하는 메인 프레스룸의 테이블간 공간은 조금 좁은 감이 있었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 했다.
4. 세심한 청소. 취재진들의 시민의식이 좋은 편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커피 컵에 물통을 서너 개씩 쌓아두고 휴지도 책상에 널브러진 채 일을 한다. 일 끝나면 노트북만 챙겨서 퇴근하는 일도 다반사다.
MPC 준비위원회는 취재진이 별로 없는 새벽시간에 정말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그밖에 바닥 청소나 쓰레기통 관리는 시간대별로 해주어서 쾌적하게 일할 수 있었다. 적어도 '더럽다'는 불평은 일절 가지지 않았다.
5. 갑자기 퀄리티가 올라간 도시락. 앞서 말했듯 MPC 내부 진입 보안절차가 까다로웠다. 취재진도 언제 사안이 터질지 모르니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이런 사정까지 감안해 준비위원회 측은 미리 도시락 신청을 받았다. 센스 있게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간이 식당 공간을 MPC 내부에 마련하되 냄새가 번지지 않도록 통로를 최소화했다. 비용은 개별 회사에서 지불했다.
끼니당 10,000원대 후반의 돈을 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첫날(=정상회담 전날) 도시락 퀄리티가 별로였다. 저 가격대에 오삼불고기가 가장 비싼 반찬이라니. 불평불만 없는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기자들의 불만이 음식 주최측인 한화리조트 쪽에 들어갔을 걸로 추측된다. 주최측에서 밤을 새 도시락 메뉴를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말이다. 아침을 먹으러 가니 웬 랍스터가 도시락통에 들어있어 당황했다. 후식으로 딸기 등 과일이 나왔다. 식당 한켠에는 맛이 나쁘지 않은 드립커피와 쿠키를 담아갈 수 있는 공간까지 생겼다. 점심에는 전복구이가 등장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적어도 도시락 퀄리티에 불만은 없었다.
6. 충분한 먹을거리 수급. 회담 당일 당이 떨어지는 시간. 각종 빵이나 아이스크림 등이 취재진에게 지급됐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부분은 MPC 곳곳에 배치된 물 냉장고였다. 냉장고에는 항상 생수가 가득 들어있었다. 세심하고 즉각적인 배려 없으면 어려웠던 일이라 생각하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하게도
7. 돌발 상황 대처 능력. 3,000명 기자가 모두 판문점에 몰려갈 수 없으니 설치해둔 프레스센터다. 당연하게도 판문점의 소식을 가장 즉각적으로 MPC에 전달해주어야 했다.
워낙 1분 1초가 중요한 빅 이벤트였다. 게다가 정상간 만남이 언제 끝나는지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돌발 변수는 많고 장면장면이 중요했다. 준비위원회는 그래서, 라이브영상이 송출됐을 때 별다른 공지 없이 바로 대형 화면에 현 상황을 틀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서비스 생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기자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서비스였다. 안내원이 말 한 마디 하는 것보다 기자들은 개개인이 화면을 보고 상황을 파악해 곧바로 취재에 돌입하고 속보를 쓰는 게 더 중요하다. 그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취재 지원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쨌든, 일이 가장 중요했다.
취재 기간동안 잠은 킨텍스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
회담 당일 정신없는 취재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잘 준비를 마쳤다. 하얀 이불을 덮고 폭신한 베개에 누웠다. 느낌이 이상했다. 뿌듯함과 허무함이 교차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하게 되서 기뻤다. 하지만 판문점 현장에는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취재원 중 하나여서 나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별다를 것 없는, 다만 조금 더 큰 규모의 하루 업무일 뿐이었다.
나만 할 수 있는, 무언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야겠다
이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다. 있었던 사실 보도는 27일부로 끝났다. 모든 언론들이 비슷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보냈다. 이제 정말 중요한 분석·전망 보도가 남았다. 진정으로 우리의 발전을 그릴 수 있는 기사는, 취재진 개개인의 노력에 따라 이제부터 짜내질 것이다.
나도 이런 것들을 지치지 않고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싹 피듯 피어올라왔다.
다짐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잠들었다. 2018 남북정상회담 취재는 그제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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