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Sep 05.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5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5, 6월 16일 뚜헤뜨-슈흐-루 (Tourrettes-sur-Loup) - 생 폴 프로방스(Saint Paul Provence) -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숙소에서 20분 거리의 작고 아름다운 중세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일치감치 길을 나섰다. 구글 네비가 인도하는 대로 별 의심 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곧장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가파른 경사로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돌려서 나오지도 못하고 혹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벌벌 떨면서 간신히 언덕을 넘어 큰 도로에 진입했다.  이런 길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절대 들어오지 않았을 길이었다.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정말 십 년 감수했다. 이후부터는 무작정 네비만 따라가지 않고, 미리 구불구불한 길로 가는지를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그 후로는 완만한 커브길을 돌아 가로수가 풍성한 길을 달려 뚜헤뜨-슈흐-루 (Tourrettes-sur-Loup)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미술, 공예, 조각, 보석, 직조 등의 작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달콤한 아침식사, 종종 아침도 현지 식당에서 먹는 것 너무 좋다.

마을 입구 이른 아침 로컬 식당에서 향기로운 카푸치노와 아이들을 위한 핫쵸고, 촉촉한 살구 파이, 부드러운 크림이 듬뿍 들어간 스펀지케이크와 크루아상을 먹었다. 하나하나 모두 만족스러운 퀄리티와 맛을 보여주었는데, 모두 다 해서 가격이 7.5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되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전반적인 프랑스의 높은 물가를 고려했을 때 정말 저렴했기 때문이다.



거친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동화책에 나올법한 마을 지도

마을은 고요했다. 서울의 북촌 주민들이 관광객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조용히 살금살금 마을을 돌아보았다. 나와 두 아이가 중세 마을의 세트장을 온 것 같았다. 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9시였는데, 우리 말고는 길에 거의 사람이 없어서, 신비로운 마을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집집마다 토분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었고, 나무 조각과 쇠를 다듬어 장식품으로 꾸몄다.  프랑스인들의 미 의식은 지구 평균점보다 확실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고 소박한 시청(Marie) 건물 앞에 작은 분수대가 있는데 아늑하고 고요하다. 작은 소리를 내기도 미안할 만큼 평화로운 주말 아침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질만큼 뭔가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이런 작고 오래된 마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고요함, 신선한 아침 공기, 작고 예쁜 집 앞의 장식품들, 골목, 아치로 만든 미니 터널, 마을 바깥쪽으로 보이던 초록 숲과 언덕들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마을의 아침을 방해하지 말아요.


프랑스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햇살을 받으며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늘 보고 싶다는 아이들은 이런 고양이들을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쓰다듬고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나중에는 고양이 간식을 아예 사서 배낭에 항상 넣고 다녔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작은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했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아이들







이 마을을 다 돌아보는데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다음 목적지인 생 폴 프로방스(Saint Paul Provence)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렸다. 생폴 프로방스는 Tourrettes-sur-Loup 보다 3~4배 정도 큰 중세 마을이었다. 샤갈이 좋아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골목골목 황톳빛 흙으로 지은 집들과 담벼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고, 향수나 라벤더 방향제를 파는 가게에서 나는 향기와 꽃들의 향기가 어우러져 마을은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성의 입구부터 이어지는 길 양옆으로는 상가들이 즐비했다. 사람들도 훨씬 많았다. 상점 안에는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상승되는 색상의 물건들과 기발한 주제의 그림들 옷감, 의류 등으로 가득했다. 세상 어떤 어린이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사탕가게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무지개색 긴 막대 사탕을 하나씩 사주고 마을을 다 돌아보았다. 6월 중순의 프로방스의 햇빛은 강하기는 했지만 맑은 공기와 신선한 바람과 골목의 그늘 덕분에 불쾌지수는 낮았다.  마을을 둘러싼 성벽 쪽으로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성벽 너머로 온통 초록빛이 한창인 유월의 산과 하늘만이 끝도 없이 이어는 곳이다.

동굴 같은 상점 안의 프랑스 분위기 그림들
나는 사람의 몸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예술 작품이 좋다.


