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Sep 06.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6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6, 6월 17일 액상 프로방스(Aix-en Provence)


캠핑장에서의 첫날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늑하고 편안했다. 아침으로 건조 된장국과 김자반, 멸치로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다. 늦어도 9시 전에 숙소에서 출발하는 것이 여행의 규칙 중 하나이다.


캠핑장에서 액상프로방스 시내까지는 차로 20분가량 소요되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유럽의 골목길은 일방통행이 많고, 오래된 마을이 많아 폭이 좁다는 주의를 많이 보았는데, 액상프로방스의 올드 타운 내부의 지하 주차장을 찾아가는 길에서 이 모든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행 시 주의 사항 중 특별히 남부 프랑스에는 주차된 차량을 노리는 도둑이 많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래서 미리 조사한 cctv가 설치된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지하 주차장을 이용한다. 주차 요금은 도시마다 다르지만 오후 내내 마을을 돌아보아도 7~8유로 정도이다. 나는 주차요금, 공공장소의 입장료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안전하게 차를 주차하고 마음 편히 다니는 것이 이득이다. 어쨌든 차 내부에는 물건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어쩔 수 없이 큰 짐을 차에 두고 주차할 때에는 검은 햇빛 가리개용 천을 준비해서 가방을 덮어 두는 식으로 나름 보안 장치를 해두었다. 행여나 주차한 곳을 찾지 못하여 헤맨다면 낭패니까, 구글맵에 주차 위치를 기록해두면 편리하다.

한 발짝 앞서 갔던 화가들의 형 폴 세잔


액상 프로방스(Aix-en Provence)는 기원전 123년 로마에 의해 설립되었고, Aix-en는 Aquae Sextiae를 줄임말로 샘 또는 온천을 뜻한다. 인구가 약 15만 정도 프로방스에 있는 도시 치고는 제법 큰 도시이며,  폴 세잔의 고향이기도 하다.  미하보 광장에 화구가 든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든 폴 세잔의 동상이 있다. 이 성실한 화가의 모습이 이 도시를 여행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피카소가 존경하던 화가의 고향,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여러 차례 오르며 평생을 그렸던 생트빅투아르 산, 피카소가 존경해 마지않던 화가의 고향.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미 엑상-프로방스는 매우 의미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도시 곳곳에 폴 세잔과 관련이 있거나 주로 그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에는 바닥에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가 살았던 도시임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액상 프로방스는 미하보 광장(Course Mirabeau)의 커다란 분수(Fontaine de la Rotonde)를 중심으로 박물관과 성당이 사방으로 떨어져 있다. 여태까지 방문한 작은 중세 마을보다는 훨씬 큰 도시이다. 따라서 한 여름 무더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목적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지칠 수 있다.  


제일 먼저 Hotel De Caumont라는 18세기 저택을 둘러보기로 한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원이 있는 튼튼한 저택이다. 프로방스를 주제로 그린, 프랑스 현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관람객들은 모두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들고 매우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그래서 작은 소리를 내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상설 전시장에는 세잔, 고흐, 쇠라, 드가, 마티스, 피카소의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어서 입장료 14유로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어린이들은 무료입장이다.

진지한 관람객들


미술품 외에도 18세기 화려한 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 가득한 방이 여러 개 있다. 훗날 방문하게 될 베르사유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화려한 침구와 가구들을 아이들과 감탄하면 둘러보았다. 젊은 시절 세잔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상영을 하니 편안하게 앉아서 휴식도 취할 겸 감상해 보는 것도 좋다. 역시 기프트 샵에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국적인 장식품들과, 아름다운 그림책, 필기도구와 같은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긴 여행이라 짐이 될 것을 알기에 아이들이 원하는 작은 퍼즐과 필기도구 한두 개 정도 사는 걸로 만족하고 나온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프샵에서는 그곳에서만 판매되는 물건들이 있다.


시청(Town Hall of Aix-en-Provence) 앞 광장에는 일요일마다 시장이 열린다.  마을 안 광장에는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시계탑, 시청 건물과 레스토랑, 많은 상가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흥겨운 곳이다.  여행 중 만나는 시장은 또 얼마나 우리의 흥미를 끄는지. 지역 주민이 장 보러 온 풍경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주로 무엇을 사는지, 어린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엄마로서 궁금한 점이 많아서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20여 가지의 다양한 양념을 넣어 절인 올리브들과, 라벤더로 만든 향기 주머니와, 예쁜 색의 비누들, 아이 얼굴만 한 토마토와 형형색색의 저렴한 꽃다발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특히나 병에 든 각종 소스와, 꿀과 잼을 보면 한 개씩 다 사보고 싶을 만큼 그 맛이 궁금하다.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 시청 앞 장터(Marche)
싸고 싱싱한 야채

한낮의 태양이 뜨거워서 식당을 검색하지 않고 광장 옆에 자리한 누가 봐도 관광객들만 와서 먹을 것 같은 식당의 파라솔 아래에 앉아버렸다. 뜨거운 감자튀김과 샐러드, 버거와 스테이크가 우리가 시킬 수 있고 또 위험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가장 만만한 메뉴이다. 너무 바쁜 웨이터의 관심을 받기가 어려운 바쁜 시간이다.  오후의 피곤에 대비해 에스프레소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장터에서 국밥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고 조용한 마을들을 며칠 돌아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고 가는 장터에 오니 또 좋다.




견과류와 말린 과일 등을 넣은 다양한 누가( Nugat)

Callisons이라는 프랑스 전통 과자가 이곳 특산물 중 하나인데, Le Roy Rene라는 상점에서 과자를 만드는 틀도 보고, 사진도 구경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각종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넣은 누가(Nugat)를 한 덩어리 샀다.  

Callisons을 만드는 모습



분수대에서 목욕하는 강아지가 재미있어 바라 보기도 하다가 생소베르 성당(Cathédrale Saint Sauveur)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 성당은 비교적 크고 아름다웠다. 밖의 기온이 35도 정도 되었는데, 내부는 최소 10도는 낮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초를 켰고, 나는 잠시 방명록을 기록했다. 평상시 내가 애국자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어쩐지 이렇게 멋진 곳에 오게 된 것에 감사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치열하게 사는 한국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성당에는 15세기의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니콜라 프로망[ Nicolas Froment ]의 『불타는 수풀 속의 성처녀』라는 제단화가 있다.

아름다운 제단화




오후 4시쯤 되어 피곤해하는 아이들과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한낮의 태양열을 받아 따끈따끈한 수영장에 돗자리를 깔고, 수영하다 책을 보았다. 영국 리버풀에서 왔다는 할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해마다 이맘때쯤 이곳으로 캠핑을 온다고 하셨다. 가을에 리버풀에서 진시황의 병마용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고,  우리도 8월 말쯤 리버풀에 들를 예정이라 운이 좋으면 볼 수 있겠다고 답했다. 할머니와 프로방스 여행의 좋은 점, 사람들 이야기, 날씨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 말만 듣다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잠깐이지만 ‘어른’들의 대화를 하니 그렇게 또 반가워서 수다를 떨었다. 그렇다 여행 이후 불어를 하지 못하는 내가 프랑스에서 어린이들과만 주로 대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캠핑장에서의 두 번째 날은 한결 여유로웠다. 텐트를 다시 칠 필요가 없고, 그대로 잠이 들면 되니까. 시내에서 사 온 재미있는 모양의 쿠키와 주먹만큼 큰 머랭, 샌드위치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아이들은 캠핑장에 있는 축구 게임을 하고, 탁구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취향 저격 쿠키와 대왕 머랭, 엄마가 좋아하는 건강한 샌드위치


작가의 이전글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