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눈물이 마른자리엔 2화
새벽 2시, 편의점 근무시간 중 제일 한가한 시간이다.
술에 취해 담배와 음료수를 사러 오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고, 편의점의 빈 매대를 채울 새벽 물류 트럭이 들어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지수는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유일하게 불을 밝힌 환한 편의점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이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지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지수는 이 시간을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받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라 여겼다.
지수가 서울 행복동 먹자골목 끝자락에 있는 CS 24 편의점에서 야간 매니저로 일한 지도 어느새 석 달이 지났다. 입고 있는 파란색 유니폼 조끼에는 ‘안지수’란 이름이 새겨진 플라스틱 명찰이 달려있다.
신성 여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던 지수는 대학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조금은 충동적이었지만, 입학 후부터 고민하던 일이 폭발한 것이다. 사실 지수는 고등학교 성적에 맞춰 진학한 학교와 학과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적응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남들이 다 대학을 다니는 것처럼, 등록금을 냈으니 당연히 다녀야 하는 것처럼, 아무 목적도 없이 학교만 오가곤 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토익이나 다른 자격증을 공부해서 취업이라도 준비해야 하지만, 지수는 3년이라는 시간을 그저 가만히 있으며 멍하게 흘려보내 버렸다. 과 선배들은 전공인 스페인어보다 취업에 더 필요한 토플, 토익 공부를 더 많이 했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일찍 준비를 시작한 선배 중에는 벌써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지수도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중퇴하던 날 지수는 노량진으로 갔다. 학원을 등록하고 공무원 수험서를 살 때만 해도 합격에 대한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공무원 시험 준비도 대학에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수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온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노량진에서 3년을 보낸 뒤, 지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졸업장도 없는 대학도 중퇴의 학력과 공무원 필기시험 한번 붙지 못해 자신감마저 바닥난 초라한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그렇게 지수의 공무원 시험 준비는 끝이 났다.
대전의 부모님은 하나뿐인 딸 지수가 대학을 그만둔 것도, 공무원 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진 것도, 아무 말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집으로 내려온 지수는 방에 틀어박혔다. 아니 그 좁은 방에 자신을 가뒀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서 나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자 이제는 문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졌다.
처음 대전 집으로 내려왔을 때만 해도 지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조그만 중소기업이라도 지원해보려 했다. 하지만 대학을 중퇴한 학력에, 아무 경력도 없는 지수가 지원할 수 있는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가끔 학력 무관이라는 지원 자격을 보고 원서를 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우리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틀에 박힌 답변뿐이었다.
친구들의 SNS를 볼 때면 지수의 마음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 회사에 취직한 친구, 벌써 회사 동기와 결혼 소식을 알리는 친구까지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은 지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지수는 용기를 내어 대학 친구들 모임에 나가보았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나온 지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지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한 번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회사 이야기, 남자친구 이야기, 연봉 이야기, 두 시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지수의 가슴이 두근댔다. 친구가 가볍게 말만 걸어도 자기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지수는 몸이 아프다는 말을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지수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집으로 내려온 지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만 있으면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SNS 계정도 타 탈퇴했고, 핸드폰 전원도 꺼버렸다. 그리고 창문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을 쳐 놓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웃음도 없는 이 방만이 안전하고 안락한 지수만이 세계였다.
*
아빠가 준 통장을 들고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3달이 지났다. 지수는 아빠가 준 돈으로 서울 행복동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35만 원의 조건이다. 덕분에 당분간 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언제까지나 아빠가 준 돈을 헐어 쓰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다시 하면서 생활비를 벌 요량으로 선택한 아르바이트가 이곳 편의점 근무였다. 새로 들어간 원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편의점은 지수가 오가는 길에 가끔 이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날도 지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알바 앱을 뒤졌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있어도 눈을 감아 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자신 있던 지수의 마음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그 가게 앞에만 가면 무너져버렸다. 신성 여대 중퇴 외에는 아무것도 적을 것이 없는 지수의 이력서, 무슨 질문이 나올까 지레 겁을 먹은 마음은, 번번이 면접 기회 앞에서 지수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날도 한 물류창고의 행정업무를 맡는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화로 면접 약속을 하고 간 지수는, 커다란 물류창고와 그 안팎으로 드나드는 커다란 트럭에 지레 겁을 먹고 발길을 돌렸다. 회사에는 사정이 생겨 면접을 못 보겠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말이다.
"휴~, 세상에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건가..."