담쟁이로 뒤덮인 골목길


그늘진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서 토마토와 치즈와 햄이 들어간 기다란 바게트 샌드위치와 야채샐러드를 점심으로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걸어 다닌 덕에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여유가 생긴 나는 음악을 틀고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1시간 30분이나 더 걸리는데도 아직 고속도로에 진입할 자신이 없어서 국도를 선택했다. 동쪽에서 거의 직선으로 서쪽으로 가는 코스라서 크게 길을 헤매지도 않았다. 만약 같은 코스로 가는 분이 계시다면 이왕이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한적하고 아름다운 국도로 갈 것을 강력 추천할 만한 코스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로터리를 돌고 속력을 높일 수도 없었지만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덕분에 프랑스의 국도에 완전히 익숙해진 날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차선을 바꾸거나, 차들이 너무 많은 대도시에서 운전하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도로에서라면 열 시간도 즐겁게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찍은 창밖 풍경, 어딜 가도 포도밭이다.


오후 5시쯤 170km 정도 떨어진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캠핑용품 전문 매장 Decathlon으로 도착했다. 한창 캠핑 시즌이 다가와서인지 매장 앞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서 주차하느라 애좀 먹었다. 주변에 자동차 판매장, 대형 마트, 주유소, 맥도날드와 같은 유명 브랜드 상점이 몰려 있어서 쇼핑하기에 좋다.


남부 프랑스는 캠핑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곳곳에 넓은 수영장이 딸린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마다 시설이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온수가 나오는 개인용 샤워실과 별도의 화장실이 있고, 비교적 관리도 잘 되고 있어 청결한 편이다.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와 손빨래를 할 수 있는 싱크대가 구분되어 있다. 대부분의 캠핑장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도 구비되어 있어서 시간대를 잘 맞추면 밀린 빨래를 한두 시간 내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서 좋다. 날씨까지도 캠핑하기에 최적이니 우리도 캠핑을 해보기로 한다.

정말 다양한 캠핑용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Decthlon 매장
대형 슈퍼마켓 까르푸의 다양한 종류의 감자들

무거운 캠핑 장비를 한국에서부터 가져온다면 짐이 너무 많아진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데카트론이라는 캠핑용품 매장에서 꼭 필요한 물건들만 구매하기로 했다. 던지면 저절로 세워지는 원터치용 텐트, 공기 주입구를 열면 저절로 부풀어 오르는 매트, 작은 램프와 버너, 간이 의자 정도를 구입했다. 대략 40만 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캠핑 용품 매장을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물건을 고르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첨단 캠핑 용품도 많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큰 텐트를 살 수 없는 이유와 가능한 한 최소의 물건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작지만 아늑한 텐트 안
버너를 사용하지 못해 전기밥솥에 끓이는 라면

이렇게 아이들은 생애 첫 캠핑을 경험하게 되었다. 미리 예약해둔 캠핑장에는 이미 수많은 대형 캠핑카들이 서너 달은 너끈히 지낼 태세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적한 자리에 배정을 받아, 아이들과 힘을 합쳐 원터치 텐트를 펼쳤다. 매트리스를 펼치고 그위에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담요와 침낭을 펼쳤다. 데카트론에서 구매한 작은 램프를 텐트 안에 매달았더니 금세 아늑한 공간이 생겼다. 비록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미니 텐트이지만 세 식구가 누워 자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버너와 가스가 서로 호환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난 상태였고 다시 캠핑용품 매장으로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또 캠핑장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아답터도 사 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행히 캠핑장 사무실에서 아답터를 대여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작은 전기밥통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실수를 했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현지인들의 멋진 텐트나 캠핑카와 비교한다면 너무 궁색해 보이지만, 처음 텐트에서 자보는 아이들은 매우 흥분한 상태이다.  이 정도가 캠핑을 잘 모르는 초보 엄마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캠핑 세팅이었다. 정말 최소한의 물건으로 꾸몄지만, 부족한 느낌 없이 풍성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맡은 바대로 쌀과 식재료를 씻어 오고, 설거지를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과 씻고 조용히 누우니 텐트 밖으로 새소리, 두꺼비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우리의 첫 텐트에서의 밤은 작은 램프 아래에서 일기를 쓰고, 카드놀이를 한 후 각자의 침낭 속에 들어가 나무들이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한 여름이긴 하지만 전기장판은 꼭 필요했다. 짐을 줄이려고 침낭을 두 개만 준비해서 딸아이 한 개 다 주고 아들과 작은 침낭을 나눠 덮으니 밤에 추워서 몇 번을 깨긴 했지만, 그렇게 야외에서의 첫날밤은 잊지 못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