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말은 무겁지 않아

마음이 무겁지.

by 세하

약을 먹을수록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착각한 나는

우울증이란 게 간단하게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치료에도 때가 있다고 말했었다.

암 말기 환자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초기환자의 치료가 확률이 높듯,

교통사고가 나면 크게 다치지 않아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듯이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땐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살면서 무수한 감정의 교통사고를 겪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무던히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겪은 교통사고들은 생각보다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내게 말이란 너무 무거웠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는 씨가 되어

가족이 교통사고가 나는 일을 겪어야 했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들은 친구는

돌연히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힘들다고 말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라 생각하며

매일을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말들이 움직이는 증명이 되려면

나는 로또가 이미 백번은 되었어야 했고,

난 이미 백억만장자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나쁜 쪽으로만 내 말의 무게에 민감했고

좋은 말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설레발이라는 핑계로 들뜨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내 탓이 아닌 것들로

내 탓을 돌린 무게 때문이었다.


휴무 전날밤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며 술 한 병에 기분이 들떠 신이 난 채 집으로 귀가했다.

샤워를 하려는데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 강렬한 기억.

남편을 처음으로 의심했던 그날로 돌아갔다.

그 기억은 쓰나미가 휘몰아치듯 나를 블랙홀 속으로 가뒀고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은 결국 끄억끄억 버거운 소리를 내며 세면대물줄기와 함께 흘러내렸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남편에게 맨 몸뚱이로 달려갔다.

평소대로라면 그렇게 혼자 울다 태연한 척 침대에 올라갈 나였다.


"여보 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생각하고 싶지 않는데 계속 생각이 멈추지 않아. 너무 힘들어."


남편은 젖어있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꼭 안아주었다.

내 울음이 멎을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무슨 기억인지는 그날도 묻지 않았다.

사실 무슨 기억이냐고 물었다면, 그건 거짓말할 참이었다.

내 기억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고통일 테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두어야 하는데

나는 제대로 두지 못한 것일까?

걷잡을 수 없는 기억은 남편의 품 안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 어때? 이렇게 안겨서 우니까 나는 좋다."

내 이상행동이 남편은 달갑다고 했다.


"이렇게 힘들 때마다 나한테 얘기해. 내가 위로해 줄 수 있게."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울면서 안겨본 적이 있던가?

나는 이렇게 위로받아본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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