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필요한 이별

by 세하

우리 가족의 시간은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어느덧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미용’이라는 단단한 꿈에 나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사실, 원래 내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국어 시간이 너무 좋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현실,

그리고 부모의 부재라는 핑계 아래

공부는 조금씩 뒷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꿈에 더 많은 비중이 실렸다.


열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처음 간 미용실에서

내 머리 위로 커다란 스트레이트 판이 얹혔다.

거울 속 곱슬머리가 곧게 펴지던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 막연했던 다짐은,

삶의 현실 속에서 날카롭게 깨어났다.



열아홉.

내가 처음으로,

내 삶을 위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헤어디자이너’라는 분명한 꿈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학기 초.

나는 담임 선생님의 자리 앞에 섰다.

책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직하게 말했다.


“선생님, 전 대학에 가지 않을 거예요.

수능은 보고 싶고요. 예체능으로 빠질 수 있게 해 주세요.

진로 상담은 괜찮아요. 다만… 부탁이 하나 있어요.”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미용학원에 다닐 거예요.

미용고로 전학을 가자니 시간도 없고, 절차도 복잡해요.

무엇보다… 집이 어려워서 돈을 빨리 벌어야 해요.

제적당하지 않도록, 4교시까지만 수업 듣고

학원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선생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침묵 사이에

나는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학원 다닌다는 증명서는 꼭 제출해.

그럼… 조퇴 처리해 줄게.”


그 말이 허락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점심시간이면

조용히 가방을 들고 교문을 나섰다.


교복 치맛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오후,

책 대신 빗과 가위를 넣은 가방을 메고

지하철역까지 걷던 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누구도 격려하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그 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스물두 살.

나는 결국,

‘독립’을 결심했다.


월급 40만 원으로 시작해

겨우 100만 원쯤으로 올라선 수입.

그 돈을 모아,

방 하나짜리 작은 공간을 얻었다.


눅눅한 벽지와 낡은 장판,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창문.

누군가에겐 고된 현실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겐 ‘나만의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물건을 내 맘대로 놓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불을 껐다.


이 작은 방 한 칸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나는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만 숨겨두었던 말을,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숨을 고르고 또 고른 끝에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 나가서 혼자 살아보려고 해.

지금처럼 왕복 두 시간씩 쓰지 않으면,

하루에 연습을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디자이너가 되는 날도 조금은 빨라질 테고,

엄마 용돈도… 좀 더 넉넉하게 드릴 수 있을 거야.”


말을 이어갈수록 목이 메어 왔다.

혹시라도 “왜 그렇게 서두르느냐”, “조금만 더 참고 다녀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나는 머릿속에서 수없이 반문을 예상하고, 대답까지 연습해 온 참이었다.

어설픈 변명 같기도 했고, 어린 마음의 다짐 같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온갖 핑계를 동원해

용기를 짜내어 꺼낸 말이었지만,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엄마는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아빠도, 짧게 한마디를 보탰다.


“너는 믿어.”


아빠의 말 끝에,

아무도 덧붙이지 않았다.

조용한 식탁 위로,

묵직한 믿음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날, 집은 유난히 고요했다.

나는 그 고요를

‘인정’이라는 이름의 축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걸

10년쯤,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말했다.


“그때가…

내가 살면서 가장 배신감 느낀 순간이었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딸이…

엄마 뒤꽁무니만 쫓던 네가,

다 컸다면서 혼자 살아보겠다고 선언했을 때…

며칠을 울었어. 밤새도록…”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을 들었을 때도,

왜 그땐 몰랐을까 하는 자책보다

그때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던 그 얼굴.

내 등을 쓰다듬으며 “그래, 잘 살아봐”

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


울고 있었던 사람이

내가 아닌 엄마였다는 걸

정말, 정말 몰랐다.



그 독립은,

누구도 말리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조용히 무너졌던,

한 가족의 이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누구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 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택한,

작고 단단한 방 한 칸.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부모와 이별했다.


살면서,

나는 부모의 사랑을 당연하게 믿어왔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이고,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그래서였을까.

내가 독립을 말했을 때,

그들이 너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던 순간—

사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붙잡을 줄 알았다.

조금은 머뭇거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없이, 천천히,

내게 길을 내어주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조용한 허락이,

얼마나 큰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만 좇다가 스스로를 잃으면

결국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끝까지 붙잡으려 할 때

오히려 자식은 죄책감과 억압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랑하기에,

잘 떠나야 하고.

사랑하기에,

잘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우리 부모는

나를 믿었다.

내 삶을, 내 선택을,

온전히 내게 내어주었다.


말리지 않는 선택.

붙잡지 않는 용기.


그것이

가장 깊은 사랑이었다.



지금은 안다.

몸은 멀어졌지만,

그 마음만큼은

더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아주 오래 지나서야

그 단순한 진실을,

그리고 그 조용한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3화엄마라는 이름의 방패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