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체 쓰고 싶은데요?

당신도 <바다에 윤슬 나린 날>의 작가가 되어보세요!

by 세강



이전 '윤슬체의 시대'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윤슬체를 비웃는 당신들!! 당신들이라고 윤슬체를 써본 적 없을까? 윤슬체는 우리네 문학사에 내려오는 유서깊은 문예사조다. 그럼 윤슬체라는 도원경은 무엇인가? 바로 싸이월드와 인스타그램이다.


70년대생 이후라면 대체로 싸이월드에 대한 흑역사와 함께 인스타그램의 '잘 살아보세' 정신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이 윤슬체에 큰 공을 세우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고 두 SNS에서 유행한 감성과 감성에 따라온 아포리즘(Aphorism)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싸이월드에서는 왠지 흑백 사진을 올려놓고 아래에 '여자는 담배는 피워도 바람은 안 펴'라는 글귀를 쓰고 싶었고 인스타그램에서는 씨익 웃는 전신 사진 아래 '중력 위에 선 날'이라는 의미 모를 말을 쓰고 싶었다. 과연 이 조각글들을 아포리즘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가 하이쿠라고 부르는 게 맞는가 아리까리 하지만, 여하간 이 아포리즘들은 윤슬체의 시초나 다름없다. 왜? 3무(三無)를 갖기 때문이다. 1) 무구조 2) 무맥락 3) 무의미. 윤슬체가 바로 이 3무의 정통 아닌가?






1) 무구조

오나전 처음부터 구조를 파괴하는 글은 그동안 많았다. 소설에서는 절정부인 척 하는 도입부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소설 마션의 첫 구절은 "좆됐다"다(아닌가?). 이미 주인공은 행성에 나홀로 남은 것부터 시작한다. 괜히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구구절절한 서사는 건너뛴다. 에세이에서도 절정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글들이 많다. 하지만 윤슬체는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윤슬체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쌍화차 먹은 이야기를 한 번 윤슬체로 써보자. (사실 소재부터 이미 윤슬윤슬하다!)



대학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알았다. 떠난 문청들의 그림자를 매운 hipster의 물결 속, 나는 기어코, 이곳의 전통을 찾아오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학림다방」의 좁은 계단의 발걸음에 기대와 허무와 쌍화차 향기에 몸을 맡기고서야 그래서야 나는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쌍화 아래 그림자가 지고 그 그림자에서 나는 나의 무해하고도 잔혹한 자아를 들여다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끼익거리는 바닥, 벽을 채운 LP,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속 홀로 쌍화차를 홀짝, 마시고야 마는 나. 나는 쌍화의 향기에 도취되고 감미되고 유혹되고 그렇게 넘어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 중 진짜 윤슬체는?

당연히 바로 2번이다. 둘다 윤슬체의 여러 기법을 사용했지만 3무 구조에 있는 윤슬체는 서론 본론 결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① 서론 : 이르렀을 때 비로소 알았다.(혜화역 옴) 본론 : 전통을 찾아오고야 말았다는 것이다(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에 옴) 결론 : 쌍화차 향기에 몸을 맡기고서야 알아차리고야 말았다(쌍화차 마심) 과 같은 머리가슴배 구조는 윤슬체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이다.


따라서 진짜 윤슬체는 2번이다. 우리는 2번을 보면서 쌍화랑 쌍화차를 따로 줬나? 글쓴이는 어디에 갔을까? 벽을 채운 LP면 LP바인가? 어딜 넘어간거지?? 와 같은 아리송함을 느끼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윤슬체의 문학적 기법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아무렇게나 대충 상상하면 된다. 쌍화와 쌍화차는 따로줬다고.



2) 무맥락

보통 실제 사건도, 우리들의 대화도 "예전 우리 동창 영희 기억나지? 걔가 굴 먹고 길에서 똥을 쌌대!"라고 굴-똥 맥락을 만든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갑자기건강상의 이유 없이 길에서 똥을 쌀 수 없듯이,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게 보통의 맥락이다. 건강하던 영희가 길 가다 갑자기 똥을 싸버리면 우린 모두 "영희가 왜 똥을 쌌을까?" 궁금해진다. 그냥 "아하 똥을 쌌구나!"라고 하지 않는다. (하시는 분 있음 죄송)


그럼에도 윤슬체가 대저 무맥락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윤슬체의 매력인 '빈 곳'을 지키려는 일념과 더불어 스스로 '왜 내가 이것을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설명해야 하는 의무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어쩌다 보니 설명할 의무를 갖고 맥락을 갖춰 이야기 하고 있을 뿐. 대부분 작가들이 할말이 그득해서 독자에게 설명의 의무를 갖고 이런저런 문학적 수사를 구사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매력적이지 않다. 윤슬체는 윤슬체기 때문에 설명 안해도 된다. 윤슬체란 원래 그렇다.


그럼 윤슬체가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또다시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으로 쌍화차를 마시러 가자.



쌍화차는 우리 어머니들이 처녀시절, 아버지와의 사랑과 삶과 기대가 어릴 때 샀을법한 잔과 잔받침에 정갈하게 놓여 나왔다. 버터플라이 코이 잉어가 지느러미를 펄럭거리는 동안 나의 지루한 열정은 쌍화차 만큼의 향긋함을 안고 계속 됐다. 그 옛날 학생운동하던 이들이 만년필을 긋다가 부러뜨렸듯이.


