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만큼 아름다운 후루유마을을 놓칠 수가 없었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2박 3일동안 머물기로 한 이유였다. 야마아카리 료칸에서 체크아웃을 마친 뒤, 다음 료칸으로 이동하기 전 온천수만큼 푸근한 마을길을 잔뜩 둘러봤다.
야마아카리의 주차장. 렌트카를 빌려서 와도 편한 마을이다.
조금 놀랐던 점인데, 일본에는 이런 시골마을에도 전기차 충전소가 곳곳에 있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유명한 일본답게 그런 차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SOC가 갖춰져 있는 셈이다.
하룻밤동안 시원한 물줄기를 들려줬던 카세강의 실개천.
산골 개천답게 물은 깨끗했다. 겨울만 아니었으면 개천에서 놀아도 될 정도였다.
이튿날 숙소는 지난 포스팅에 소개했던 온크리 호텔이었다. 다른 료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현대적인 시설도 한 번쯤 경험해보면 나쁘지 않을 듯 했다.
걸어서 8분 정도 거리여서, 부담 없이 캐리어를 끌고 마을을 가로질러갔다.
후루유 마을의 풍광은 낡은 것에서부터 나왔다.
손대지 않은 자연과 썩어가는 표지판, 그리고 휘어버린 가로등이야말로 후루유마을의 멋이자 미(美)였다.
온크리 호텔에 짐을 맡기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야마아카리 료칸에서 온크리까지 걸어가는 길을 돌아봤으니, 이제 마을 중앙을 걸어볼 차례였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었지만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늘어선 주택들은 대부분 료칸과 가정집을 겸하고 있었다.
이 날, 몇 번의 일본 여행 중에서도 가장 힙한 카페를 만났다.
마을길 초입구에 있는 이 가게는 카페라기보다 차라리 골동품점에 가까웠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앞뒤 재지 않고 앤티크한 매력의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간의 90% 이상이 골동품이었다.
골동품 가게를 찾아다니는 취미는 절대 없지만... 이 곳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세상에서 볼 만한 모든 것들이 이 가게 안에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압도적인 가게 분위기에 취해 있다보니 60대쯤으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왔다.
단 두 개밖에 없는 테이블 한 구석에 앉으니 춥지 않냐며 담요를 주고 히터를 틀어줬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메뉴는 270엔짜리 따듯한 커피 딱 한 잔뿐이었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는 어린이용 컵에 부어준 커피 한 잔을 들고 약간은 쌀쌀한 공기 속 최고로 앤티크한 가게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기념품 삼아 80년대에 만들어진 파일럿 만년필 블루 잉크를 하나 샀다. 300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계산대에 가니 주인 아주머니는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듯한 계산기에 가격을 입력했고, 빛바랜 누런 신문지에 잉크병을 꼼꼼히 싸서 포장해주었다.
앤티크한 분위기에 두 시간은 족히 취해있다 다시 후루유 마을로 나왔다.
마을이 워낙 작아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면 가로지르는게 가능하다.
마을 중턱쯤에는 소학교가 있었다. 나무 판자로 담장을 치쳐야 하는 나이든 소학교가 아직까지 운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전해들었지만 후루유 마을에는 한 번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어르신들도 많이 거주한다 했다.
산과 물을 둘러싸고 사는 온천마을의 사람들은 텃밭 중간에도 형형색색의 꽃을 심는, 꼭 그 정도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12시가 좀 지나서야 들어간 한 식료품 가게에는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이 지방에서 직접 짠 우유로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했다.
고작 300엔 정도의 아이스크림값을 받으면서도 30대쯤으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는 일일히 돈계산을 했고, 영수증을 뽑았고, 오늘 날짜로 된 노트의 첫 번째 칸에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는 장부를 썼다.
우리는 그 가게의 첫 손님이었고 아주머니는 우리가 가는 길 마지막까지 힘차게 웃으며 배웅한 뒤, 다시 식료품점에 앉아있던 친구에게로 돌아가 수다를 떨었다.
온천마을만의 특징을 하나만 꼽자면 바로 이 족욕장이었다.
40도 누루유 온천이 풍부한 이 곳은 마치 버스 정류장이 자리하듯 곳곳에 족욕을 할 수 있는 작은 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나 눌러앉아 따듯한 물에 발을 담그면 미세하게 흐르는, 물이 식어 미지근할 정도의 온천수가 느껴졌다.
또 다시 친구와 정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쿠오카에서부터 데려온 모찌를 깐 뒤 온천수를 찰랑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이 작은 마을을 네시간 정도나 돌아봤을까.
지겹다기보단 정겨웠고, 촌스럽다기보단 멋들어졌다.
료칸과 호텔을 절묘하게 섞은 온크리 호텔의 장점이라면 바로 이렇게 방 바깥으로 후루유 마을과 강, 그리고 산을 동시에 마주볼 수 있다는 거였다. 짐을 푸르고 나서도 한동안 산을 그림삼아 바닥에 누워 풍경을 감상했다.
온크리 호텔 자체는 그저 그랬다만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주관을 뺀 온크리 호텔은 깔끔한 시설에 다양한 노천탕, 현대화된 가이세키와 풍부한 조식이 어우러져 있다.
편안함을 주는 온크리와 분위기를 선물하는 전통 료칸 중 어딜 갈지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선택이다.
다만 숙박시설로 어딜 선택하든, 후쿠오카 여행 계획을 짤 당신이 유후인 대신 후루유 마을을 방문한다면, 후회하진 않을 거라고 감히 자신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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