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지.
약을 먹을수록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착각한 나는
우울증이란 게 간단하게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치료에도 때가 있다고 말했었다.
암 말기 환자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초기환자의 치료가 확률이 높듯,
교통사고가 나면 크게 다치지 않아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듯이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땐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살면서 무수한 감정의 교통사고를 겪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무던히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겪은 교통사고들은 생각보다 깊은 후유증을 남겼다.
내게 말이란 너무 무거웠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는 씨가 되어
가족이 교통사고가 나는 일을 겪어야 했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들은 친구는
돌연히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힘들다고 말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라 생각하며
매일을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말들이 움직이는 증명이 되려면
나는 로또가 이미 백번은 되었어야 했고,
난 이미 백억만장자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나쁜 쪽으로만 내 말의 무게에 민감했고
좋은 말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설레발이라는 핑계로 들뜨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내 탓이 아닌 것들로
내 탓을 돌린 무게 때문이었다.
휴무 전날밤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며 술 한 병에 기분이 들떠 신이 난 채 집으로 귀가했다.
샤워를 하려는데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 강렬한 기억.
남편을 처음으로 의심했던 그날로 돌아갔다.
그 기억은 쓰나미가 휘몰아치듯 나를 블랙홀 속으로 가뒀고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은 결국 끄억끄억 버거운 소리를 내며 세면대물줄기와 함께 흘러내렸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남편에게 맨 몸뚱이로 달려갔다.
평소대로라면 그렇게 혼자 울다 태연한 척 침대에 올라갈 나였다.
"여보 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생각하고 싶지 않는데 계속 생각이 멈추지 않아. 너무 힘들어."
남편은 젖어있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꼭 안아주었다.
내 울음이 멎을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무슨 기억인지는 그날도 묻지 않았다.
사실 무슨 기억이냐고 물었다면, 그건 거짓말할 참이었다.
내 기억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고통일 테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두어야 하는데
나는 제대로 두지 못한 것일까?
걷잡을 수 없는 기억은 남편의 품 안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 어때? 이렇게 안겨서 우니까 나는 좋다."
내 이상행동이 남편은 달갑다고 했다.
"이렇게 힘들 때마다 나한테 얘기해. 내가 위로해 줄 수 있게."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울면서 안겨본 적이 있던가?
나는 이렇게 위로받아본 적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