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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Feb 16. 2024

나는 오늘 나를 위로했다.

밤 12시. 내가 한창 글쓰기에 집중하던 시간이었다. 다음 달, 다다음 달이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전에 무언가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또 글을 썼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불현듯 불안이 찾아왔다. 노크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녀석. 저녁이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에 소화제를 들이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힌 공황장애. 나은 줄만 알았던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 듯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아질 순 있어도 완치는 없다는 그 병답게, 나은 줄로만 알았는데.


가족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랬다.


속으로 삭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내 주변을 둘러싼 압박감과 내가 세운 지나치게 힘든 목표.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나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유튜브에 들어가 마음이 안정되는 음악을 찾아 틀었다. 노래로 내 마음속 피어나는 불안을 억누르고자 했다. 잡아 뜯고자 했다. 꼴도 보기 싫은 녀석.


노래를 틀고 스크롤을 내렸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 영상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 댓글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공황장애가 있어서 불안함과 두려움에 지내고 있는 요즘. 한 가정의 가장인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건지 이겨내고 싶어요. 떨쳐내고 싶어요. 고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나는 가장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고통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고, 나에게 '고통'이라는 단어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하나의 댓글이 절절히 내 가슴과 공명했다. 어느샌가 내 뺨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떠올렸다. 공황장애가 어느샌가 잠잠해지고, 나았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나를 서서히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항상 나에게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내불남로. 같은 행동이라도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유하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에 비해 이뤄낸 것이 많지도 않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그저 나의 팔을 두드릴 뿐이었다.


고맙다. 살아줘서 고맙다. 네가 좋다. 네 나쁜 점조차도 사랑한다. 정말 고맙다. 같이 힘내서 살아가자.......


하염없이 울며 나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이상했다. 나는 그 괴상한 행동에 위로를 받았다. 그저 나를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전했을 뿐인데.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다.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것도 나다. 적어도 나는, 나에게 조건 없는 무한의 사랑을 제공해야 한다. 타인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훨씬 크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한 기분이었다.


불안할 이유가 없다. 시간은 그저 흐르는 것이고, 나의 삶도 그저 흐르는 것이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 살아가기에 목표가 생긴다. 목표가 생기기에 노력한다. 노력하기에 결실을 맺는다.


나는 오늘 나를 용서했다. 나약한 나에게. 노력하지 못한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했던 나에게.


넌 틀리지 않았다. 넌 충분히 노력했다. 넌 나약하지 않다. 넌 대단한 사람이다. 살아갈 용기를 가져줘서 고맙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글을 다시 써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고.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불안이 잦아들었다. 아니, 사라졌다.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던 검붉은 덩어리를 토해낸 듯한 기분이었다. 힘든 회사 생활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던 불안은 퇴사 후에도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오늘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내일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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