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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09.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9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9, 6월 20일 마르세유(Marseille)


밤새 더워서 텐트의 방충망만 닫은 채 전기장판은 켜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캠핑장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마르세유이다. 마르세유는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근대에는 아시아와의 교역을 담당하던 무역과 상업의 중심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 구석기시대 인류가 거주하던 흔적이 남아있고, 로마의 손길이 닿았던 수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시이다. 반면 여러 여행책자와 여행 카페에서도 마르세유의 치안을 지적하는 내용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20대 배낭여행 때에 마르세유 항구 근처에서 지나가던 남자아이들 무리에게 조롱을 당한 안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서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내 본성에 따른다면 그냥 패스하고 싶은 도시였다. 하지만 그때는 가보지 못했던 이프섬의 성(Chateau d’IF)을 꼭 가보고 싶었다. 또 왠지 두려움에 지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일종의 작은 나와의 싸움이다.  저항을 물리치고 마르세유를 목적지에 넣었다.  맞다. 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이며 유서 깊은 도시인 마르세유를 들를지 말지를 고민할 정도로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바다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대성당과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


배낭여행 때는 기차를 탔었는데, 자동차를 운전해서 방문하게 된 마르세유는 니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사용하는 교통수단과, 나이, 자녀의 유무에 따라 같은 도시인데도 20대 때 보았던 그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다르다.  마르세유 시내로 가는 도로에는 보행자용 신호등이 매우 많다.  작은 도시나 마을의 교차로에는 신호등 대신에 대부분 로터리가 있다. 이미 나는 수많은 로터리를 통과했고 이제는 매우 편안하게 통과하기에 자칭 로터리의 여왕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들이 정신없이 들어오고 돌아나가는 3차선 이상되는 로터리에 들어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언제 끼어들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면 가차 없이 뒤에서 빵빵거린다. 서너 번의 큰 로터리를 ‘에라 모르겠다’ 자세로 무사히 통과했다. 마르세유 항구 근처에 Indigo 주차장에 주차까지 마쳤다. 시설은 크고 좋은데, 주차장 구석구석에서 노상방뇨의 흔적을 후각으로 느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할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재건된 도시, 그래서 비교적 현대적인 높은 건물들이 많다.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여행안내소에서 지도만 받고 나왔다. 나는 이미 마르세유에 와본 경험이 있었기에 오늘은 주로 이프 성과 항구 주변의 박물관 정도만 여유 있게 돌아볼 예정이다. 우선 선착장에서 이프섬으로 가는 배표를 미리 사두고 근처를 돌아보기로 한다. 지나는 길에 괜찮아 보이는 태국 식당에서 새우가 듬뿍 들어간 볶음 쌀국수와 쇠고기와 숙주를 넣은 밥을 먹었다. 역시 친숙한 음식을 먹으니 아이들도 나도 모두 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항구에 정박된 수많은 요트들과 언덕 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




여행 9일 째인데 한결같이 해가 쨍쨍하고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기는 날들의 연속이다.

자선원센터(La Vielle Charite)는 바로크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돔 지붕의 예배당이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각 층마다 수많은 아치들로 장식이 된 3층 높이의 건물들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다. 17세기 마르세유에서는 극빈자를 감금하라는 왕실의 정책에 따라, Chasse-gueux ( "거지 사냥꾼")라고 불리는 경비원이 거지들을 모았다고 한다. 그들 중 비거주자들은 마르세유에서 추방되었고 마르세유 원주민들은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시의회에서는 이 거지들을 감금할 곳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 지역 출신이자 왕실의 건축가였던 Pierre Puget 가 설계하고 그의 아들에 이르러서 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극빈자들을 가두기 위해 이렇게 멋진 건물을 정성 들여 짓다니. 건물 내부와 예배당 안을 무료로 볼 수 있으나, 전시장을 관람하려면 어른은 8유로를 내야 한다.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 중이었으나, 잠시 고민 후에 건물을 둘러보는데서 만족하기로 했다. 프랑스인들의 피카소 사랑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극빈자를 수용하려고 지은 건물이 아름답기까지 하니 좋다..  1940년에 르 코르뷔지에가 방치된 이곳을 새롭게 단장했다.


바로크 양식의 돔을 얹은 예배당.


