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는 너.
우리는
강남의 한 미용실에서 만났다.
나는 디자이너로 막 입사했고,
미주는 나보다 먼저 스텝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투리 섞인 말투,
특히 안동 특유의 억양은
처음엔 낯설었다.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낯섦이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이 갔다.
미주는 먼저 웃었고,
먼저 다가왔고,
먼저 말을 걸었다.
조심스럽고 다정한 아이였다.
우리는 매장 오픈 30분 전에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에 소시지를 나눠 먹곤 했다.
그게 우리만의 작은 루틴이었다.
쌀쌀한 아침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처럼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새로운 미용실로 옮기게 됐다.
그때,
내가 미주를 추천했다.
“같이 일하게 해 주세요. 정말 성실한 친구예요.”
나는 디자이너였고,
미주는 인턴이었다.
서로의 위치가 달랐지만
나는 그 벽을 허물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알려주고,
더 많이 챙겨줬다.
“네가 있어서 서울 생활이 어렵지 않아.
시엄마 같은 잔소리만 안 하면 더 좋을 텐데.”
그게
우리가 친구가 된 방식이었다.
미주는 내가 이사를 하자, 따라오듯 우리 집 근처로
이사했다.
정확히 1분 거리.
밤이면 창문 불빛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미주는 언젠가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남자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점점 미용실에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던 손이,
가위를 쥐던 손이,
네일아트를 받고 마사지를 받는 데 쓰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호사스러웠다.
그 남자가 “잘해준다”고도 말했다.
미주는 웃으면서,
“그냥 쉬래. 고생했으니까 좀 누리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건 쉬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거였다.
그 남자는 스무 살 넘게 나이가 많았다.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이 바닥”이라고 얼버무렸다.
신용불량자.
자기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미주의 이름을 썼다.
그녀의 카드, 그녀의 통장, 그녀의 신용.
처음엔
미주가 그의 정체를 숨겼다.
나에게 소개할 때도
그를 ‘사업하는 오빠’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첫 만남에서 느꼈다.
그의 눈빛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기회를 재고, 상황을 재단하는 눈.
사람이 아니라 판돈을 보는 도박꾼의 눈이었다.
“어때? 첫인상?”
미주가 웃으며 물었을 때
나는 겨우 이 말만 내뱉었다.
“그냥… 오래 만나진 마.”
하지만 속으로는 소리쳤다.
‘등골이 서늘해. 도망쳐, 미주야.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 남자는 점점 미주의 삶을 야금야금 삼켜갔다.
미용실에 가지 말라고 했고,
일하지 말라고 했고,
가끔은 연락도 되지 않았다.
맞은 흔적이 보였을 땐,
미주는 “그냥 말다툼이었어”라고 얼버무렸다.
그의 폭력은 주먹보다 말이 먼저였고,
그 말은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영혼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카드값은 매달 연체되었고,
그는 말끝마다 “이번 달만 좀 도와줘”라며 미주를
달랬다.
그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고,
미주는 점점 말이 줄었다.
눈 밑이 파였고, 웃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더 이상 가위를 들지 않았고,
머리를 감기지도 않았다.
삶을 꾸미지 않았고, 꾸밈없는 삶에도 무뎌졌다.
나는 그런 미주를 자주 불러냈다.
계속 불러냈다.
밤마다.
술 한 병과 컵라면, 편의점 소시지를 들고
우리 둘만의 공터 같은 벤치에 앉았다.
거기서 나눈 건 다정도 아니었고,
위로도 아니었다.
그건
살기 위한 숨구멍이었다.
미주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받는
작고, 조용한, 그러나 절실한 의식이었다.
“진짜 이제 못 살겠어…”
그녀가 말해도
나는 더 이상 ‘헤어져’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칼이었기 때문이다.
미주가 스스로 내려놓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건 그녀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테니까.
나는,
그저 곁에 있었다.
술을 사주고, 말없이 들어주고,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는 사람이었다.
⸻
그리고 미주가 여행 간다던 어느 날,
그 남자가 미주의 카드를 들고 그녀를 버려둔 채
사라졌다.
다툼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강원도의 한 거리.
가진 거라곤 휴대폰 하나.
미주는 내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서울로 돌아갈 차비를 부탁했다.
나는 주저 없이 송금했다.
그날 통화 중, 미주의 카드 결제 알림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분노에 차 있던 그녀는 말했었다.
“이젠 정말 끝이야.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 작은 이사는,
그 남자의 집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자기를 찾아 돌아오는 길이기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매몰찼다.
미주는 쌓여가는 카드값과 텅 빈 통장을 쥐고
바닥을 걷고 있었다.
그 남자는 두문불출.
카드의 흔적만 남긴 채 자취를 감췄다.
⸻
어느 겨울밤.
나는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늦은 시간, 미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친구와 있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그녀에겐 칼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나 빼고 놀아?”
그 말에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친구가 너밖에 없냐?”
“네가 연락이 안 돼서 지영이랑 술 마시고
있었어. 올래?”
“내일 출근해야지, 늦었어. 술 적당히 마셔.”
툭—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창밖 미주의 집에 켜진 불빛을 보면서
그날을 지나쳤다.
⸻
다음 날 저녁까지
미주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주의 집 문 앞에다 귀를 기울였을 땐 TV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모호한 인기척이 있었다.
문 앞 배달음식 봉투도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단단히 삐졌나 보다.’
나는 그렇게 넘겼다.
다음날 아침.
이상한 예감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불이 꺼지지 않은 미주의 창.
이른 아침인데도 방 안은 환했다.
미주는 전기세에 민감한 아이였다.
낮엔 방 불을 켜지 않았다.
심지어 외출할 땐 다시 돌아와 전기코드를 뽑을 만큼 철저했다.
