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겹따옴표가 많은 이유

책임지기 싫을 때, 기자와 언론사는 인용문구를 가져온다.

by 밍경 emb


캡처.PNG "이 말은 내 말이 아닙니다"


전문위원이 "이학영 의원 지적에 따라 한미연구소 개선안 마련을 부대의견에 넣겠다"고 하자, 박선숙 의원은 "여기서 토론할 문제가 아니"라며 반대합니다.
'감액 의견이 없다'는 발언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예산 삭감 계획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Intro


"이걸로 단신 하나 써봐"

입사 6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기사를 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원내대표의 아침회의 발언에서 주제를 뽑아 세 줄짜리 단신을 써야 했다.


뭐든지 처음은 어렵다. 고작 세 줄짜리 단신을 쓰느라 꼬박 40분을 썼다. 내가 쓴 글이 처음으로 데스킹을 받는 거였다. 안 떨릴 수가 없었다. 또, 일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첫 업무평가였다. 중요해 보이는 발언과 표현을 세심하게 골라 문장으로 엮었다.


그렇게 30초도 안 되는 단신을 써서 사수에게 가져갔다. 사수는 내 글을 정확히 3초 동안 바라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말을 너가 했냐 원내대표가 했냐"

"네..?"

"아니 겹따옴표 다 어디 갔냐고. 기사에서 취재원 발언 인용이 뭔지 몰라?"


그러니까 나는 겹따옴표를 전부 생략하고 첫 단신을 쓴 거였다. 그것도 아침회의 발언으로 처리해야 하는 단신 기사를 말이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다. 그 후 정당 기사를 쓰면서 가장 많이 쓰는 부호는 겹따옴표("")가 되었다.



언론의 두 역할: 이슈 메이커와 이슈 전달자


기사의 종류를 나누는 방법은 꽤 많다. 신문기사와 방송기사라는 포맷의 차이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스트레이트(=발생한 일을 팩트만 정리해서 쓰는 것)와 박스(=발생 사건에 대한 해석과 분석 기사)로 갈라진다. 나는 여기에 구분점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스트레이트-박스만큼 깔끔한 명칭은 생각나지 않으니, 대충 이슈 메이커 이슈 전달자라고 정의내려본다.


이슈 메이커.

시민들은 언론에게 정의로움과 사회 감시, 비판을 요구한다. 절대권력에 대한 워치독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언론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건은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이슈 메이커가 되기로 한 언론의 작품이다.


이슈 전달자.

언론에게는 발생한 사건을 전달해야 하는 의무도 함께 주어진다. 날것의 사건은 있는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고, 가져와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자가 대리자가 된다. 날것의 사건을 받아들여 기자의 판단으로 중요도를 매기고, 꿰어맞춰 예쁜 기사를 만든다. 최근 국회에서 시끄러운 개헌 공방과 관련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개헌이란 이슈가 도대체 뭔지도 모르고 각 당의 주장은 더욱 헷갈리는 상황에서, 기자는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보기 좋게 포장해 내놓아야 한다.


기사를 써 밥먹고 사는 사람이라, 기레기라는 조롱을 둘러싼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나름의 고민을 거쳤는데, 시민과 언론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시민은 언론이 이슈 메이커만 되길 바라고, 언론은 그 스스로 이슈 전달자만 되길 자처한다.





변명: 이슈 전달자 역시 필요하다


국회는 언론이 이슈 전달자적 역할을 일차적으로 해야만 하는 출입처다. 그러니까 유달리 전달자적 측면이 강조되는 출입처다.


미리 말하지만 이슈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국회의원 밑에서 아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국의 흐름이 가장 바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출입처이기 때문에, 기자는 각 정당의 새로운 움직임들(NEWs)을 포착하고 그 날의 정국 이슈를 보기 쉽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확히 들어맞진 않지만, 알 권리라는 진부한 용어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여튼 이슈 전달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부 기사에는 겹따옴표가 넘쳐난다. 이슈를 재단하는 기사를 쓰는 이상, 기사의 재료는 정치인들과 취재원의 발언이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4월 초에 갑자기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행보를 둘러싼 여야의 반응 기사(경향신문)를 보면...


자유한국당은 8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52)이 국회의원 시절 시절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혹과 관련해 “내로남불 위선정당, 김기식을 구속하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한국당은 ‘김기식 갑질 외유진상조사단’을 구성키로 하고 검찰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사의 주제와 큰 방향을 (기자의 판단 아래) 잡은 후에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60)는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식 원장 의혹이 양파껍질 까듯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불과 일주일 전 금융전문가로서 금융개혁을 늦추지 않겠다는 의욕을 보여온 기대가 있는 인사라는 청와대의 해명이 무색할 정도의 인사참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정도였다면 금융검찰인 금감원이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으로 보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해나가며 기사의 방향을 설명한다. “김기식 원장 의혹이 양파껍질 까듯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였다면 금융검찰인 금감원이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으로 보냈어야 했다” 라는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말을 인용해 한국당의 공격 포인트와 공세 강도를 최대한 생생하고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그래도 한국 언론이 너무하다며, 고질적으로 받아쓰기와 겹따옴표를 남발한다고 지적하던데... 사실 외국 언론도 이슈 전달자적인 기사를 쓸 때는 비슷한 포맷을 가진다. 트럼프가 출입기자와의 정례 만찬을 거절했다는 뉴욕타임즈의 기사 일부를 인용해보면...


