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수능을 모두 망쳤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 잘 살고 있었다.
수능시험
수능날 이틀은 모두 추워서 나는 꼭 패딩을 입었다. 엄마는 얇은 옷을 여러겹 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몸이 둔해지는 감각이 싫었던 나는 패딩을 고집했다. 일회용 손난로까지 다부지게 챙긴 후 도시락통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운좋게도 늘 집 근처 학교가 걸렸다. 평소보다 세시간 일찍 일어난 아빠가 함께 가줬다.
가방은 4년 내내 무거웠다. 나는 늘 책을 모조리 싸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렸다. 다 보지도 못할 노트들이 부적처럼 느껴졌다.
수능장 주변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긴장했는데 한편으론 조금 우쭐했다. 못 보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는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보단 잘볼거란 자신감이 옅게 녹아있었다. 성적에 관해서는 늘상 주늑들었던 내가 수능장에선, 넘볼수도 없었던 학교 동창들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다. 외고생 하위권의 비열한 정신승리였단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나 치졸하던 10대였다.
시험지를 풀어내려가면서 손을 덜덜 떨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감은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살면서 단 한번도 필기시험을 만족스럽게 치른 적이 없었다. 일부러라도 답을 맞춰보지 말아야 한다는데 직전 시험에서 헷갈렸던 선택지들이 계속 생각나 짜증이 났다. 어딘지도 모를 학교의 모르는 사람들이 쥐어준 초콜릿이나 축내며 다시 문제를 풀었다. 시험지가 천천히 더러워졌다.
혼자 먹는 도시락은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 이상하게도 반찬은 단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단 수능시험이라면 내가 앉았던 자리쯤은 생각날 법도 한데 아무리 곱씹어도 모르겠다.
유일한 기억은 첫 수능을 치르고 가족들을 만난 후, 도시락통을 수능장에 놓고 왔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걸어서 교실로 되돌아갔는데 도시락통을 들고 오니 교문이 닫혀 있었다. 철문을 하나하나 딛어가며 부모님 앞에서 담을 넘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두 번의 수능을 모두 망쳤다. 첫 수능에선 가채점을 끝낸 직후 재수를 결심했고 두 번째 수능에선 점수에 맞춰 아무데나 가자고 체념했다. 여기저기 논술을 보러 다녔는데 정작 수능 전에 본 논술에서 잭팟이 터졌다. 나름 유명한 서울의 대학에서 가장 가기 어렵단 학과에 입학했다.
10학기동안 조금의 요령을 피웠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 두 개의 학위를 땄고 나쁘지 않은 학점을 받았다. 대학은 꽤 마음에 들었다. 애교심까진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학교를 좋아한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 잘 살고 있었다. 수능 점수보다 한참 높은 대학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떻게 그 대학에 들어갔냐는 질문을 받으면 운이 좋았다고 얼버무렸다. 그 말은 진심이었지만 못 들어갈 대학에 들어갔다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 덕분인지는 몰라도 취직을 하고 돈을 벌게 됐다. 요즘같은 불황에 감사할 일이다. 무서웠던 수험생 시절은 추억이 됐다. 좋은 결과가 기억마저 왜곡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두 번의 수능이 내 인생을 결정짓거나 운명을 뒤바꾸진 않았단 사실이다. 좋게든 나쁘게든 세상에 변수는 너무 많다. 인생 한 방이라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허상이거나, 모두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만든 단어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수능도 한 방도 믿지 않는다. 시험을 잘 보면 선택지가 넓어질 거고, 시험을 못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거다.
위로나 응원, 힐링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오늘은 이 말을 꼭 적고 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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