털레털레 힘없는 발걸음으로 돌아오던 지수의 눈에 편의점 유리창 앞에 붙어 있는 ‘직원 구함’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순간, 지수는 이곳이 자기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일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들어가서 면접을 볼까?'
순간 지수의 가슴이 두근대며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폭풍처럼 맴돌기 시작한다.
'이렇게 불쑥 들어간다고? 집에 가서 한참 고민하고 가도 늦지 않아.'
'편의점 직원이면, 매일 사람들 상대해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겠어?'
'아무리 편의점이라도 아무 경력도 없는 너를 뽑아 주겠어?'
지수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맴돌며 속이 울렁인다. 눈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뻑뻑해져 감을 수도 없다. 순간 지수가 의사 선생님이 준 인공눈물을 떠올린다. 하나를 꺼낸 눈에 넣자 눈 앞이 맑아지는 청량한 기운과 함께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그래, 직원 구한다는 곳에, 면접보러 가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숨을 크게 들이쉰 지수가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CS 24 편의점입니다.”
회색 머리칼에 큰 키, 점잖은 인상의 중년 아저씨가 지수를 맞는다. 지수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점장임을 알아챘다. 지수가 점장을 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편의점 직원 모집에 지원하려고요.”
점장님은 지수가 알바 지원자란 사실을 알고 찬찬히 훑어보며 말을 걸어왔다.
“아직 대학생이죠? 너무 앳돼 보이는데?”
전부터 작은 체구와 예쁘장한 얼굴 덕에 나이보다 더 어리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한동안 방에만 있는 덕에 하얗게 된 얼굴도 한몫했을 것이다. 점장님이 지수의 나이를 듣고 조금 놀란다.
"아휴, 나이에 비해 아주 동안이네요."
점장님이 나이와 사는 곳, 그리고 다른 아르바이트 경험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른바 즉석 면접인 것이다.
“그럼, 우리 편의점이 지수 씨가 사회에서 처음 하게 된 일자리인가요?”
지수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 나이 되도록 자기 손으로 돈 한 번 벌어보지 못한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수의 일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순간, 점장님의 물음에 지수 스스로 놀랄만한 큰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뽑아주세요. 처음인 만큼 정말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작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지만 지수에게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순간이다. 지수를 바라보던 점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우리 편의점이 지수 씨의 첫 직장이 되었네요. 환영합니다."
점장님은 지수의 첫인상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당장 내일부터 출근해도 좋으며, 일주일 정도는 기존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했다.
합격이다. 편의점 밖으로 나온 지수가 마음속으로 작은 환호성을 지른다. 지수 인생 처음, 사회에서 자기 손으로 돈을 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다시 원룸으로 가는 길, 지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비록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자리지만 단번에 면접을 통과한 자신을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다음날 지수는 시간에 맞춰 CS 24 편의점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머리를 짧게 깍은 20대 중반의 남자 직원이 있다. 김진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어제 점장님께 들었다며 지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사실 야간 근무라 밤낮이 좀 바뀌어서 그렇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에요.”
진철은 자기도 군대를 제대하고 6개월째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 편의점의 야간 근무는 수당이 붙어서 주간보다 1.5배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또 여기 점장님은 인품이 좋아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명절이면 급여 외에 따로 보너스까지 챙겨준다고 덧붙였다.
“그럼 바코드 찍는 것부터 알려드릴게요.”
진철이 지수에게 상품의 바코드 찍는 법부터 시재 맞추는 것까지 하나씩 자세히 가르쳐 준다.
새벽 3시, 편의점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상품을 가득 싣고 온 물류 트럭이 도착한다. 지수가 진철과 같이 새로 들어온 물건을 받아 매대에 가지런히 정리한다. 정리를 마치고 나머지 물건을 창고 안으로 들여놓은 진철이 매장 앞 의자에 앉아 캔 음료 한 개를 지수에게 건넨다. 지수가 진철에게 묻는다.
“근데 왜 갑자기 그만두시는 거예요?”
이마의 땀을 닦던 진철이 씩 웃는다.
“세계 일주 한번 해 보려고요.”
대학생인 진철은 다시 복학하기 전에 평생 꿈이던 세계 일주를 계획했다. 비록 전 세계는 아니더라도 배낭을 메고 백일 동안 갈 수 있는 데까지 한번 자기 다리로 걸어가 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 같더라고요. 아 참, 너무 제 얘기만 했나 보네요. 지수 씨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요? 보통 아르바이트하는 목적이 돈 모아서 해외여행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진철의 말에 지수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여태 살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대학도, 진로도 내 생각대로 하지 못한 내가, 정말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을까?’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이 아무 곳도 없다고 하자니, 그간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삶이 들킬 것 같아 창피한 기분이 든다. 순간 지수가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티티카카 호수요.”
