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던져 만든 길, 그들에겐 남겨진 시간

선택의 대가

by 세하

미용이란 꿈은,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손가락 마디마다 피가 맺혔고,

팔뚝을 타고 올라온 습진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흉처럼 남았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보곤

조용히 돌아앉아 눈물을 삼켰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등 너머로,

딸을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밤이면,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한마디 없이 내 발을 주물러주었다.

그 손끝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엉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머리 하러 한 번 와…”


엄마는 고개를 떨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너 애쓰는 거 보기 힘들어.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못 가겠어.”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아주 오랜 시간

내가 일하는 곳에 오지 않았다.



그 시절,

미용실의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냉정했다.


상처 난 손에 중화제를 바르며

간지러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했고,

장갑을 끼고 샴푸를 하는 일은

‘게으름’이자 ‘무례’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작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건

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선생님들은 질문에 친절하지 않았고

“그건 아직 네가 알 단계가 아니야.”

라는 말로 궁금함을 잘라냈다.


나는, 그저 알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 더 배우고 싶었을 뿐인데.

그 바람조차 버거운 욕심이 되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런 날에 나는,

잠 못 이루는 아이였다.

무언가가 궁금하면,

그게 풀릴 때까지

머릿속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


유튜브도, 블로그도,

지식을 공유하는 디자이너도 드물던 시절.

나는 묻는 대신,

찾았고, 시험했고, 반복했다.


손끝에 감각이 남을 때까지.


지금 돌아보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애써 얻은 건 쉽게 잊히지 않았고,

직접 부딪혀 얻은 감각은

이론보다 오래 남았다.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오면

검색창부터 열지 않는다.

그동안의 실수들, 감각들.

그 안에서 오류의 원인을 되짚는다.


그건, 내 손이 기억하는 데이터다.



나는 인턴 생활을 조금 더 길게 했다.

보통 3년이면 충분하다 했지만,

나는 4년을 넘겼다.


내 손이 만든 실수는

대게 선생님이 막아줬지만,

디자이너가 되면 모든 게 내 책임이었다.

그러니, 완벽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디자이너가 됐다.

오랜 연습 덕분이었을까.

디자이너 생활은

날개 돋친 듯,

나를 훨훨 날게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랑했고,

사랑하면서도 일에 열정적이었다.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다.


나는

내가 꾸는 꿈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쉴 틈 없이 살아 있었다.



그 무렵.

사춘기를 지나던 여동생과

몸이 불편한 아빠,

그리고 묵묵한 엄마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동생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공부했다.

말없이 책상에 앉아 긴 시간을 버텼고,

무덤덤한 표정 너머로

어린 나이엔 감당하기에 너무 큰 무게를 이겨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에 치여 있었고,

사랑에 취해 있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했다.

가족과의 거리는

시간보다 마음에서 더 멀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명문대 합격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말없이 봉투 하나를 꺼내

그 아이 손에 건넸다.

디자이너가 되면서 준비한 돈이었다.


“언니… 정말 고마워…”


그 말에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

그건 어린 너에게

내가 떠넘기고 도망쳐버린

죄스러움의 일부일 뿐이야.’


그 한마디가

나를 오래도록 붙잡았다.


동생은 그저 웃었고,

나는 그 웃음 안에서

참 많은 말을 삼켰다.


그 아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 봉투 안엔

돈만 들어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수년간 켜켜이 쌓인

미안함과 그리움,

‘내가 동생 곁에 없었던 시간들’이

들어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집을 떠난 후,

그 집이 얼마나 더 차가워졌는지.


누군가는 불 꺼진 식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었을 테고,

누군가는 새벽까지

불 꺼진 방 안에서

작은 숨소리조차 삼켜가며 울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을 선택했고,

그들의 삶은

그 선택의 빈자리를 감내해야 했다.



꿈은 내가 택했고,

거기엔 따뜻함도 있었지만

그만큼 냉정한 외로움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걸 끌어안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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