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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탁의 세희 Jan 23. 2020

졸업하면 저절로 취업될 줄 알았다.

다급한 마음에 잡은 지푸라기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서울의 야경 unsplash @icidius


"얘들아.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명동에서 캐롤 들어야지. 새해에 서울에서 따-악 제야의 종소리 듣고 응?"


그러려면 졸업해서 서울에 취업해야지.



대학교 4학년 졸업전시회를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일상에 지쳐서 가라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교수님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기계처럼 마우스를 클릭하던 내게 유독 그 말이 꽂혔다. 졸업전시회를 하느라 너저분한 미대 전공실 위로 눈 내리는 서울의 거리가 그려졌다. 빽빽한 인파들 속에 서서 환한 얼굴로 종소리를 듣는 내 모습이 꿈결처럼 보였다가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처럼 금방 사라졌다. 눈 앞의 모니터에 띄워진 작업물을 보고 있자니 잠시 꿨던 꿈이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리들은 이미 최대치의 피로하고 숨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취업'과 '서울' 같은 낱말은 시력검사판의 맨 밑에 적힌 글씨 같았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날이 왔다. 4년 동안 학교를 다녀 이루어낸 결실을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줬다. 그 당시 인생에서 손 꼽히는 이벤트였던지라 전시회가 끝난 이후에도 여운에 취한 채 꿈을 꾸는 기분으로 지냈다. 약빨은 일주일 정도 갔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고 매일 같이 가야하는 곳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득 추운 날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떨떨하게 꿈에서 깨어났다.



이제 졸업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고, 취업을 해야 하는구나.



학생도 아니고 백수도 아닌 시간이 이어졌다. 시간은 급행열차처럼 나를 태우고 졸업식까지 데려다 놓았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었던 나는 살고 있던 대학로의 원룸을 한 달 동안 연장해서 살았다. 아버지가 계신 본가에 들어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원래도 썩 살갑지 않은 부녀관계였고, 취업에 대한 계획이 전무한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는 더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이렇게 까지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오겠지.' 내가 가진 유일한 연료는 다급함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연료는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완성도 있는 결과물임을 연장한 방 계약이 끝 나갈 즈음 깨닫게 되었다. 다급함에 쫓겨 얼렁뚱땅 지원한 회사들에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한 달 후 이사를 도와주러 온 아버지의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보고 권태로움을 장착하기 시작한 나는 다시 들어온 본가에서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새벽까지 놀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새벽이었다. 하루를 최대한 생산성 없이 보낸 후, 잠들기 전만 되면 진작 해야 했을 걱정들이 농축 엑기스가 되어 한꺼번에 뇌관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럴 때면 식도, 기도, 혈관 등 내 몸안의 모든 길들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은 답답하고 속은 체한 것 같고... 머리는 희한하게 각성 상태에 이르면서 심장은 차게 식었다.



도저히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간 구직 사이트에는 언제나 화려한 대기업 리스트들이 먼저 나를 맞이해줬다. 팝업창을 통해 공격적으로 알려오는 정보들에 주눅 들고 전공 카테고리 분류를 설정해 다시 검색했다. 리스트가 빽빽하게 적힌 구인창에서 나는 어디로 끼어들어야 할지 모를 도로에 선 것처럼 막막해져 제목만 훑어댔다. 선배에게 들어본 적 있는 회사 이름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면 자격요건들이 응 너는 아니야. 하고 못을 박았다.



나는 모든 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정예 멤버만을 뽑는 구직 사이트는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기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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