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방패막

사랑이란,

by 세하

아빠의 몸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회복의 그림자 속에서,

엄마는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숨 쉴 틈조차 없던 하루하루.

그날, 병원 복도에서

엄마는 조용히 진단서를 들고 나왔다.


“갑상선암 이래.”


그 한마디.

엄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은

마치 숨이 멎을 것처럼 무거웠다.



하늘은

정말 우리 가족을 버리고 싶었던 걸까.


여자의 갱년기와 함께 덤으로 따라온

암이라는 진단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갉아먹었다.


엄마는 창가에 앉아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엔

누구보다 깊은 외침이 있었다.


‘왜 나야…

왜 또 우리 가족이야…’


나는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말을 걸 수도 없었고,

가까이 다가갈 용기도 없었다.


너무 안쓰러워서,

너무 위태로워서.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불안해서.


갑상선암이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엄마를 잃는다는 상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 없는 세상에

아빠와 동생, 그리고 내가

남겨지는 일이었다.



엄마의 암 덩어리는

생각보다 많은 곳으로 퍼져 있었다.

수술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고,

그럼에도 엄마는 깨어났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묵묵히, 씩씩하게

그 고통을 견뎌냈다.


그녀는 분명 환자였지만,

여전히 엄마였다.


퇴원하던 날.

그 조용한 병실에서

간호사에게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으며 퇴원 수속을 마치던 그 모습.


누구보다 약해져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쉴 틈도 없이

밀린 집안일을 시작했다.


빨래를 개고,

식탁을 닦고,

누군가의 식기를 챙기고,

작은 흠집 하나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 손길은 병든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오랜 본능 같았다.



가끔은

누군가를 향해 중얼거리듯

무언가를 원망하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다들 자기 할 일만 하네…”


그 말에 담긴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지친 한숨처럼 들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종종 놓쳤다.


나는 조금 컸다는 이유로

침묵이 늘었고,

사춘기의 동생은 문을 박차고 들어가

문을 ‘쿵’ 닫아버렸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을 땐,

동생은 “바람이 닫았어.”라고 중얼거리며 외면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

‘잔소리’라는 포장을 둘렀다.


“오늘은 일찍 들어올 거지?”

“밥은 챙겨 먹고 다녀야지, 응?”


그건 걱정이었고,

그리움이었고,

사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그때,

세상에 엄마 편은

없었다는 걸.



지금 누군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사랑은,

의리고, 희생이라고.

그리고 그것들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해지는것.


그 시절,

우리 가족을 버티게 만든 힘이

결국 ‘엄마’였다는 걸—


나는 아주 늦게,

그리고 너무 또렷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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