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눈물이 마른자리엔 1화
"일단 의학적 관점에선 이상 소견은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네 안과에서 상급 병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린 결론이다. 지수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항상 메마른 눈 때문에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넘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동네 안과에선 단순 안구건조증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인공눈물을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지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증상이 단순 안구건조증이 아니라는 건 의학적 지식이 없는 자기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어려서 눈물이 많은 편이었던 지수는, 예전 같으면 눈물을 펑펑 흘려야 할 슬픈 드라마를 볼 때도 이젠 눈에서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는 눈물 한 방울이 아니라 통곡을 하고 싶지만 메마른 지수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엄마도 지수의 증상을 심각하게 여기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지수를 아껴주었던 큰 고모가 돌아가신 것이다.
"아니, 지수 쟤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네."
유난히 각별하던 지수와 고모의 사이를 알고 있는 친척들이 수군거렸다. 그제야 엄마는 이제 지수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같이 손을 잡고 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병원을 다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갖고 찾아온 대학 병원이었다. 머리가 하얀고 푸근해 보이는 중년의 의사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요. 이러다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의사는 몇 가지 안약과 인공눈물을 처방해 주고는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엄마와 지수가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 의사가 지수를 부른다.
"지수는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의사는 지수를 의자에 앉히고 그간 살아온 환경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을 중퇴한 것, 3년 넘게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실패한 것, 집으로 내려오고 나서는 벌써 이 년째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서만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수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지수의 눈을 바라본다.
"지수 네 병의 원인은 눈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거 같구나."
의사가 서랍을 열더니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낸다. 뚜껑을 열고 노란색 천으로 된 주머니를 꺼낸다.
"여기 이 인공 눈물은 내가 좀 따로 주고 싶구나."
지수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선생님, 인공눈물은 아까 주신 처방전에도 있는데요?"
지수의 얼굴을 본 의사가 빙그레 웃는다. 대학을 중퇴하고 한참이 지나 이제 곧 서른이 될 나이지만 아직 앳된 얼굴의 지수가 귀여운 모양이다.
"그건 눈이 뻑뻑할 때마다 수시로 넣는 거고, 지금 내가 주는 이 인공눈물은 지수에게 중요한 일이 생길 때 한 번씩 넣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의사 선생님은 이 안약들은 임시방편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 중요한 것은 마음을 굳게 먹고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 볼 때는 그 인공눈물이 필요 없었으면 좋겠구나."
의사 선생님은 밖에 기다리던 지수 엄마를 들어오라 했다.
"지금 지수의 상태라면, 약보다는 집 밖으로 나가 작은 일이라고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도 중요하고요."
*
그날 밤, 엄마는 지수 아빠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지수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동딸인 지수가 잘 다니던 서울의 대학을 중퇴할 때도, 뜬금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할 때도, 부모님은 지수의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노량진에서 3년이나 넘게 공부했지만, 지수는 번번이 낙방하곤 했다. 그러다 빈 손으로 대전인 집으로 돌아온 것이 2년 전.
처음엔 부모님 볼 면목이 없어서 방에 틀어박혔던 지수는 이내 그 생활에 적응했다. 한동안은 방 안에만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으나, 이내 이 생활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깥 세상이 아닌 방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수군대는 사람도, 먼저 취업해서 자랑하는 친구들도, 방 안에만 있으면 만난 일도, 볼 일도, 남들과 비교당할 일도 없었다. 지수는 점점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다음 날, 지수 방에는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던 아빠가 지수 방의 문을 두드린다.
"지수야, 아빠랑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쭈뼛거리며 방에서 나온 지수에게 아빠가 통장을 하나 건넨다.
"한 번 열어봐라."
통장을 열어보니 아빠가 5년 넘게 모은 흔적이 있는 적금 통장이다.
"3천만 원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지수가 눈만 껌뻑인다.
"원래는 네가 취업을 하면, 서울에 방이라도 하나 구해주려고 네 엄마 모르게 모은 돈이다."
아빠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지수의 눈을 본다.
"그 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라.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한 번 마음껏 해봐. 그 돈으로 방을 얻어서 일자리를 구해도 좋고, 아니면 여행을 다니며 돈을 다 써도 좋다. 무조건 지수 네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해보란 말이다. 단 절대 다시 공부를 한다거나 하지는 마라. 3년 했으면, 아빠는 지수 네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아빠가 쥐어주는 통장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지수의 뛰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인 이 방을 떠난다는 게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과 차들 사이에 자신만 멍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눈꺼풀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뻑뻑해진다. 지수가 바로 책상 위에 있는 하얀 일회용 인공눈물을 꺼내 눈에 넣는다. 하지만 눈에 통증은 여전히 계속됐다. 지수가 다시 인공눈물을 하나 더 꺼내 눈에 넣는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고 통증은 뛰는 가슴만큼 커져만 간다.
지수가 의사 선생님이 준 노란색 주머니를 생각해 낸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조금 작은 일회용 일공눈물 다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평소에 쓰는 것과 달리 노란색 튜브 안에 맑은 액체가 담겨 있다.
지수가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눈 안에 눈물을 떨어트린다.
'화아앗'
지수의 눈이 번쩍 뜨인다. 두 눈이 시원해지며 청량한 느낌이 가득하다. 뭐랄까? 더운 사막을 걸어가다 푸른 호숫물에 풍덩 들어가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어느새 두근대던 가슴도 진정되고, 두 눈의 통증도 씻은 듯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수의 마음속에는 평소 느끼지 못한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뭐지, 이 느낌?'
지수가 오랜만에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간다. 부스스한 머리, 창백한 얼굴이 볼썽사납게 느껴진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지수의 눈만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 뭔지 모르지만, 한 번 해 보자.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지수가 방문을 열고 나가 부모님께 서울로 가겠다는 말을 한다.
다음 날, 지수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서울행 기차에 올라탄 지수가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을 본다. 앞으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이제 다시는 숨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