학림다방의 유리창 밖은 어디를 가는지, 영원히, 지구의 나이처럼 알수없을 사람들의 걸음의 연속이었다… 식어간 쌍화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향기가 마치 우리 영혼의 울림이 노래하듯 주변을 멤돌고, 멤돌았으니. 우리의 삶은 멀리서 보면 혜성처럼 지나가고, 가까이서 보면 가만히 식어가는 쌍화차다.



진짜 윤슬체는? 1번이다. 여러분은 혹시 버터플라이 코이 잉어를 아는가? 물생활에 미친 사람이라면 아, 그 하얗고 커다란 애! 아름답지!라고 떠올리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비단잉어가 왜 나오나 싶다.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버터플라이고 나발이고 연못에서 입 뻐끔하는 비단잉어가 지느러미로 팔딱 거리는 게 열정인가 싶을 뿐이다.


반면 2번의 경우 충실히 쌍화차가 식은 이유를 설명한다. 2번의 작자는 쌍화차가 식어갈 만큼 지구의 나이처럼 알 수 없을 시간 동안 사람들이 오가는 걸 봤다. 만약 진정한 윤슬체 작가였다면 작자는 쌍화차가 식어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쌍화차가 식은 건 얼음을 넣어서일 수 있으니까.


윤슬체는 어디까지나 나의 감성에 독자를 초대하고 독자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친절한 글이다. 만약 윤슬체 글을 보고도 독자가 작자 생각과 다르게 상상할 수 없다? 윤슬체 실격이다. 윤슬체를 화려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독자를 절대로 신경 쓰지 말고 맥락 없는 단어와 문장을 과감히 써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노니,




3) 무의미

의미? 없지 않다. 썼기 때문이다. 매일 한 편씩이라도 써보세요! 얼마나 많은 작법서들이 말했던가? 한 편이라도 썼다면 의미는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윤슬체 문학에서 의미란 무의미 하다. 아니, 의미를 굳이 부여하려고 하면 의미 과잉이 된다. 자의식 과잉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의미까지 더 부여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과잉의 과잉이다! 윤슬체에게 허락 되는 의미는 오로지 '나' 그 외에는 없다.


사실 의미를 담아 쓴다는 건 나 자신의 흑역사와 싸우는 작업이다. 우리는 첫사랑을 하면서 오만 것들에 의미를 부여한 적 있다. 그/그녀와 했던 첫 데이트와 처음 키스했던 그곳, 그/그녀가 선물했던 무언가… 얼마나 의미 깊은 것들인가? 주변인들은 '개꼴깝 떠네...' 생각하고, 헤어지고 나서 그 X새끼와 갔던 곳이 X같고, 키스했던 기억이 X같고, 받았던 선물은 처치곤란이 되었어도 과거엔 깊고 깊은 의미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부여한 의미가 과연 타인(독자)가 봤을 때나 훗날 내가 봤을 때에도 여전히 충실한 의미가 있고 마음을 움직이게 할지, 이 의미를 독자가 알아차릴 수 있는지?! 과연 문장 몇 개만으로 충분히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가? 세상에나, 그런 것까지 생각한다면 윤슬체가 아니다.


또다시 돌아온 윤슬체 맞추기 시간!



쌍화차가 식어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식은 감정에 따뜻한 기억을 얹었는지, 아니었는지, 아무래도 좋았다. 지느러미는 없는데 마음이 퍼덕거렸다. 방금 지나간 노오랑 코트의 사람이 앉아 있었던 자리엔 어쩐지 비둘기의 그림자가 펄럭이고 있었다, 분명히 실내인데.


벽지는 벽보다 더 나를 붙잡고 있었고, 나는 붙들린 채로 생각을 늘이면서 줄였다, 다시 늘였다. 혓바닥 끝에서 도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건 말이 아니라 멜로디였고,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쌍화차는 쌍화차인데, 아니었고, 어쩌면 그냥 그랬는데 나는 그 그램 수를 사랑했다.



도대체 무엇이 윤슬체인가? 특별히 이번엔 아주 어렵게 준비했다. 사실 어렵지 않게 쓰더라도 윤슬체의 무의미한 의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정답은 ②!


설명이 필요한가 싶지만 ①에서는 '노오랑 코트의 사람'이라는 객채에 대해 화자가 쌍화차가 식는 동안 어떤 기억을 되새겼고, 마음이 퍼덕이며(??)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의미가 3개의 문장 안에서 오간다. 반면 ②의 화자는 벽에 맞닿은 자리에 앉아 왜 갑자기 콧노래를 했는지.. 근데 왜 말을 못했는지.. 쌍화차는 왜 쌍화차가 아니며 그램수는 쌍화차의 그램수인가... 뭔 소린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윤슬체란 어떤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단어를 끊임없이 나열하려고 하지만, 정작 상징과 의미를 정확하게 연결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의미구나' 이해할 수 있게 돕지 않는다. 윤슬체는 시각적 풍경을 묘사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게 가장 중요한 문예사조기 때문이다.







우리는 될 수 있다. 윤슬체 작가.

그리고 우리는 피할 수 있다. 윤슬체 작가.

우리 존재 화이팅!



ps. 저는 에세이 작법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윤슬체가 아닙니다. 바로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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