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의 영역에서 : 외로움에 대한 횡설수설
대개 한 세기가 조금 안 되는 70-80년 남짓. 얼핏 생각하면 길어 보이나 따지고 보면 한없이 짧고 덧없기도 한 이 시간이 보통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이다. 저마다 처음부터 기약 없이 불쑥 세상에 홀로 던져져 살아가다, 또 예기치 않게 홀로 훌쩍 떠나면서.
이 지독한 '홀로' 나아가는 삶의 숙명과 덧없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또한 대개 살아있는 동안 '홀로 되지 않음'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살아있음의 의의를 둔다. 급기야 그 부산물로서 자손을 남겨 위안을 얻으면서 세상에 조금 더 길게 자신과 닮은 흔적을 남겨 '홀로' 잊히는 두려움을 무마하려고까지 한다. 사실 이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라면, 나아가 생물이라면 지니고 있을 본능, "번식"에 대한 것이다. 그 원초적임을 최대한 고상하게 빙빙 돌려 말해 보자면 이런 식이랄까─사실 유독 많은 생물 중에서 인간이 유독 번식 그 자체가 아닌 그 번식을 위한 "물리적 행위"에 본능적으로 관심이 더 많다는 건 일단 제쳐두기로 하고.
그런 점에서 난 이따금씩 생각한다. 인간이기 이전에 생물로서 주어진 기본적인 본능마저 역행한 채, 소위 '헬조선'이니 '3포 세대'니 하는 말이 나도는 이곳의 일원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나, 사람들, 그를 둘러싼 사회, 국가에 대해.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가치, 그런 생각들을 포함한 저마다의 머릿속 두뇌, 그런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동물의 특징에 대해.
언젠가 친구와 그런 얘기를 했다. 과거의 섬세한 기억들, 현재의 수많은 현상들, 미래의 불확실한 가능성 사이에서 수많은 관념과 언어를 집대성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일대기를 만들어나가고, 또 분석하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그리고 특히 더더욱 그런 끊임없는 내적 정신 활동만으로 피로함을 느끼고 마는 우리네들 인간이란 정말이지 "저주받은 신피질"을 가지고 있다고. 무법천지의 생태계에서 생존에 유리할 만한 이렇다 할 신체적 장점이 없었던 인간의 진화 방향은 머리를 키우는 것이었고, 운 좋게도 그것 하나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내며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을 지배할 수 있을만한 위치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심한 오버스펙을 가진 인간의 지능은 우리네 자신들에게 생존에 유리한 방법과 조건을 개척할 수 있게 하는 '생물로서의 순기능' 영역을 뛰어넘어 특이점에 다다랐다. 더 많은 쾌락, 더 많은 부와 풍요로움, 다른 존재보다 더 배타적 비교 우위의 질을 만족하는 삶을 끊임없이 갈망하며 온 세계와 자신을 오히려 피폐하게 했다. 어리석게도 핵무기와 같은 스스로를 자멸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도구까지 만들어내어 버렸다. 생물체로서의 삶에 대한 기본적 번식 욕구와 인간으로서 지능이 만들어 낸 이상 내지 질서 사이에서 늘 갈등과 아노미를 겪어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져버렸다. "저주받은 신피질"이 켜켜이 쌓아 놓은 이 수많은 인간으로서의 관념과 조건의 늪에서, 고작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우리네 생의 조그만 버둥거림이 너무나 슬프고 또 가엾어지지 않는가. 그 누구도 외로워지고 싶지 않음에도 모두가 애써 외로워해야 하는, 이 지독한 "지식의 저주"가 너무나 역설적이고 가혹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오늘 밤도 누군가 무심코 외친 "섹스하고 싶다"란 말이 유독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