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사무실에서 바라본 시리아 내전

전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모니터와 외신을 둘러싼 긴장이었다.

by 밍경 emb

주말에는 비교적 여유롭다. 출입처 일정도 없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방송뉴스를 매일 하니 출근은 해야 한다. 당일 출근자는 당번을 정한다. 막내급과 중간급 한두 명이 출입처에 남는다. 나머지는 회사로 출근한다.


2018년 4월 14일 토요일인 오늘은 회사로 출근했다. 간단히 오전 메모 보고를 올린 후 커피를 사러 갔다왔다. 부장이 급하게 불렀다.


국제부에 파견 좀 가라


커피를 사오기 5분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군을 향해 미사일 공습을 결정했다. 국제부는 현장 취재 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보다 규모가 작다. 주말에 큰 사안이 터지니 급하게 일손을 부탁한 것이다.



짐을 싸서 국제부 사무실로 이동했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어중간하게 서 자기소개를 하려 했다. 국제부 차장급 데스크가 손짓으로 일단 앉으라며 빈 자리를 가리켰다. 인사는 생략하고, 일단 앉아서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라고 한다.


AP가 통신이니까 메인에 두고. CNN,BBC 등등 나오는 주요 영어 방송 전부 다 모니터링해주세요


모니터 두 대가 설치된 자리에 앉았다. CNN과 BBC를 양쪽에 틀고 AP 통신을 노트북에 띄웠다.


미국·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쏘아올린 미사일이 14일(현지시간) 시리아 새벽 하늘 위를 가로지르고 있다. 사진=AP


미국 참전, 공습 결정, 영국과 프랑스 참여, 동시작전 진행중, 토마호크 미사일...


사무실에 앉아서 바라보는 단어는 참 무시무시했다. 무시무시한 단어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정리해 보고했다.


뉴스는 빨라야 했고, 국제부는 뉴스를 정리해 전달해야 했다. 뉴스 시간대가 아니라도 인터넷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요구한다. 유사 상황이 터지면 속보를 쳐야 했다. 그래서 미군의 공습이 끝날 때까지는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전쟁과 죽음에 대한 긴장이 아닌, 모니터와 외신을 둘러싼 긴장이었다.



무서움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감정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자신이 사전경험이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거나,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있다고 상상할 여유가 있을 때 나온다. 나는 시리아에 있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는 비가 내리는 쌀쌀한 초봄날 따듯한 커피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텍스트로 전달되는 시리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감정이 발현되는 세 가지 상황 중 어느 것도 나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미군의 공습이 끝났다. 국제부는 한 숨 돌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점심을 먹고 오니 큐시트가 짜여있었다. 시리아 내전 상황을 정리하는 기사를 배정받았다. 외신과 기존 기사들을 뒤져서 정리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사실, 국제부 업무의 상당수가 그랬다.


내전 8년 동안 35만 명 넘는 시민들이 죽었다. 독재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대항이 분노로 이어저 반군을 결성했다. 1년도 안 돼 반군은 종교와 사상, 민족과 연령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주변의 수많은 국가들이 이권을 보고 시리아의 각 패거리에 달려들었다. 폭력이 광기가 된 종교 무장단체도 등장했다. 독재정권에서 이득을 본 러시아와 계산기를 두드린 미국은 시리아를 체스말처럼 이용해 대리전을 치렀다.


죽었다는 말 밑에는 폭격과 사망, 절망과 폐허를 담은 사진이 줄줄 이어졌다.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피해는 시민들이 떠안았다. 그 말을 사무실 구석 책상에서 썼다. 돌이켜보면 감정 없이 썼다.


여유를 가진 지금은 착잡하고 검은 안개가 낀 것 같은 마음이지만.



권위를 갖고 싶어 이 직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죽어가는 운동권의 끝자락에서 사회 운동이란 걸 했다. 그러나 나는 이기적이었다. 인생을 저당잡히며까지 가능성 없는 가치를 추구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나는 이기적이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을 뚝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 직업을 선택했다. 일종의 타협이었다.


막상 하려 하니 꽤 잘 맞았다. 그중에서도 현장에서 얻는 날것의 정보가 좋았다.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었다. 좀 더 저열해지자면, 날것의 정보 중 재미있다 생각하는 무언가를 취사선택해 대중 앞에 내놓는 선택의 과정이 짜릿하게 즐거웠다.



그러나 이 회사, 어쩌면 우리 한국 언론의 상당수 회사에 속한 국제부에서는 날것의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전쟁이나 난민 같은 경우에는 더욱 더 그랬다. 시리아 내전이 커지니 한국에서 취재진을 곧장 파견한다? 로또보다 어려운 일이다.


생전 처음으로 CNN과 AP란 언론사에 열등감을 느꼈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 짐을 싸 영상 기자와 함께 공항에서 만나고, 난민 피난 현장에서 라이브 연결을 하는 기자들이 미치도록 부러워졌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현장에서 날것의 정보를 가장 생생하게 얻을 수 있으니까.


내 부러움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세상은 돈의 논리로 흘러간다.

영어로 방송하는 공인 보도채널 CNN은 돈이 되니까 현장에 기자를 보낸거다. 영어 방송은 영어 사용권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뉴스를 만든다. 만국 공용어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준 축복이다. 반대로 내수시장 작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언론사가 CNN같이 행동하면 그 회사는 곧장 파산한다. 백지부터 전혀 다른 언어로 써내려간 돈의 논리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어도 그저 부럽고, 어린아이처럼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그저 35만 명이 사망한 시리아 내전에 대한 기사를 쓰며 마음이 아프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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