진철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네요. 그런 호수가 있나요?”
지수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티티카카 호수는 남미 볼리비아에 있는 호수예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제일 아름다운 호수예요.”
대학 시절, 지수는 전공인 스페인어 공부는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스페인 문화에 대해서는 꽤 흥미가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의 나라들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알게 되었다. 호수라고 말해주긴 전에는 바다처럼 보이는, 그런 커다란 호수가 3천 미터가 넘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수는 진철이 묻지도 않은 호수 이름의 유래까지 설명해 준다.
“티티카카라는 어원은 모든 것이 시작되고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래요.”
진철은 신기한 듯 그런 곳이라면 자기도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진철의 질문에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지만, 지수는 언젠가 한번 티티카카 호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이 지나 진철은 한국 밖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고, 지수는 CS 24 편의점의 어엿한 야간 매니저로 혼자 근무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CS 24 편의점입니다.”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지수가 손님맞이 인사를 연습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에 틀어박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던 지수다. 비록 큰 결심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속으로 움츠려 있었던 성격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는 없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진철의 등에 숨어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 손님을 응대해야 한다. 아직까지도 손님이 들어오면 가슴이 두근대는 지수지만, 일부러라도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지수는 편의점 매니저로 석 달을 버텼다.
편의점에 오는 손님은 계절별, 요일별, 시간대별로 각각 다 다르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낮에는 아이스크림 같은 빙과류가, 저녁에는 시원한 맥주를 찾는 손님이 많이 있어 편의점의 성수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움츠리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탓에 편의점의 매출은 곤두박질친다.
그러기에 편의점마다 떨어지는 겨울의 매상을 벌충하고자 점포 앞에 군고구마나 호빵 만드는 기계를 갖다 놓고 팔기도 한다. 하지만 지수가 근무하는 편의점의 점장님은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기업의 퇴직한 임원 출신인 점장님은 어차피 여름에 매출이 많이 나오니, 겨울에는 본인 인건비 정도만 건져도 된다는 생각이다. 그 덕에 지수는 겨울 동안 한결 편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딸랑
문 앞에 매달아 놓은 종이 소리를 낸다. 새벽 2시, 지수는 속된 말로 진상 손님이 아니기를 바라며 들어오는 남자를 바라본다. 같은 손님이라도 낮보다는 밤, 그보다는 새벽에 찾아오는 손님이 더 이상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
석 달간 겪어본 진상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계산할 때 카드를 던지는 사람부터, 반말은 기본으로 달고 다니는 사람까지, 그리고 자기가 피우는 담배 이름을 몰라 ‘저기 저거’, ‘아니 조금 오른쪽’이라고 말하며 턱 끝으로 아르바이트생을 조종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초적인 진상을 넘어 술에 취해 매장 안에서 계산도 안 한 맥주를 따서 마신다거나, 진열대의 물건을 던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경찰서 지구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건, 지수에겐 참 든든한 일이다.
지금 들어오는 손님은 술에 취했지만, 다행히 다소 감상적인 취객이다. 흐트러진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은 담배 한 갑과 원 플러스 원인 커피 두 캔을 집어와 얌전히 계산한다. 그리고는 취해 더듬거리는 말로 갑자기 자기도 지수와 비슷한 연배의 딸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하며 커피 하나를 지수에게 내민다. 지수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 아저씨들은 술에 취하면 가족, 그중에서도 딸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시 종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다.
‘어라!’
지금 들어오는 사람은 석 달 남짓한 지수의 알바 기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우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을 받쳐 입은 차림의 젊은 남자가 들어온다. 한쪽 손으로 휴지 뭉치를 쥐고 이마에 대고 있다. 휴지에는 빨간색 피가 잔뜩 묻어있다. 자세히 보니 입고 있는 흰색 와이셔츠에도 여기저기 빨간 핏자국이 묻어있다.
지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석 달 동안 일하면서 볼꼴, 못 볼 꼴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선명한 빨간 피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 엄밀히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는 해발 6,309m의 아르헨티나 오호스 델 살라도 화산호이다. 다만 3,800m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항해가 가능한 호수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를 꼽으라면 티티카카 호수를 꼽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