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Sep 13.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2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2,  6월 23일  퐁뗀느-드-보클뤼즈 (Fontaine-de-Vaucluse),  릴르-슈흐-라-쏘흐그(L'Isle-sur-la-Sorgue), 님(Nimes)


퐁뗀느-드-보클뤼즈와 릴르-슈흐-라-쏘흐그 두 곳을 방문했다. 발음하기 어려워서 아이들이 물어봐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지명이다. 아이들은 이름이 어렵다고 일기를 쓸 때 웃었다.


여행할 때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바로 외국어 아닌가. 외국어 구사 능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불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영어는 부족하지만 꽤 오래 미국, 캐나다 업체와 개인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정도이다.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못 알아듣는 척한다는 괴담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주요 수입원이 관광인 프랑스 남부는 최소한 그런 자존심을 부리는 콧대 높은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러니 전혀 겁먹을 필요없다. 우선 봉쥬르(bonjour)를 현지인이 하는 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ㄹ'를 'ㅎ'과 'ㅋ' 저 어디쯤에서 발음을 하는 노력만 기울여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최대한 밝게 웃는다. 최소한의 회화 능력도 없이 방문을 했으니 미소라도 지어 보이자.  그다음에 영어로 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 영어는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말할 때 가장 소통하기 어려운 언어이다. 그 외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끼리는 매우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우리의 부족한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퐁뗀느-드-보클뤼즈 마을 안쪽 주차장에 4유로를 지불하고 주차를 했다. 이 멋진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것이 무료라면, 4유로 정도의 입장료야 기꺼이 지불하겠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서부터 강의 상류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물은 유리처럼 투명한데, 물속에는 연초록 풀들이 물결에 휩쓸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누워있었다. 그 투명한 물속이 어찌나 좋던지 마법에 걸린듯 계속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그 물속에 들어가 물살에 흘러가고 싶었다.


주교의 성(Château des évèques de Cavaillon), 지금은 폐허이나 성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로 둘러싸인 집





선명한 파스텔 빛 노란색과 오렌지 색 의자와 테이블이 어우러진 근사한 야외 카페에 앉았다. 물론 물가 나무 그늘 아래 아무곳에 앉아도 된다. 하지만 멋진 의자에 앉아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시원한 나무 그늘과 서늘한 바람, 물소리, 투명한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들의 움직임, 옆자리에 얌전히 앉은 개들을 바라보는 일. 완벽한 순간이다. 아이들은 딸기와 바닐라 셰이크를 각각 먹고, 나는 생크림이 가득 올려진 카푸치노를 먹었다. 오리들이 자맥질을 하며 먹이를 잡는 모습이 귀엽다. 그렇게 셋이 함께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강의 시작점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깨끗한 물, 풍덩 뛰어들고 싶다.



이 순간의 느낌은 오래도록 남는다.
엄마가 가장 행복한 순간, 아이들이 자연 속에 있을 때이다.




마을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꽤 높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있다. 쏘흐그(Sources) 강의 근원지인 보클뤼즈 샘 (Vaucluse Spring)이 그 산 아래에 있다.  

 

보클뤼즈 샘(Vaucluse Spring)
암벽 아래  Vaucluse Spring 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접근이 불가하고 물이 많이 고여 있지 않았다.







보퀼리즈에서 10분 거리에 프랑스의 베니스라 불리는 마을 릴르-슈흐-라-쏘흐그(L'Isle-sur-la-Sorgue)에 갔다. 마을안은 주차할 곳이 없어서, 마을 밖 수로를 건너기 전에 주차를 해야 한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마을 주변을 소흐그 강의 수로가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외부에서 마을에 진입하려면 귀여운 다리들을 건너가야 했다. 이곳에 흐르는 물도 맑고 깨끗했다.

수로에 둘러 싸인 마을
베니스와는 많이 다르지만, 물이 많아 시원하고 예쁜 마을이다.
집에 물이 스며들거나 하진 않겠지?
오늘은 맑은 물을 원 없이 바라본다.


우리는 평일에 갔지만, 일요일에 열리는 장터에 볼거리가 많다고 하니 이왕이면 일요일에 방문하면 좋겠다.


독특한 물건을 파는 예쁜 상점들이 많다.






1900년대 초반의 인형부터 전시되어 있는 작은 사설 인형 박물관(Musée Jouet et Poupée Anciennes)에 갔다. 아이들 눈빛이 반짝거린다. 오래되어 보이는 인형들이 최소 1000개는 넘을 듯했다. 아름다운 중년의 부인이 주인이었다. 친절한 부인은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설명해 주기 위해서 손수, 종이 인형을 꺼내고 옷을 입혀서 보여준다.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들 위에 뿌려지는 사람의 친절함만큼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 아이들도 각각 맘에 드는 작은 자동차와 인형을 하나씩 구입했다.

많은 인형들, 살짝 무서울 수 있음 주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친절하게 설명도 잘해주시고, 많은 걸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사장님







마을 중심의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눈부신 웨딩드레스의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려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신부와 멋진 성당,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에 살짝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훗날 딸의 결혼식에서 내가 느낄 감정을 미리 느낀 것일까? 결혼식이 열리고 있어서 성당 안을 구경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신부와 아버지가 입장을 기다리는 중


집이 있는 것 같은데 거리를 활보하는 고양이





오늘숙소가 있는 Nimes 향했다. 가는 내내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1시간의 국도 운전이 즐거웠다. 숙소는 다행히 찾기 쉬웠다.  집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작은 체구의 예쁜 할머니가 주인이었다. 할머니는 손수 집안 구석구석을 설명해주셨다. 작은 집과는 달리 훨씬  정원이 있었고, 제비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토마토들이 자라고 있었다. 시원한 저녁에 와인을 마실  있는 안락의자와 테이블, 텃밭과 빨랫줄이 있어서 좋았다. 실내는 단정하신 할머니 집주인의 취향이 드러나게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세련된 침구들과 침대 위에 놓인 원색의 수건들, 방과 조화를 이루는 커튼과, 작은 거울과 조명이 있다.  냉장고와 식기가 있어서 마음 놓고 음식도  먹을  있어서 기억에 남는 좋은 숙소  하나였다. 주인집에 세탁기가 있어서 비용을 지불하면 세탁과 건조를 마친 빨래를 받을  있다.


숙소의 정원에서 휴식
작지만 완벽한 주방
주인 할머니의 센스





어느새 여행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어가고 있어서, 저녁에는 외출하는 대신 조용한 정원에서 햇살을 즐기고, 각자 책을 보며 쉬기로 했다. 사실 이런 때 마음이 정말로 편안해진다. 조용한 주택가라서 그동안의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고 가기에 더없이 완벽한 공간이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을 운전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의 홍수 속에서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혹시 그동안 아이들에게 엄마의 긴장감이 느껴졌다면 미안해 얘들아. 오늘만큼은 너희도 긴장을 풀고 쉬렴.


밤에 딸아이는 먼저 곯아떨어지고, 아직 잠들지 못하는 아들을 무릎에 안고서 정원에 앉았다.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며 하늘의 달과 별과 구름을 함께 바라본다. 아홉 살 아이의 부드러운 살결과 달콤한 향이 좋았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을 아직도 좋아한다.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