그런 미주의 방 안 불빛.
이상한 예감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
점심 무렵.
미주의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미주랑 연락이 안 돼요. 혹시 아세요?”
나는 그 전화를 끊자마자 미주의 집으로 달려갔다.
심장이 고막을 찢을 듯 두드렸고,
목이 마르고, 입 안이 텁텁해졌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떨렸다.
그리고—
2층 복도에 발을 올린 순간,
내 코를 찢듯 파고든 역한 냄새.
젓갈이 썩은 듯했고, 음식물 쓰레기를 한 달은 넘게
방치한 듯한 냄새.
아니, 그건 단순한 악취가 아니었다.
코를 찌르기보다, 목구멍을 기어올라오는 냄새.
창문 너머로 스멀스멀 스며 나오는 공기 속엔
식은 피의 철비린내, 오래된 닭 껍질이 썩는 듯한
기름진 곰팡이 냄새 같기도 했고,
단백질이 부패하면서 풍기는 퀴퀴하고 기이한 쿰쿰함이 섞여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지 않아도
비강 안쪽을 휘감고 돌아 폐 속까지 들어오는
그 냄새는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불쾌한
정체감을 남겼다.
“왔어요…”
그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복도 앞 창문 옆에 바짝 다가섰을 때,
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비릿하고 짓무른
고통으로 번졌다.
이건 단순히 썩은 음식의 냄새가 아니었다.
죽음의 냄새였다.
—
나는 기절할 듯한 메스꺼움을 참고
현관문 옆 작은 부엌 창을 열고자 손을 뻗었다.
그러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현관 앞에, 그냥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나는 주먹으로 창문을 쳤다.
유리가 깨졌고,
그 틈 사이로 그 냄새가 더욱 선명하게 퍼졌다.
그 순간, 직감했다.
‘미주는 이 안에 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목소리는 이미 무너져 있었고, 숨은 들쑥날쑥했다.
“문이 안 열려요. 안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요…
친구가 안 나와요…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요…”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건, 소방차였다.
붉은 불빛이 계단 벽을 타고 올라왔고,
등 뒤로는 무거운 철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비켜주세요”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등 뒤의 벽에 몸을 붙이고, 숨을 삼키며 그 장면을
지켜봤다.
소방관이 굳은 표정으로 현관 손잡이를 여러 번
당겼지만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한참을 살피더니, 곧바로 철제 도끼를 들었다.
첫 번째 타격.
문틀이 울렸다.
두 번째 타격.
현관이 흔들렸다.
세 번째 타격과 동시에
낡은 문은 안쪽으로 휘청이며 틈을 만들었고,
그 순간 안에서 무언가가 퍽 하고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냄새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숨이 막혔다.
그 냄새는 아까 그 정도가 아니었다.
피와 썩은 살, 새로 태어난 벌레들과 눅진하게
눌어붙은 시간의 찌꺼기,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사라짐의 냄새’가
뜨거운 방바닥 위를 지나
문 틈 사이로 토사물처럼 쏟아졌다.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이 손으로 코를 감싸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죽었네…”
그 짧은 한마디.
차갑고 무덤덤한 톤이었지만,
그 말은 내 가슴을 뚫었다.
다리가 풀렸고,
나는 주저앉았다.
어깨가 덜덜 떨렸고, 눈물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문틈 사이로 스치는
차가운 공기,
어둠 속에 빛이 새어 나오는 방 하나.
거기, 미주가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이 둔탁하게 울리면서도,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단 하나—
그 날카롭고 역겨운 냄새만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경찰이 나를 불렀다.
“이 분과 어떤 관계시죠?”
목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 친구예요.
가장 가까운 친구요.”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한 인적 사항과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을 물었다.
그 짧은 대화 안에서도 나는 계속 침을 삼켰다.
입 안이 말라붙었고, 숨이 끊어질 듯 가빴다.
“혹시 최근 우울한 기색은 없었나요?”
“있었어요.
많았어요.
근데… 전 그게 그냥, 일시적인 줄 알았어요…”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경찰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자책하지 마세요.
누구도 이런 일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요.”
그 말은 위로였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자책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자책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건네는 말이라는 걸.
⸻
그날 밤,
나는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손등에 남은 냄새.
코 안에 붙어 있는 그 냄새.
입술 끝에 스며든 침묵의 맛.
그건 죽음의 그림자였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뒤 남는 가장 원초적인
고통이었다.
불 꺼진 방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미주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그 사람을 더 강하게 끌어냈다면.
아니, 더 쌔게 다그쳤다면,
혹은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줬다면.
그 생각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들에 잠겨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나는 마지막을 고민하는 너에게 그따위 말 밖에
못했을까…’
그건 늦은 후회로
미주가 귀찮았던 모든 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통화..
그제야 그날의 미주의 목소리
그 작을 떨림마저 생생하게 살아나서
“살자.”
이 한마디를 해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내 안을 파고들었다.
내가 많은 남자들에게 쉽게 내뱉던 말.
“그 말은 결국, 내게 돌아왔다.
인생은 부메랑이었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그 칼날 같은 말이,
이번엔 나를 찔렀다.”
⸻
며칠 뒤, 미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미주의 가족은 미주의 사고를 숨기고 싶어 했다.
조용한 식장, 적막한 조문,
내가 앉은 조문석의 공기조차 얼어붙은 듯했다.
그녀가 떠난 뒤 남긴 사람은,
나와… 그리고 지영이었다.
지영은 서울로 비슷한 시기에 상경온 미주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였고,
장례식장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오래 울었다.
“우리가 놓친 밤.
그 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 눈을 감고 있으면,
여전히 그날의 냄새가 피어오르고,
‘죽었네…’
그 짧고 단호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다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