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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04.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4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4, 6월 15일  Grande Corniche(해안도로)~에즈(Eze)~생 폴 드 벙스(Saint-Paul-de-Vence)

니스는 첫 목적지이긴 하지만 주로 휴식을 취하고 시차에 적응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틀 밤을 푹 잤더니 아이들도 나도 아침에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해 한 달간 리스하기로 한 푸조 자동차를 인수받아야 한다. 마음껏 벌려 둔 짐을 다시 원래대로 꾸린다. 결국에는 뒤 베란다에 말려둔 내 샌들 하나를 잊고 가버려, 주인아저씨가 메시지를 보내주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이후에는 아들의 임무가 하나 추가되었는데 바로 빠진 것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리스로 계약한 푸조 308 모델인데, 공장에서 나온 완전한 새 차이다.  첫 목적지를 구글 맵에 검색하여 설정하고, 한국에서 준비한 핸드폰 거치대를 붙이고 핸드폰을 보기 좋은 위치에 장착했다. 사이드 미러와 룸미러를 세팅하고 첫 드라이브 목적지인 에즈로 출발했다. 다행히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이 운전석은 왼쪽, 차선은 오른쪽이다.  긴장한 탓에 운전석의 각도와 목받이 부분을 조정하지 않고 90도 각도로 출발하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약 40분가량을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운전해야 했다. 사실 이 날을 계속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행 전에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상황은 다 떠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차도 리스를 선택했다. 한 달 간의 사용할 차량이므로 렌트와 리스 비용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새 차를 사용할 수 있는 리스가 나 같이 차를 정비할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니스는 남부에서도 제법 큰 도시인지라 도로 곳곳에 공사 구간도 있고, 또 구글 맵에 익숙해지는데 시간도 필요하다. 교통표지판도 눈에 익숙하지 않고 어쨌든 가장 염려했던 운전 첫날이다. 중간에 좁은 언덕길에 접어들었다. 골목은 무척 좁고 언덕길인데 위에서 차가 내려오니 후진해서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그 언덕을 무사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큰길로 접어들자 네비가 알아서 다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

니스 공항에서 출발하여 가장 아름다운 해안 도로라고 하는 M6007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바다를 내려다보는 오래된 성과 마을인 에즈(Eze)가 자동차로 가는 첫 목적지 인다. 니스에서 멀어질수록 도로는 왕복 이차선으로 바뀌고, 바위를 뚫어서 만든 터널을 지날 때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에즈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더 자연에 가깝고, 나는 처음의 긴장을 조금 풀고 풍광을 즐 수 있게 되었다. 시속 50km 제한속도 표지판이 보이기에 나는 행여나 과속 단속에 걸릴까 싶어 속도를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차들은 그저 이 멋진 도로에서는 그 따위 속도 제한은 무시해도 된다는 식이었다.  여유 공간이 있으면 양보하면서 그럭저럭 교통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걱정했지만 뒷 트렁크가 넉넉해서 짐이 다 들어간다. 


M6007 도로에 잠시 차를 세우고 찍어 본 풍경. 이 도로는 프랑스 동남쪽 해안선을 따라 이탈리아까지 이어진다.
에즈 성에서 바라본 M6007 도로의 모습

입구의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꽉 차 있어서 서너 번 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주차장을 돌다가, 옆 골목으로 살짝 빠져나오니 여유  공간이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무사히 첫 주차에 성공하고 주차요금 기계에 차량 번호와 예상 주차 시간을 입력하고 주차표를 받아  앞유리창 안쪽에 잘 보이도록 두었다.  아직 오전인데 해가 쨍쨍하다. 아이들 표정을 보아하니 저 비탈길을 올라 성 입구까지  가면 힘들다는 소리가 분명 나올 것 같다.

에즈 성 안의 풍경. 골목마다 독특한 물건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매력적이다.

뜨거운 6월 남프랑스의 햇살을 받으며 경사로를 약 십분 가량 오르면 에즈의 오래된 골목길에 들어선다. 아이들이 벌써 지쳐 보여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아이스크림 파르페를 사주었다. 생크림이 잔뜩 올라앉은 아이스크림을 사줄 때마다 살짝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기쁨은 경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데서 오는 것을 알기에.  나의 성 사랑은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는데 카페와 호텔, 상가들과  작은 돌을 다듬어 깔아 둔 보도 블록, 높은 성벽 모든 것이 다 그대로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 모퉁이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가 언제 등장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어디를 찍어도 그대로 엽서가 되는 곳이었다. 상점 진열장에는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의 물건과는 색다른 종류의 장식품과 그림들로 완전히 다른 장소에 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곳이다.


