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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10.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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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일 빛의 채석장 (Carrières de Lumières), Maison de Santé Saint-Paul de Mausole


캠핑장에서 오늘의 첫 목적지인 빛의 채석장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7시에 기상하여 9시 전에는 정리하고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여행 계획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동거리와 동선을 비교적 꼼꼼하게 계산했다. 계획표를 만들 때 컴퓨터로 구글맵에서 목적지까지 자동차로 소요되는 시간을 확인한다. 식사 시간, 여유 시간 등을 고려해서 체류 시간을 대략 계산하는 식이다. 이 정도만 계획을 해둬도 실제 여행에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엄마가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게 되더라도 현지에서 정보를 검색할 일을 최소화했기에 여유가 생긴다.




빛의 채석장으로 가는 입구부터 차량이 많아서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일정 중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비 포장된 임시 주차장에 겨우 자리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전시장까지 200여 미터가 멀게 느껴질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채석장의 규모가 엄청나다.


빛의 채석장은(Carrières de Lumières) 거대한 규모의 채석장을 실내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화가들의 작품을 70개의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영상으로 만들어 흰색의 채석장 내부에 비추는 방식의 예술 공간이다. 영상과 함께 음악이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바깥은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로 찜통인 반면, 채석장 내부는 서늘하다. 외부 온도보다 최소 10도는 낮은듯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


피카소와 고야 등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번갈아가며 벽과 바닥에 비친다. 그림과 어울리는 다양한 음악과 함께 환상적인 빛의 쇼가 펼쳐졌다. 아이들에게는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채석장이라는 독특한 장소에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연출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시장은 넓기도 하고 높기도 해서 기존의 어떤 건물에서도 느끼지 못한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다른 차원 속의 신비로운 세계 속에 잠시 여행 온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시원했다.






생폴 병원의 건물과 중정

Vincent! Vincent! Vincent가 아닌가?

오늘의 숙소가 있는 아를(Arles)에 가기 전에 그가 머물렀던 생래 미의 생폴 정신병원(Maison de Santé Saint-Paul de Mausole)을 방문했다. Vincent VAN GOGH는 36세이던 1889 년 5 월 8 일부터 1890 년 5 월 16 일까지 이 병원에서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아를에서 고갱과의 갈등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였다. 당시 이 병원에는 빈방이 30개 정도 있었고, 고흐는 병원의 배려로 침실괴 함께 작업실도 별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을 동행해서 들에 나가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비록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이곳에 머무는 1년여 동안 그는 유화 143점, 드로잉 100점을 생산해낸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한 방
고흐가 머물던 2층에서 내려가는 계단
그가 머물던 방의 창밖 풍경


코트 다쥐르의 내리쬐는 태양 아래 있어도, 그가 실제로 머물던 작은 병실은 놀랄 만큼 서늘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라벤더 밭이 내다보이는 매우 작고 소박한 방이었다. 높이가 낮은 싱글 침대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묘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드디어 그가 실제 머물던 공간에 오게 되다니. 2002년도 암스테르담의 고흐 뮤지엄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4개의 해바라기를 동시에 한벽에 걸어두고 전시한 적이 있었다. 운 좋게도 당시 배낭여행 중이던 나는 그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조금씩 다른 네 점의 해바라기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가 머물던 방이 있는 정신병원 건물과 오른쪽의 예배당


그가 거닐었을 정원과 건물 모퉁이들, 그의 방 창문이 보이는 라벤더 밭을 걸어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과 외로움, 동시에 그 가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눈부신 햇살 아래 서있다는 사실로 이름 모를 행복감과 충만함이 느껴졌다. 문득 어릴 적 과수원을 하시던 외갓집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일하러 나가시고 하루 종일 혼자 놀던 여름 오후.  보이는 건 하늘과 나무뿐이던, 언제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오실까, 그보다 더 언제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까 목 빠지게 기다리던 어느 늦은 오후의 느낌이었다. 그는 과연 여기서 무엇을 기다렸을까? 다른 화가 친구들이나 동생이 방문해주기를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그림이 세상의 인정을 받아 테오에게 진 빚을 갚을 날을 기다렸을까?


“ 테오에게,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다. 동물원 같은 곳에 갇힌 미친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보노라면,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가 사라진다. 그러면서 정신병과 다른 병들은 같은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곳 의사들은 나에게있었던 일이 일종의 간질성 발작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1889년 5월”





아를(Arles)에 도착하여 에어비앤비 주인이 보내준 메시지를 읽으며 집을 찾아다녔다. 네비가 알려준 근처에 주차를 하고 아이들은 차 안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일일이 집 문 앞의 번호를 확인하며 찾아 헤맸지만, 분명히 근처에 있어야 할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주인에게 도움을 청할까 해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마침 한산한 골목길에 식빵 한 봉지를 들고 지나가는 청년을 불러 세워서 길을 물었다. 오후가 되어도 더위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차에서 기다릴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다. 청년은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기꺼이 나의 집 찾기에 나서 주었다. 하지만 10분 이상이 걸려서야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열쇠 보관함 시스템에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열쇠를 꺼내서 문까지 열어주었다. 그도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이런 도움이 없다면 얼마나 어려운 여행이 될까? 몇 번이고 청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작별했다.

작지만 예쁘게 꾸민 에어비앤비 숙소, 위치도 가격도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숙소에서 쉬는 동안,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마을의 중심가가 있었다. 초저녁의 아를 마을은 희미해지는 저녁 햇살, 문을 닫은 관광안내소와 행사용 시설을 철거 중인 사람들, 식당들, 기념품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기타 연주자가 노래하는 술집이 있었다. 아! 이곳이 고흐가 잠시나마 행복했던 도시로구나. 내가 드디어 아를에 오게 되었구나. 마트에서 삼겹살, 양파, 버섯, 맥주와 음료수를 사고 서둘러 숙소로 왔다. 서둘러 삼겹살과 야채를 굽고, 비빔면을 만들어서 또 행복한 저녁식사를 했다.


언젠가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별이 빛나는 밤의 아를에서의 첫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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