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현 Sep 14.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3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13,  6월 23일 님(Nimes)


프랑스에 온 후 한 번도 흐린 날이 없었다. 아침은 항상 눈부신 태양과 파란 하늘로 시작했다. 간편 미역국과 흰밥, 감자와 양송이 볶음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늘 그렇듯이 너무 더워지기 전에 도보로 20분 거리의 님(Nimes) 도심으로 걸어갔다.


고대 로마인들이 북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일대를 일컬어 갈리아 지역이라 부르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중에서도 남프랑스의 님(Nimes)은  로마인이 처음으로 도로를 건설한 도시라고 한다. 님의 기차역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고 나무가 예쁜 길을 따라 걸으면 광장과 분수대가 나오고, 원형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 아침의 평화로운 광장


걸어오느라 힘들었기에 바로 보이는 성당(Église Sainte Perpétue)에 들어가 1유로 또는 2유로 정도 헌금을 하고 초를 밝혔다. 그리고 약속했던 대로 5분 정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이때는 각자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다. 아이들과 나는 모두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다. 밖의 더위도 식히고, 조금 들뜬 마음도 살짝 가라앉힐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성당에 대한 흥미는 수그러들었지만 이때만 해도, 고딕 양식의 높은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와 성화들이 만들어내는 엄숙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의외로 아이들은 중세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도심 한가운데는 아를의 원형경기장 만한 크기의 원형 경기장(Les Arènes)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서있어서 절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다. 과학적인 출입구와 계단의 설계 방식으로 24,000명의 관중이 동시에 몇 분 안에 안전하게 입장하고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5월에는 6일간 투우 경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원형경기장의 건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님 시내를 다니다 매력적인 고대 신전 건물인 메종 카레(Maison Carrée)를 만나본다. 석회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수차례 복원을 거치고 지금은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영상실에서 님이 고대 로마의 도시로서 번성했던 역사에 관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전쟁 이야기, 신과 황제에 대한 신뢰와 충성, 50km 떨어진 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가르교(Pont du Gard)에 관한 내용을 드라마처럼 만든 영상이다. 우리가 지나온 아를이나 님과 같은 고대 로마시대의 도시가 어쩌다 프랑스 남부에 지어졌는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큰 도움이 되었다.

메종 카레(Maison Carrée), 네모난 집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영토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사원이라고 한다.






님은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청바지의 주 재료인 데님의 생산지이다. 청바지의 역사는 생각보다 긴데, 데님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어 서지 드 님(serge de Nîmes), 즉 중세시대 프랑스의 님 지방에서 생산한 매우 질긴 능직 물인 서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님 박물관(Musée du Vieux Nîmes)에서는 다양한 직물과 옛 의상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특히 리바이스의 옛 디자인과 상업용 포스터가 새롭다.


님 박물관 (Musée du Vieux Nîmes)의 데님 전시관






원형경기장과 메종 카레 사이의 상업지구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이 있다. 공연 중인 사람들





시내 중심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고대 분수 정원(Jardin de La Fontaine)이 있어서 걸어갔다. 정원과 연결된 수로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걷기에 무척 좋았다. 수로 안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오리들이 물살에 흘러가고 다시 헤엄쳐서 올라와 엄마와 형제들 곁으로 가는 광경을 한참동안 즐겁게 들여다보았다.

오리들도 엄마랑 다니는구나
무더위를 식혀주는 물과 나무 그늘





18세기에 만들어진 정원은 유럽 최초의 공공 정원이었다고 한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등장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대 분수 정원(Jardin de La Fontaine)


약간의 경사로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지어진 원래 높이 32m, 현재는 18m 높이까지만 살아남은 마뉴 탑(La Tour Magne)이 보인다.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널따랗게 펼쳐진 님과 주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살피기에 최고의 시설이다.  2000년 전 로마 병사들이 보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도시가 좀 더 팽창된 것 외에는.  오는 동안 뜨거운 태양에 조금 지쳤는데 시원한 전경을 바라보면서 눈이 확 트이고 마음이 시원해졌다. 다시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처음 와 보는 장소는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마뉴 탑(La Tour Magne)


마뉴 탑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마뉴 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Nimes 시내

아침 일찍 걸어다녔더니 오후 5시쯤엔 다들 피곤해졌다. 우리는 숙소에서 두 시간가량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고 야경을 즐기기로 했다. 해가 10시나 되어야 완전히 지는 덕에 아직 도시의 야경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이제는 시차도 완벽하게 적응되었다. 아이들에 맞춰서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 저녁 시간도 상쾌한 상태로 즐길 수 있다.






골목길에 노란 등을 매달아 둔 베트남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베트남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아보시고, 자신이 즐겨보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이름을 줄줄 읊으셨다. 프랑스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다며 본인이 한국 프로그램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도 아닌데 괜시리 으쓱해졌다.육수가 진한 쌀국수에 고수를 듬쁙 얹고, 간장 소스로 양념을 한 오리 고기와 숙주 요리를 시켰다. 빠질세라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로제 와인도 한 잔 주문했다. 시원한 바람이 골목으로 불어왔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커플도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오늘 찍은 사진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인은 잘 모르지만, 남프랑스에서 마시는 로제 와인은 맛있다.


무사히 하루 일정을 마치고, 걸어서 돌아갈 숙소가 있으니 이제 남은 저녁 시간은 아무런 긴장 없이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는다. 아이들은 얼마나 부모의 정신과 마음 상태에 영향을 받는가. 내가 편안하니 아이들도 더 해맑다. 떠들고 먹고 마시고 웃는다. 아이들은 세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고 나도 맥주 한 병을 더 마신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길에서 아이들의 즐거움은 더욱 상승세를 타고 이제는 분수대의 물을 서로에게 뿌리고 빙글빙글 돌며 아무 이유 없이 웃기 시작한다. 4살 터울의 누나와 동생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또 이렇게 실없는 농담을 하고 엉뚱한 노래를 지어서 함께 부른다.


이곳의 전봇대는 사각기둥에 양쪽에 사다리처럼 밟고 올라갈 수 있는 홈이 파여 있는데, 녀석들이 이제 전봇대에 매미처럼 매달려서 웃기 시작했다. 여행와서  처음 걸어본 밤거리가 아이들에게 마법을 걸은 모양이다.

어두워지는 님스 역과 거리



작가의 이전글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