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희화화시키고 땅에 떨어뜨린 '단식'이란 단어의 무게
2018년 5월 2일 오후 2시.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단상에 올라선 김성태 원내대표는 발언 막바지에 이런 말을 했다.
"전 이시간부터 야당을 대표해서 조건없는 특검 관철 놓고 무기한 노숙 단식투쟁에 돌입하겠습니다. 더이상 민주당의 몽니와 뭉개기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당시 의원들 대부분이 원내대표의 단식을 뜯어말렸다 한다. 원내대표와 친한 한 의원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가 워낙 강경했다던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본관 계단 앞에 장판이 깔렸다. 붉은색 패딩을 입은 원내대표는 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시작 몇 시간 뒤 현장에 갔다. 기자들이 열댓명에서 스무명 정도 모여있었다. 원내대표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웃고 있었다. 표정엔 여유가 흘렀다. 가까이 가서 괜찮겠냐고 말을 걸었다. 원내대표는 웃으며 "해야 하는 일이니 버텨봐야죠"라고 했다.
곡기를 끊는 단식 투쟁을 하면서 "버텨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 버틴다는 단어의 끝자락엔, 적절한 시기가 왔을 때 이 농성을 접겠다는 뜻이 녹아 있었다. 원내대표의 '무기한'은, 정말 끝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제 끝낼진 알 수 없다는 의미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내가 기억하기로 원내대표는 총 두 번, 단식을 그만두겠다고 예고했다.
첫째는 국회의장이 파행 상태의 타결점을 찾으라고 선언한 데드라인인 8일 오후 2시였다. 원내대표는 이때까지 무조건 특검 수용을 받지 않으면 단식 투쟁과 천막 농성을 종료하고 5월 국회 종료를 선언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끝내 파행됐고, 원내대표는 단식 농성을 계속했다.
두번째는 원내대표의 몸 상태가 악화된 9일 오후였다. 정치 계보로 김 원내대표의 '형님' 격인 김무성 전 대표가 나왔다. 단식 중단을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초췌해져 말도 잇지 못하던 원내대표는 "내일까지 특검 수용을 기다린다"고 말 했다. 내일 단식을 철회하겠다는 내포된 의미었다.
화가 났다. 원내대표는 본인의 고통과 상관 없이 단식을 희화화하고 있었다.
단식은 식사를 중단한다는 의미다. 입에 들어가는 곡기와 영양분을 끊어버리는 거다. 결국 단식의 최종 지향점은 죽음이다. 자살이고, 그 중에서도 아사(餓死)다.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도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그런데 먹을 게 있어도 손을 대지 않고 죽겠다는 거다. 그것도 자기의 의지로 끝까지. 단식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결기였고, 그래서 유달리도 숭고한 자살법이었다.
정치인의 단식에서 죽음이 비춰질 정도의 높은 결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치인이 단식이란 수단을 택했으면 적어도 외면으로는, 죽음의 결기를 모방하려는 시도라도 있었어야 한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와, 그렇지 않다면 (죽진 않더라도) 링겔을 맞아가며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그래야 상대편이 단식이란 행위에 겁을 먹는다. 단식의 가장 큰 무기는 단식하는 자의 의지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기(氣)다.
그러나 원내대표와 원내대표가 속한 정당은 단식을 언제 '중단'할지를 놓고 저울질했다. 아니, 지금도 저울질하고 있다. 애초에 입구와 출구를 뚫어놓으니, 기(氣)가 모일 리가 있나.
단식을 시작한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항의성 단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모두는 원내대표가 단식을 한다 했을 때 "이 사람이 당연히 단식을 그만두겠구나" 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끝이 정해진 단식에서 죽음에 이르는, 혹은 그를 모방한 결기 따윈 찾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단식은 웃음거리가 됐다.
저 사람 뭐 한대?
밥 굶는대
디톡스 다이어트네
단식이란 단어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원내대표의 단식은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사람이 노숙을 하며 밥을 일주일이나 굶는데 안 힘들 수가 없다. 원내대표는 분명, 무척이나 강한 의사로 일주일을 버텼다. 그러나 원내대표는 버티며 방어하는 거지, 결기를 다듬어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 기(氣)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농성장 모든 공간에서 그 사실이 느껴진다.
현장에서도, 사진에서도, 글에서도 느껴지는 소심함이 얼키고설켜 원내대표의 단식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원내대표의 힘듦은 그것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원내대표가 내세운 수단인 단식은 그것대로 숭고함을 잃었다.
내가 당신의 단식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또 하나 더. 당신이 단식이란 단어를 낚아채 떨어뜨린 덕분에, 이제 어떤 간절한 사람들은 최종적인 투쟁 수단을 잃었다.
사회운동가들도 단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단식은 언제나 마지막 결정이었다. 그러니까 투쟁, 점거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도 세상이 안 바뀔 때, 어느 한 명이 총대를 매고 단식에 나서는 거다. 그 단식에 "버텨봐야 한다"는 출구전략은 없다. 들어주면 단식 중단이고, 안 들어주면 죽거나 혹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었다. 그만큼 사람의 목숨을 진실로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식은 협상 상대의 목줄을 쥘 수 있었다.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으니까. 단식이 필요할 정도로 간절히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할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올 거다. 바꿔야 할게 사회의 부조리라면 단식은 적어도 동반자살이라는 마지막 카드로써라도 사회운동가들,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곁에 남아있어야 했다.
당신은 꽤나 많이 가진 정당의 꽤나 높은 지위를 가진 꽤나 높은 국회의원이었다. 그렇게 가진 것 많은 사람이 단식이란 카드를 굳이 뺏어드는 이유를, 아마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같은 당 의원들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원내대표의 단식을 지지할 수 없다. 원내대표가 희화화시킨 '단식'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다시 땅을 박차고 오를 지 이제는 알 수가 없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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