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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07.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7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7, 6월 18일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생빅투아르(Montagne Sainte-Victoire)


폴 세잔이 수도 없이 올랐던 생빅투아르산(Montagne Sainte-Victoire)이 액상 프로방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당연히 그곳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산만큼은 직접 발로 밟고 최소 두세 시간은 걸어보고 싶었다. 그때야 비로소 세잔이 느꼈던 감동과 그의 그림이 탄생한 내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출발하고 싶었다. 일찍 주먹밥과 된장국을 아침으로 먹고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나무가 많은 프랑스의 도로

가로수가 우거져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의 도로와 캠핑장을 지났다. 이처럼 한적한 도로를 운전할때는 맘도 함께 편안하다. 곧 조금씩 지대가 높아지더니 곧 다소 경사가 있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나타났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하며 운전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다. 사실 오고 가는 차도 거의 없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암석이 많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산은 거친 돌산으로 곧 해가 머리 꼭대기에 멈춘 이후로 그곳을 올라가기란 쉽지 않을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키 작은 덤불들이 간신히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등살에 뙤약볕에 산을 오르는 어린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 짧고 쉬운 코스를 선택하여 호기롭게 트레킹에 나섰다. 폴 세잔의 대피소라고 표시된 지점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화구를 등에 매고 지팡이를 짚고 올랐을 이 산에서 그의 발자취를 느끼고 싶었다. 폴 세잔이 되어 메마른 산의 구석구석에서 발산하는 신비로운 예술적 영감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우뚝 솟은 산 덩어리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오전 10시에도 이미 6월의 남프랑스의 태양은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은 곳곳에 나무와 건물들이 그늘을 만들어내는 마을에서 만난 햇살과 매우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불과 300미터쯤 올랐을 때 나는 바로 항복했다.  대신 멀리서 산을 우러러보았다. 사막같이 메마른 석회암 바위들과 덤불들과 반짝이는 프로방스의 태양 빛이 아마도 세잔을 이곳으로 끊임없이 불러들였던 것 같다.


세잔의 대피소와 십자가가 있는 꼭대기에 못 오른 것이 못내 아쉽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의 표면들조차 바라볼 때마다 제각기 독특한 형태를 띠어갔다. 먼발치에서 보면 단일한 형태를 취하는 듯 하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마치 막 날아오르는 새와도 같은 형상으로 자유로운 공간에서 변화무쌍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산의 표면들은 뒤로 물러나 있기도 했고, 곧 만져질듯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관상 표면들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손에 잡힐 듯이 눈에 가득 잡혔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 , 페터 한트케 p. 71-72]


나의 턱없이 부족한 표현력을 대신할 위대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에서 한 구절을 빌려왔다.






액상 프로방스 시내로 돌아와 어제 보지 못한 시내를 여유롭게 돌아본다. 세련되게 정리된 코믹북 서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명한 마블 시리즈와 일본의 잘 알려진 코믹북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섬세하고 예술적인 프랑스 코믹북들이 아름다워서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 지역의 서점을 검색해보니 무려 20곳의 개인서점이 검색되었다. 어떤 곳은 커피와 디저트도 함께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작은 개인 서점들이 살아있는 골목이 정말 부러웠다. 여행 중에 책방 주인의 취향에 따라 선정된 책들과 개성 넘치는 디스플레이에 끌려서 들어가 본 서점이 매우 많았다. 동네에 서점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고, 책을 보기 위해서는 시내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삭막하게 느껴진다.  슬리퍼를 신고 향긋한 커피가 있는 작은 서점에 들러, 내가 좋아했던 책이름을 말하면 주인장이 비슷한 책을 추천해주는 다정한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세상이 오로지 ‘돈’의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믹 북을 파는 책방(La Licorne Aix)의 축구에 관한 코믹북
마블 캐릭터 좋아하는 어린이



소설책만 판매하는 동네 작은 책방, 의욕은 있으나 영어 문맹인 아들의 안타까운 손길




우동 먹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노래하는 아들을 위해 교토라는 일식당을 검색하여 찾아갔다. 연어와 아보카도로 만든 롤과 각종 야채와 간장 소스로 볶은 면요리와 우동을 흡족해하며 먹었다. 오죽 만족스러웠으면 가게 앞에서 인증 사진까지 찍었다.


슬슬 스테이크가 지겨워진 아들이 찾은 우동





덥고 지치는 오후를 시원한 미술관에서 보내려고, Musée Granet을 찾아갔다. 하지만 월요일은 휴관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쉬움을 달래며 어제 돌아보지 못한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네 마리 고래 분수대 (place des Quatre-Dauphins),  이 근처 골목길은 조용하고 운치 있다.
르네 왕의 분수(Fontaine du Roi René), 이 길은 곧게 뻗어 있고 폭이 넓다. 주변에 상가와 식당이 많다.




어제 오후에 모기향을 피우려고 하는데 성냥도 없고 버너는 가스통이 맞지 않아 불을 켤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옆 사이트 텐트 주인인 노부부에게서 불을 얻어 왔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마트가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필요한 것을 살 수 없었다. 오늘 돌아와 보니 텐트 앞에 작은 성냥갑이 놓여 있다. 노부부가 우리를 위해 두고 가신 것이다. 작은 성냥갑이 마음 전체에 훈훈한 추억을 새겨 주었다.


시내 가운데에 마트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한팩 씩 샀는데 모두 다 합해 만원 정도 들었다. 고기는 싱싱하고 싸고 좋구나. 오늘은 다행히 부루스타와 거기에 맞는 가스를 살 수 있었다. 캠핑장에 돌아와 고기와 양파, 양송이버섯을 함께 구워서 고추장과 함께 먹었다. 남은 고기와 밥에 야채를 다져 넣어 볶은 뒤 김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먹었다. 아이들은 천국의 맛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준다. 이럴 때 엄마라서 좋은 것 같다. 엄마니까 해줄 수 있는 작은 밥상.

갓 잡은 듯 싱싱한 돼지고기


캠핑장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대형 텐트와 구색을 갖추거나 캠핑카를 사용했다. 우리처럼 원터치 텐트를 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로 노인 부부나 중년의 부부가 눈에 띄었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병과 과일, 기타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았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캠핑장의 예의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소음이 거의 나지 않아 고요하기까지 하다. 오직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핑크빛 노을이 질 무렵 또 다른 팀이 조용히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과 나는 캠핑장 벤치에 앉아서 각자 일기를 쓰고, 아이들은 어제처럼 또 축구게임과 탁구를 한다. 오늘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만보를 훌쩍 넘긴 아이들 피곤한지 금새 코를 곤다. 잘자라 어린이들, 오늘도 무사히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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