햇빛이 내리쬐는 곳은 정말 더웠지만, 건물 안은 시원했다. 이 곳은 20대 배낭여행 때 들렀던 곳이고, 건물이 아름다워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오고 싶었다. 추억의 장소에 와 보니 역시나 감회가 새롭다.  되돌아보니 20대의 나는 지금에 비해서 더 많은 염려와 우울감 그리고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아이 둘을 키우는 나는 더 성숙하고 여유로우며 확실히 더 행복하다. 더위에 지쳤던 아이들이 시원한 건물의 복도를 편안하게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 나도 함께 편안함을 느낀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항구도시에 어울리는 벽화




마르세유 항구에는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다. 이프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면 오후 1시 이전에 가는 배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어느 곳이든 배를 타고 당일에 돌아와야 한다면 너무 늦지 않게 움직이는 편이 마음 편하다. 마르세유 항구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이프섬에 도착한다.  배안에는 우리 셋과 연인 한쌍이 타고 있었다. 성 바깥쪽 바위 위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어미 갈매기가 둥지 근처에 접근한 관광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연인과 함께 온 이 남자 관광객은 어미 갈매기를 피해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 광경이 재밌어서 함께 한참을 웃었다.


이프 성(Château d'If), 섬 전체가 감옥


이프 성은 알렉상드 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으로 유명한데, 감옥으로 쓰이던 곳이다. 원래는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이 워낙 부실해서 요새로서의 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주로 위그노(프랑의 프로테스탄트)나 정치범을 가두는 수용소가 되었다.


성안의 뜰에 있는 우물에서 올려다본 하늘, 탈출하고 싶어 진다.

 섬 이쪽 끝에서 반대편 끝가지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작은 섬을 대부분 차지하고 서있는 감옥. 섬 자체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인 셈이다. 실제로 성안의 작은 방들에 들어가 보니 투옥되었던 죄수들이 느꼈을 쓸쓸함과 고독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500년대 초반 교황 Leon X 당시 포르투갈 왕이 아시아에서 코뿔소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아 로마에 있는 교황에게 보내려고 했다. 이프섬 근처에서 배가 좌초되는 바람에 이 코뿔소는 한동안 이 작은 섬에 발이 묶이게 된다. 다시 새로운 배를 타고 로마로 항해하던 도중 제노바 근처에서 폭풍우에 배가 침몰하고 만다. 결국 이 가여운 코뿔소는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왜 크고 순진한 짐승을 끌고 다니다가 죽게 만들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왕과 종교가 문제로구나.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문, 탈출에 성공한 죄수는 없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외에는
창문이라도 있으니 고시원보다 낫네.
동굴 같은 감옥 안, 영상 시청 중



구름 낀 흐린 날씨에 음침한 감옥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전망 덕분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마냥 즐거운 아이들이 서로를 잡겠다며 어지럽게 뛰어다니기에 조심하라고 소리친다.


옥상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항구, 죄수들은 가끔 옥상에 와서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었을까?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은 중세 이후 프랑스에 지어진 성당 중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녹색과 흰색의 벽돌을 교차하며 지었고, 돔과 모자이크 장식이 있는 비잔틴 양식의 성당이라, 다른 고딕 양식의 성당과 확연히 구별이 된다. 3000명을 수용할 만큼 크고 높은 성당이라 매우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성당에 가면 가장 먼저 2유로를 기부하고 초를 켠다. 자리에 앉아서 5분 동안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수다쟁이 아들까지 침묵하며 함께 묵상하는 이 순간은 여행의 쉼표를 찍는 것과 같다.

흰색과 녹색의 벽돌을 번갈아 사용해 인상적인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
성당 내부도 역시 크다.


성당에서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바다를 바라보는 직사각형의 현대 건축물인  프로방스 박물관(Musee Regards de Provence)을 방문했다. 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치 있고 흥미로운 현대적인 회화와 사진작품이 많아서 아이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오래된 그림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현대적인 작품들은 아이들과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서 좋다.  계속 말장난을 하고 싶은 아들 녀석은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해서 누나의 구박을 받지만, 아직 순수한 모습에 엄마는 행복하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선배가 책과 함께 준 엽서 속 사진 작품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었다. 프로방스의 누드 -Le nu provençal - Willy Ronis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쁜 그림 하하하




아이들은 하나씩 사준 방수가 되는 카메라로 마음껏 사진을 찍는다.


저녁이 되어 캠핑장으로 돌아와 공동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캠핑장 오피스 건물 옆의 식당으로 향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기분이 된다. 다시 관광하러 나서도 될 만큼 해는 아직도 하늘에 높이 떠 있다. 캠핑장 식당까지 슬리퍼를 끌며 다른 사람들의 캠핑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10시가 되어야 완전히 어두워지는 한여름의 프로방스. 대낮의 뜨거운 태양은 미련 없이 서늘한 바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겸손하게 물러갔다. 아이들은 콜라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나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당연히 차가운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서. 식당에서 일하는 중년 신사가 아이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준다.  마치 이런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위해 이 모든 여행이 준비하는 것처럼  다소 팽팽했던 신경 줄을 느슨하게 널어둔다.


세탁실을 이용하려면 캠핑장 사무실에서 세제와 세탁기에 맞는 코인을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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