WASHINGTON — President Trump will not attend the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 Dinner this year, continuing a boycott that began his first year in office, the White House announced on Friday, but the president will “actively encourage” members of his administration to go in celebration of the First Amendment.

경향신문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판단 아래 기사의 주제와 방향을 잡은 후


The president’s decision did not come as much of a surprise. Just a few hours after the announcement on Friday, the president tweeted about the “Fake News Media” and said, “so much of the media is dishonest and corrupt!”

트럼프의 관련 발언을 겹따옴표 쳐서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니까 이슈 전달자가 되는 기사에서 겹따옴표는 도저히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는 안 된다.




반성: 그러나 우리는 비겁하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겹따옴표를 지나치게 편의대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겹따옴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겹따옴표의 사전적 의미는 인용이다. 인용을 하면 어떤 사람의 말을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옮겨적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겹따옴표를 쓰면서도 겹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말을 조금씩 매만진다. 한 방송뉴스의 단신을 가져와보면...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원장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고 단독 출장에 여비서를 동행했다"며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당내 진상조사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평범한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다. 그러나 이 날 나도 원내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내가 받아친 김성태의 발언은 이랬다.


"김기식 위원장이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고 또한 동료 의원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열흘 간 단독 출장에 이례적으로 여비서를 동행하고 이런 부도덕성과 미투와 함께!! 우리 사회는 대변혁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의 금감원장 자리를 본인이 직접 사퇴하는 결심을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뇌물성 갑질 외유 진상조사단을 한국당이 구성해서 김기식 위원장이 지난 19대 국회 정무위 간사로써 그가 한 일을 저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김성태의 발언은 도저히 날 것으로 쓸래야 쓸 수가 없다. 일단 문장 자체가 비문이고 솔직히,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인건데, 초수를 줄여 정보를 담아야 하는 특성상 발언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인용문구을 해당 어절에만 쓰거나 제3의 기사 작성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둘째. 우리는 인용문구 아래 책임을 회피한다.


첫 단신으로 깨진 후 수백개의 단신을 써왔다. 그러나 데스크는 여전히 겹따옴표를 쓰라는 지적을 한다. 그럴 때 덧붙이는 말이 하나 있다. "위험한 주장은 무조건 그 사람의 주장이란 사실을 밝혀주라"는 거다.


위험한 주장이라는 말은 보도의 여파를 책임지기 싫다는 거고, 고소당하기 싫다는거고, 이 보도에서 언론사의 책임을 0%로 만들고 싶다는 의미다. 뒤집어 생각하면 책임지기 싫을 때, 기자와 언론사는 인용문구를 가져온다.


그러나 때로는 인용을 하면서도 해석을 덧붙여야 할 때가 있다. 이슈 전달자가 되면서 동시에, 해석으로 이슈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인용문구를 통해 후자를 외면한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난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Outro


몇달 전 친한 선배와 술을 마셨다. 10년차를 넘어선 선배였는데, 2차로 간 맥주집에서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기사를, 좀 더 정성스럽게 쓰자.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보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말이었다. 말진 중 말진을 앉혀놓고 '우리'라는 단어와 청유형 어미를 쓴 선배 덕분에, 정성스럽게 기사를 쓴다는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봤다.


기사는 마음만 먹으면 한도끝도 없이 찍어낼 수 있다. 형식에 익숙해지면 이게 가능하다. 주제 하나 잡고 겹따옴표 남발하면 단신 하나쯤이야 오분만에 만들어낸다. 회사원이 밀린 회계장부와 보고서를 처리하듯 말과 단어를 찍어내면 된다.


하지만 같은 주제의 기사라 해도 정성을 쏟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했습니다와 밝혔습니다, 강조했습니다와 덧붙였습니다 라는 어미들은 뜻이 천차만별로 다르다. 정치인의 말과 현안을 완벽히 이해했을 때야만이 적합한 조사를 조립해 쓸 수 있다.


시청자/독자는 찍어낸 기사와 조립한 기사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직업을 가진 후 처음 찾아온 권태기의 기로에서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선배와의 취중대화 후, 나는 기사를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야말로 이 직업을 택한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직업정신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국회를 출입하며 겹따옴표의 절대적인 비중을 줄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겹따옴표의 개수 제한과는 별개로, 꼭 필요한 겹따옴표를 쓰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세상의 이슈를 해석하는 권리를 갖는 대신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직업을 준비하며 쓴 자기소개서에 적혀있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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