            예쁜 기념품 상점 윈도. 하나하나 너무 예쁘다.

에즈 성 꼭대기에 있는 야생화가 핀 정원(Eze botanical garden)이 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에 비탈길과 계단을 조금 걷고, 입장료도 내야 했지만 꼭 한번 방문하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오늘처럼 날씨가 화창한 날에 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이리라. 바라보는 곳마다 티끌 하나 없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내가 새라면 근심 없이 날개를 펼치고 활공하고 싶은 곳이 이곳 이리라. 가든에는 연중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답게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을 심어놓았는데 모두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비탈길에 세워진 에즈 성의 집들과 또 저 아래 해안가에 모여있는 마을들이 주변의 바다와 산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위에서 나오는 물과, 성내의 작은 성당은 완벽한 중세 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날씨가 좋은 날, 에즈 성 꼭대기의 보태닉 가든에서 내려다보는 풍광. 그냥 여기 계속 있고 싶다.
이런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시끄러운 생각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짙푸른 지중해와 푸른 바다를 원 없이 바라보고, 황톳빛 벽돌로 지은 집과 골목을 구경하다가 햇빛을 적당히 가려주는 나무 그늘 아래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토마토와 어린 상추 잎, 올리브와 베이컨이 잔뜩 올라간 피자와,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풍부한 따끈한  라자냐를 먹었다. 눈부신 태양 아래, 향긋한 올리브와 치즈, 토마토 향이 나는 음식을 먹었다. 여행의 출발이 순조로워서 비로소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먹어본다.







마을을 내려오면서 오늘의 숙소를 구글 맵에서 예상 소요 시간을 확인하여 집주인에게 메신저로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었다. 생폴 드  버스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마을 길을 서너 바퀴 돌고 나서 겨우 숙소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맵에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겼지만, 유럽의 오래된 마을에서 에어비앤비 집주인의 길안내 메시지를 상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길가에 조심스레 차를  세우고 몇 번이고 주인이 보내준 길 찾는 방법을 들여다보았다. 마을을 두 바퀴 돌고 주인이 보내준 사진에 나오는 식당 앞길로  우회전을 새서 건물을 드디어 발견했다.  길가에 주차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의 주차 실력으로는 주차하기 어려운 곳이었고, 계속  맞은편에서 차가 나와 주차하다 말고 비켜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체념하고 더 들어가니 지정번호가 있는 널찍한 주차 공간이 나와서  우선 차를 세우고, 숙소를 찾아가 주인과 인사를 했다. 다행히 주인이 자기 자리를 내주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가  어려우면 무리하게 시도하지 말고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이겠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당황하기 시작하면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 숙소의 주인은 아름답고 우아한 40대 중반의 프랑스 여성이었다. 이혼 후 두 아이와 살고 있는데, 주말에만 집을 빌려준다고 했다. 집안에는  주인이 살고 있는 덕에 물건이 많은 편이었다. 냉장고에도 여느 가정집처럼 다소 복잡하게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현지인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집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앞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사방이 확트여있고 산과 마을의  모습,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도 바로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 외에는 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아 마치 천국에 온 듯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집과 넓은 베란다


우리는 아까 집을 찾느라 몇 번을 오고 갔던 방스의 올드타운으로 장을 보러 갔다. 올드 타운은 성벽의 아치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짐을 풀고 걸어서 동네를 탐험하는 때가 가장 긴장이 풀리는 때이다. 십 분이면 다 돌아볼 만한 올드 타운의 골목마다 가게와 빵집,  식당과 카페가 있었다.  저녁시간인지라 대부분의 기념품 가게는 문을 닫아서 조금 아쉬웠다. 다행히 우리나라로 치자면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감자 한 개, 양파 한 개, 딸기 작은 바구니를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한 개씩 사도 괜찮은 동네 작은 가게가 너무 좋다. 케이크를 파는 상점이  아직까지 영업 중이라 반가워하며 각자 원하는 모양의 케이크를 골라서 상자에 담아 올 때의 행복감이란.

아무 데나 들어가서 집어와도 최상의 맛을 보장하는 프랑스 동네 흔한 케이크


저녁으로 카레를  해 먹고, 각자 고른 케이크를 먹고, 일기를 쓴 다음 넓은 마당에서 지는 해가 물들이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함께 야외 간이침대에 담요를 덮고 누웠다. 아들이 늘  그렇듯 지어 만드는 노래를 불렀고, 딸은 시끄럽고 유치하다고 그만하라고 난리다. 오늘만큼은 모두 늦도록 잠 못 들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코트다쥐르의 6월의 밤은 그렇게 부드럽고  고요하게 깊어 갔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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