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 6월 14일 니스(Nice)
아침에는 딸이 피곤하고 미열이 있어서 숙소에서 푹 자도록 했다. 이럴 때는 쉬게 해 줘야지 괜히 아까운 마음에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나가봐야 좋을 게 없다. 아쉽지만 아들과 둘이서 동네를 어슬렁 거리고 에스프레소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작은 아이와 둘이 오붓하게 다니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 들게 한다. 셋이 다닐 때와는 또 다른 친밀한 느낌이랄까? 어제 돌아보지 못한 마을의 반대편 상가들을 구경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햇살은 따끈따끈하다.
점심에는 무언가 속을 따뜻하게 해 줄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주변에서 평이 좋은 베트남 쌀 국숫집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우리의 쌀국수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프랑스가 한때 베트남을 지배했던 역사 때문인지 프랑스 곳곳에는 베트남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뜨끈한 국물에 레몬즙을 뿌려먹는 쌀국수는 이후 여행에서 가장 반가운 음식이 되었다. 딸도 맛있게 먹고는 기운이 나서 함께 바다에 가서 놀기로 했다.
니스 해변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바로 파라솔 아래 누워 여기 사람들이 하듯이 로제 와인을 마시는 일이다. 바닷가 한 레스토랑에서 운영하는 선베드 두 개를 빌려서 음료수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은 뜨겁게 달궈저 있다. 흰색과 남색의 줄무니 파라솔 아래에는 대부분 현지인들로 보이는 백인들이 선탠을 즐기고 있다. 동양인은 우리 외에는 보이지 않아 조금 의식이 되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원래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내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그것만 항상 명심해도 삶은 정말 가벼워지리라. 파라솔 위로 올려다 보이는 푸른 하늘과 비행기 한대가 그림처럼 다가왔다. 더워지면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파라솔 아래 그늘에 누워 하늘보다 책을 보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파라솔 위로 작은 비행기 한대가 지나간다.
저녁때쯤 셋이 다 함께 마세나 광장을 거쳐 쇼핑가를 둘러보고 디저트 가게에서 작은 케이크를 샀다. 형형색색의 비누가 가게 가득 진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저 알록달록한 작은 덩어리들이 뭔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 올리브 유를 주원료로 하는 고급 천연 비누가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지역에 생산되는데, 그 명성에 힘입어 프로방스 전역에서 비누를 판매하는 곳을 자주 볼 수 있다.
이틀째 밤이 깊어간다. 숙소에서 밥과 햄, 계란 프라이, 간편 미역국 등으로 조촐하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이들은 일기를 다 쓰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뒹굴거린다. 아직 밖은 늦은 오후 정도의 밝기이고 잠이 들만큼 어두워지지 않았다. 잠시 밖에 나가서 거리를 걸어볼까 싶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흔든다. 그래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았으니까 무리하지 말자. 아직 우리는 시차 적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