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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08.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8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8. 6월 19일 까시스(Cassis), 깔랑끄(Parc national des Calanques)


엑상 프로방스의 캠핑장에서는 3일을 머물렀다. 아침부터 짐을 정리하고, 처음으로 텐트를 접었다. 딸과 둘이서 10분 넘게 낑낑대다가 텐트를 접었다. 혹시 잘못해서 텐트 살이 부러지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  다음부터는 확실히 쉽게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짐을 천천히 여유롭게 정리했다. 짐 싸는 일로 나도 아이들도 스트레스받기 싫었다. 서둘러야 10~20분 차이이니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고 짐 싸는 일도 즐기기로 한다.


한 시간 정도 국도를 달려서 까시스의 캠핑장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사이트를 배정받았다. 탁 트인 넓은 캠핑장은 샤워실과 싱크대, 세탁실이 모두 넓찍해서 마음에 들었다. 나무들 사이에 아늑한 곳이 이번에 우리가 머물게 된 사이트이다. 전기 장판을 켜야해서 콘센트 가까이에 텐트를 순식간에 펼쳐 놓는다. 두 번째 캠핑장이라 그런지 이제 제법 손발이 척척 맞는다.  

캠핑 고수들이 보면 뜨악할 소박한 우리의 텐트와 아늑한 캠핑 사이트




캠핑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카시스 항구가 있다. 좁은 골목길도 제법 능숙하게 긴장하지 않고 운전하여 가장 번화한 곳의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마쳤다. 며칠 사이에 차와 사람이 많은 좁은 오래된 골목에도 적응한 것 같아서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유람선으로 2시간 투어 티켓을 구매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항구는 유명한 관광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높은 건물도 없고 오래된 낮은 건물들과 멀리 보이는 석회 암석이 드러난 산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졌다. 건물 1층은 대부분 물놀이 용품을 파는 상점과 레스토랑, 100가지 사탕을 파는 상점 등이 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거리는 깨끗하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어서 유쾌하고 흥겨운 장소가 되었다. 분명히 이곳 사람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베인 듯하다. 야외 테이블마다 열린 공간과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항구 근처의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 버거를 먹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탕가게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래된 낮은 건물들이 좋다.
내가 이런 좁은 길들을 무사히 다닌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작은 배 위에는 우리를 포함해 20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있었다. 동양인이 우리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탄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매우 다정한 커플들이었다. 네덜란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족히 70은 되어 보이는 슈퍼맨 티셔츠를 입은 할아버지와 검은색 수영복을 입고 다른 옷은 걸치지 않은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다.  할머니는 상당히 풍채가 좋으신데, 자전거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배가 출발하고 아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자동 손선풍기로 더위를 식히자 사람들이 매우 신기해하며 구입처가 어딘지 물어보기도 했다.

여행 내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손선풍기, 아이들은 유럽에 와서 손선풍기 장사를 하자고 한다.


 소문대로 깔랑끄 국립공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 절벽과 고급 요트들이 즐비하게 정박된 곳 등 한눈팔 새 없이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 여름 남프랑스의 땡볕 아래 그늘막이 없는 배 위에서 풍경을 즐기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돌아와서 다시 살펴보니 바다가 투명하게 보이는 곳에서 카약을 할 수 있는 곳도 근처에 있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활동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을 잘 돌려야 한다. 내 성격상 자칫하면 습관적으로 좀 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일정에 넣지 않았음을 자책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을 내어 온 여행이니 자연스레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깔랑끄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Calanques) 듣던 대로 절경이다.
요트가 정말 많다.




아이들이 지루해했던 보트 투어가 끝나고, 곧바로 보트에서 보았던 아담하고 파도가 없는 낭만적인 해변을 찾아가기로 했다. 네비가 이끄는 대로 주차를 하고 안내표지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니 절벽이라고 할만한 곳이었다. 용감한 성인들 몇몇이 아슬아슬하게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가고 싶었던 작은 해변으로 가려면 네발로 기어서 절벽 같은 곳을 내려가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는 힘든 코스였다. 아쉽지만 항구 근처 자갈 해변에 돗자리를 폈다.

오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누나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과 항상 느긋한 누나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깔랑크의 절벽이 아름답게 펼쳐졌고, 오고 가는 요트와 투어용 배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자갈밭은 따끈따끈 했지만, 물은 제법 차가웠다. 딸은 일치감치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까맣게 타는 것이 싫다면서 수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은 한 시간 가까이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영을 즐겼다. 작은 녀석은 누나가 하는 일이라면 똑같이 따라 한다. 나는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했다. 한국인 가족이 바로 옆에 돗자리를 편다. 아빠와 엄마, 형제가 함께 여행을 온 듯하다. 우리 아이들이 혹시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우울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가 한번 더 밝게 웃어줘야지.





충분히 물놀이를 하고 캠핑장으로 가기 전에 저녁거리를 준비해야 하기에 근처 마트를 검색했다. 아차 영업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니 직원들이 문 닫을 준비에 한창이다. 서둘러 야채와 과일을 샀다. 캠핑장에 와서 야채를 많이 넣고 라면을 끓여서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따뜻한 밤 동안에 평안하게 잠이 들었다.

무적의 캠핑카. 완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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