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고 직선적이었다. 뉴욕 케네디 공항 활주로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려는 듯, 뭐든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어 공간을 참 과감하게도 사용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을 가면 감회가 엄청날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동양인에게는 결국 서양이란 큰 범주가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유달리 온갖 인종이 섞인 공항조차 외국이구나, 싶은 생각만 들고 그닥 낮설진 않았다.
이십년 넘게 공부했던 언어가 온갖 데서 들렸다. 사실 영어녹음파일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하다못해 한국의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던 친숙한 말이라 오히려 정겨웠다.
인터넷은 느렸다. 예상 외라 답답했다. 그걸 빼면 미국이란 나라는 내가 살던 세상의 문화, 그 자체 같았다.
영화에서 하도 봐오던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가나 평행주차된 차들, 주일 어린이들의 잔디밭 축구도 새롭지 않았는데 그 와중 내 시차부적응의 잠까지 다 쫒아낼 정도로 놀랐던 건 뜬금없지만, 끝도 없던 묘지밭이었다.
잘 정돈됐지만 무작위적이었다. 얼마나 돈을 썼느냐가 극명하게 느껴졌다. 그런 흑밭의 묘비들이 차로 5분여 가량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빼곡히 차있었다.
거기서 느꼈다. 여긴 미국이구나.
생각보다 많은 현대자동차에 신기해하다 보니 멘하탄이 보였다. 그렇게 많은 고층 건물과, 하늘 옆으로 죽순처럼 뻗어나간 빌딩은 규모와 시각에서 외지인을 압도했다.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내가 이 도시를 생각보다 재밌어해 오히려 스스로 놀랐다.
맨하탄에서 처음 받은 인상은 빛이 없는 도시였다.
위로 위로 올라간 고층 건물이 좁은 도로를 가까스로 두고 밀집해 있어서, 마치 콩나물 시루의 새순마냥 빽빽히 모여 빛을 가렸다. 빌딩숲이란 별명은 단순히 빌딩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무가 주인인 숲에선 빛이 들어오질 못하듯, 빌딩이 주인인 이 곳에선 어딜 가나 그늘이었다.
오래된 고층 건물이란 걸 서울에선 볼 수가 없었단 사실을 알았다. 안전펜스를 안 친 도보가 없고, 벽면은 갈라진 상처를 그래피티로 가렸다.
오래된 도시의 미래는 이렇구나. 그래서 결국, 낡았다는 사실마저 가장 근대적인 도시의 일부분으로 심화시켰구나.
뉴욕의 냄새는 더러웠고 파리의 악취보단 가벼웠다. 하루만 지나면 오물과 쓰레기가 보도블럭을 뒤덮었고 노숙자는 쓰레기 옆에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파리나 뉴욕이나 냄새의 원인은 같을 텐데 어째서 악취는 구분될 정도로 색깔이 다를까.
나는 비행기에서 자지 못해 졸렸고 커피를 때려부으며 뉴욕의 첫날, 브로드웨이와 타임스퀘어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약간의 골목길을 돌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랍계 사람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들렀다. 뉴욕양키즈 무늬가 새겨진 맥주 두 캔을 샀다.
주인은 영어가 아닌 말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마냐 물어보니 날 흘끗 보고 6.5달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