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체는 죽지 않는다.

왜 글에서 구리구리한 남성향수 냄새가 날까;;;

by 세강


윤슬체에 관한 글에서 "예쁘다. 존나 예쁘다"의 시대가 갔다고 말했는데, 돌이켜보니 좀 덜 간 것 같다. 덜 간 대신 '존나 예쁘다체'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사태를 맞아 정중하고 예의바르며 무해해졌다. 이름하여 '오구체'! '오구오구, 우리 아가 잘 자떠요?' 혀짧은 소리 내는 강쥐야옹인간애기그외기타동물 어머님들은 진정해도 좋다. 단, 아버님들은 좀 긴장해야 할지도. 이 오구체는 특별히 남성적 문체로 에세이/시 장르 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쓰레드, 페이스북 등까지 점령한 유망 문체다. 윤슬체가 성별을 읽을 수도 없게 폭발시킨 감정 폭탄이라면 오구체는 러쉬의 더티스프레이 12번 뿌린 거시기다.


본격적으로 오구체란 무엇인가? 이 문체는 화자와 타자가 적절한 비율로 상정되며 위로를 전한다는 특징과 함께 약간 기분 나쁘고 이상한 욕망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책 안 읽는 작금의 세태에 출판시장이 위축돼 기획자들이 독자층을 남녀노소를 뛰어넘어 강쥐 야옹이 햄찌까지 상정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독자가 반드시 이성애자 여성이어야만 한다는 집요한 욕정이 있다고나 할까? 키가 닿지 않더라도 기어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야 말겠단 집착이 느껴진달까? 오구체로 쓴 에세이들... 에세이라기 보다는 시와 아포리즘의 형태로 팔리고 있는 이 오구체 글들은 과감하게도 위로를 전하지만 동시에 한 성별에게만 위로를 전한다. 만약 키 크고 건장한 X와 같은 남성이 오구체 글을 읽는다? 그런 건 오구체가 허락하지 않는다.


왜 오구체에게서 기분 나쁜 러쉬 더티스프레이 향기가 나는가? 이것은 타인을 위한 척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해 누군가를 넘어뜨리고 싶은 작가의 욕망 때문이다. 오구체는 어디까지나 무해하고 정중하게, 때르는 장난스럽게 위로를 건낸다. 그리고 위로는 언제나 우리 모두가 듣고 싶었던 말들이다. "힘들었지?" "기대도 좋아" "널 좋아해(사랑한다곤 절대 안함)" 읽는 마음이 아려져 오늘의 좆같은 부장에 대한 기억도 희석되는 말들이다.


오구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특한 위로법을 구사한다. 오구체에서 작가는 항상 ‘상대방의 회복’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네 옆에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니까 오구체는 위로가 아니라 존재감의 스킨십이다. "늘 내가 네곁에 있어" "언제든 기대" "널 기다릴게" "오빠가 있잖아" ... 어우 시발 누구세요? 느닷없이 나타나는 '오빠'는 끊임없이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자기 존재를 끼워 넣는다. "괜찮아?"는 사실 질문이 아니라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간접 어필이다. 말은 입을 열면 되고 글은 키보드를 주먹으로 쾅 치면 된다. 이 작자가 가볍게 쏟아내는 위로의 말들에는 어떤 의미도 맥락도 진지함도 없다. 그는 도대체 그녀의 무엇을 위로하고 있는가?(물론 진지함이 과해서 얻어터진 김난도 교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오구체는 윤슬체 보다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천착하며 지구 내핵까지 기어들어간다. 그럼에도 윤슬체 보다 비교적 덜한 비판을 받고 있는 건 단문으로만 이뤄져 도저히 필력을 가늠하는 게 불가능한 문장과 모두가 힘든 시대에 위로를 전하고 있다는 공리주의... 아니, 여성혐오 시대 괴로움에 처한 여성을 위로하고자 하는 그 남자의 ^진정성^ 때문이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가끔은 아인슈페너 한 잔을 마시며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을 한 장 은 그 남자. 군주론 읽고 하는 거라곤 문명5인, 전쟁 보다 외교로 승부한다 해놓고 2턴 뒤엔 전쟁 걸고 털리는 남자. 이런 남자의 진심어린 위로를 어떻게 감히 욕하겠는가?


우리네 SNS에는 책을 출간한 사람이 정말 많다(저는 못 냈습니다. 연락주십시오). 가끔 SNS에서 호통치며 우리들을 가르치려 드는 '도대체 책을 어떻게 출간했지?' 남성들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오구체. 그들의 창작욕은 출간 후에도 식지 않는다. 아니, 출간 후가 진짜다. 나의 문체에 반한 숱한 그녀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하니까. 그리고 그녀들의 눈물어린 진심을 들어야만 하니까. 실제로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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