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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늘이 Feb 16. 2024

경마장 풍경

리뷰 <달려 토토>  조은영, 보림, 2011




나는 '머물면 여물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딘가 머문다는 것은 마음이 머무는 것이고, 사유는 것이기에.

<달려 토토>는 한동안 내 마음에 머물렀던 그림책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은 토토다. 나는 말을 본 적은 없지만 말이 좋다. "


일요일 아침, 할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으로 경마장에 간 아이. 아이의 눈에 비친 경마장 풍경을 담고 있다.

다양한 기법으로 인물을 묘사하고 말의 역동성을 잘 표현해서 23회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그림책이다.








<탁월한 표현기법>.

검은색과 칼라의 변화, 수묵화의 번짐과 펜을 사용한 세밀하면서 날카로운 표현,

스크래치 기법 등 상황에 맞는 다양한 표현기법은 산만하기보다 오히려 인물의 심리상태와 감정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압권은 9번 말이 1등으로 들어오자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검은 선과 먹물을 던져 표현한 장면이다. 결과에 대한 충격과 허탈함과 허망함이 거친 붓선과 먹물자국에 잘 드러나 있다.



<공간 표현>

말들의 특이한 행동을 그린 그림은 말도 하나의 고유의 성격과 불안을 가진 생명체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면을 쓰고 출발 선에 서 있는 말의 모습은 얼룩말 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소 같아 보이는 기이한 모습이다. 가면을 쓰지 않은 9번 말만 진짜 말 같아 보인다.



앞 면지에 기수는 12명을 그렸는데 말의 가면은 11개 그린 것도 이 그림과 연관되어 있다.

접힌 날개 면을 펼치면 출발하는 말이 확장된 공간을 기세 좋게 뚫고 나올 것처럼 표현되어 긴장감이 감돈다.





<뒷면지>

뒷 면지의 그림도 놓치면 안 된다.

뒷 면지에는 경기가 끝나고 기계로 땅을 편편하게 고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처음 이 그림책을 읽을 때 뒷 면지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왜 뒷면지에 이 그림을 그렸을까?



여러 번 그림책을 보면서 책의 곳곳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란색 마사회 옷을 입은 직원과 정보지를 파는 사람, 방송국 카메라를 든 사람들. 기수도 경마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는 경마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그림책에 경마장 풍경을 담은 작가는 없었다. 경마장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공간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그런데 조은영 작가는 아이의 시각을 통해 경마장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어른들의 욕망을 담은 공간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의 공간이기도 하고, 바람을 쐬러 오는 공간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삶의 일터이기도 한 일상적인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기법과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마장을 일상의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확장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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