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未)文地帶 1

by 세강

최근 정말 많은 글을 읽었고, 그에 대한 감상—누군가에겐 비평일지도 모를—을 남겼다. 대다수가 소설이었고, 그다음은 칼럼. 지난 10년간 글 팔아먹고 살다 보니, 읽는 순간 어디서 어떻게 글이 틀어졌는지 보일 때가 많다. 머릿속에만 두기엔 아까워서, 최근 감상한 글들의 경향성을 적는다. 좋은 말은 없다. 한 마디도.



1. 혼미한 문장력
한글만 알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최소한도 못 맞추는 문장이 넘친다. 기본적인 주술 호응조차 안 되는 글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문장도 좀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곧 완전히 포기했다.
손가는 대로 마구잡이로 쓴 글을 누가 책임지는 걸까? 나는 이른바 ‘필력’이라는 문장미학에 크게 관심 없어서 최소한의 기본만 보려 한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 되는 글이 수두룩하다.
문장이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이들, 그 미감은 대부분 구어체 감정 과잉으로 떡칠 돼있다. 이제 교과서에 윤슬이 실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 씹덕의 이상한 표현법 ①
소설을 읽는데 만화인 줄 알았다. 프로 지망이라는 사람들이 장면 단위로 서사를 잘라 붙인다. 컷만화처럼 1컷엔 이 장면, 2컷엔 저 장면. 연출은 있고, 문장도 있고, 감정도 있는데… 이야기 흐름은 없다.
읽다 보면 금세 보인다. 작가는 머릿속에 떠오른 몇 장면에만 매달린다. 그 장면 하나 멋지게 보여주려고, 서사의 맥락과 무관히 힉스 입자까지 묘사한다. 과잉의 과잉. 그렇게 묘사에 천착하는 사이, 소설은 망가진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장면과 소재들만 무한히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소설. 만화경 보는 게 더 재밌다.

3. 씹덕의 이상한 표현법 ②
만화는 주인공의 매력으로 서사를 밀어붙인다. 사건은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다. 다양한 연출도 매력 극대화를 위한 장치다.
문제는, 그런 만화적 장치를 문학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베낀 소설이 넘친다는 것이다. 순문학을 지향하든 웹소설을 쓰든, 인물의 매력만으로 독자를 설득하려는 글들이 많다. 그런데 방식은 매번 서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고 설정 열거에 그친다. 캐릭터 설명서를 외워보란 듯 뿌려댄다. 이 캐릭터는 이러쿵저러쿵.
진짜 소설은 반대다. 설정을 써붙이는 게 아니라, 인물이 역동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그를 이해하게 만든다. 이 둘의 차이를 모르면서 인물 타령만 하면, 결국 납작한 종이인형만 잔뜩 만들어내는 꼴이다.

4. 미완성의 철학
자기만족용이 아닌 글이라면, 끝까지 써야 한다. 그리고 완결하지 못한 글은 독자에게 보여선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 마치 45도 각도의 사람 대가리만 그릴 줄 아는 만화가 지망생처럼, 수없이 글을 시작만 하고 던져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한참 읽다가 보면 문득, 어라? 글에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대로 허리에서 뚝. 동강난다.
이건 대개, 작가가 쓰고자 한 소재에 대한 탐구 없이 ‘인상’만으로 시작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인상만으로 글을 쓸 거였다면, 싸이월드 시절에나 끝냈어야 했다. 지금 시대에선 용납이 안 된다.


5. 실험적 글쓰기
예전엔 실험적 글쓰기라 하면 기형도를 떠올렸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실험을 한다며, 글을 쓰게 된 이유, 착안 계기, 해석 키를 장문의 작가 노트로 써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건 실패한 실험이다. 글에 설명이 필요한 순간, 독자 설득에 실패한 것이다. ‘왜 이런 이상한 글을 썼는지’ 구구절절 해명해야 하는 건, 애초에 글이 독자를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 노트는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자체로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출판용 서사가 아닌 설계도일 뿐이다. 교양서도 아닌데 독자한테 주석집까지 읽으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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