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윤슬체 마스터다.
윤슬
명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바야흐로 "너는 예쁘다. 존나 예쁘다."를 넘어 윤슬의 시대가 도래했다. 윤슬의 시대란 '윤슬체'라는 문체를 추종하는 문학사조를 뜻한다. 윤슬체란 <가령, 어둠이 나린 도시에 윤슬이 된 가로등 불빛, 그 속을 파도가 되어 걸어가는 사람들. 회색빛이면서도 점점이 빛나는 사람들의 어린 감정빛들이 총총하다. 그러면 나는 슬픈 것이다. 우리의 외로움의 무게에 질색하며. > 이런 거다. 적당히 감성을 자극하는 단어 몇개에 어느나라 번역투인지 모를 비문을 섞으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에서 '윤슬'이라는 단어 본 사람? 아무도 없을 걸? 하지만 우린 모두 윤슬이 뭔지 안다. 윤슬체가 한둘이어야지. 그놈의 윤슬은 왜그리도 반짝이나 모르겠다.
요즘 에세이는 십중팔구 윤슬체다. 특히 <곰돌이 푸 어쩌구저쩌구 괜찮아> 식의 힐링 에세이에서 정말 많이 보인다. 신기한 건, 이 윤슬체를 쓰는 사람들의 경향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건조한 글을 싫어한다. 오로지 가장 아름다운 문체를 윤슬체라 믿으며 그게 자신의 예민한 문학적 감각이라 믿는다. 윤슬체 아닌 글이 킹갓제너럴하이퍼울트라라는 게 아니라, 윤슬체의 지향점이 그렇다. 과감한 주술목의 생략과 더욱 도발적인 번역투는 윤슬체의 미학이다. 기본 문장 구조에 충실한 기성문단을 파괴하는 역동이란 얼마나 찬란한가? 김훈이여, 반성하라. 그대 글이 아무리 아름다웠어도 윤슬체 보다 아름다운가?
윤슬체 에세이를 덮으며 가만히 생각을 좀 했다. 왜 윤슬체가 인기를 얻고 있을까?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빈 곳'이다. 사실 윤슬체 에세이들은 달리 글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썼기 때문에 정교하게 완급조절 하며 주제의식을 끌어가다가 말미에 방점을 찍으려는 전통적인 글의 순리는 먼 이야기다. 그래서 윤슬체 글은 글에 구멍이 숭숭 나있다. 감정 표현과 수식어는 과한데 원고지는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글의 주제가 치열하다면 그것은 시다. 아니라면 하이쿠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책임지고자 하는 글들은 빽빽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못한다. 쉽게 읽으라고 쓴 글들도 그렇다. 독자가 아무렇게나 끼어들어 무례하게 상상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고 글을 끌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슬체는 다르다. 내용을 대신해 단어만으로 글을 채워놨기 때문에 부족한 빈 곳은 모두 독자가 알아서 채운다. 별과 윤슬을 상상하는 일은 적어도 문학이란 무엇인지 문장으로 설명하려는 글 보단 쉽다. 독자는 기쁘게 윤슬체가 맡긴 과업에 올라타고 가볍게 문장과 감성을 즐기며 허술한 구멍엔 자신의 추억과 기억, 감성을 채워넣을 수 있다. 얼마나 가뿐한가? 독자가 마음껏 상상하고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식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다니 말이다. 괘씸한 다른 글들은 이렇게 생각해라 저렇게 상상해봐라 요렇지 않느냐 지적질이었는데.
윤슬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누가 욕하리. 엘리트주의에 범벅 돼 글은 이렇게 써야 하며~ 웅얼거린 문인양반들의 글 보다 더 읽히는 글이 되었는데 말이다. 어여쁜 표지와 어떻게 찍어도 예쁜 단어만 나오는 유용함까지! 쉽게 쓴 글을 쉽게 출간하는 게 무슨 문제겠는가? 단지 서점 매대가 좀 드러워질뿐이지. 하지만 누군가의 책장만은 예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