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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7.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 #26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6, 7월 7일 르 퓌 엉 벌레이(Le Puy-en-Velay)



조금 타이트한 느낌은 있지만 꼭 와보고 싶은 도시를 보게 되어 흐뭇하다.


로마가 지배하던 갈리아 시절 이 바위 위에 헤르메스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10세기에 Truannus이라는 사제가 이곳에 천사장 미가엘 (St. Michael)을 위한 성당을 세운다. 961년 7월 18일에 축성되었다고 한다. 1000년 전의 일인데 정확한 날짜가 기록된 것이 신기하다.


이 바위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처녀성을 의심받던 어린 소녀가 있었다. 자신의 결백을 천사장 미가엘이 증명해 주리라 믿으며 바위에서 몸을 던진다. 미가엘의 도움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목숨을 건진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번째 뛰어내리는데 이때까지는 미가엘이 도와준다. 기적을 두 번이나 체험하고 나니 허영심이 생겨나서 세 번째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는 바위에 그대로 떨어져 죽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생 미셸 성당(Rocher St. Michel D'Aiguilhe) (사진 출처: Rocher St. Michel  관광 홈페이지)



언덕 위에 세워둔 차에 짐을 싣고 내려가 Rocher St. Michel D'Aiguilhe에 올라가야 한다. 26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구름이 한 점도 없다. 생수 한 병과 카메라만 들고 가볍게 오른다. 힘을 내라 어린이!



성당 내부
1000년의 세월을 견딘 성당


오래도록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그런지, 작은 성당 내부는 다른 어떤 큰 성당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 소박하고 오래된 성당은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하늘에 가까워서 더 신령할 것 만 같다. 낮은 천장과 빛바랜 벽화들과 손때 묻은 기둥들, 작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어둠을 밝히는 초들. 잠시 숨을 고르고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 뜻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마음에 품은 소망은 이루어지기도 한다. 월세 보증금 2000만 원으로 두 아이와 새롭게 출발해야 했던, 가장 막막했던 시절에 품었던 사진 한 장에 대한 바람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바위에 몸을 던지는 정도의 용기와 믿음도 없었는데, 삶은 기적처럼 이곳에 오고 싶다는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 어깨를 한 번씩 안아 본다. 너희들이 나에게는 기적이구나.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언젠가 아이들과 걸어서 다시 한번 올게.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



오늘은 아비뇽(Avignon) 근처 캠핑장이 숙소이다. 가는 길에 작은 마을이 보이기에 차를 세우고, 넓은 풀밭의 푸드 트럭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맛있게 먹느라고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푸드 트럭에서 마련해둔 테이블에 앉아서 콜라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서두를 것도 없고 느긋하게 앉아서 쉬었다 간다. 넓은 풀밭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










캠핑장에 무사히 도착하여 사이트를 배정받았다. 우리 자리에 이미 다른 텐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리셉션까지 차를 몰고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키가 크고 아름다운 미모의 관리인이 함께 사이트로 와준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용자를 향해 투덜대지만 텐트 주인은 지금 없다. 하는 수 없이 바로 옆 사이트를 배정해 준다. 원래 우리 자리는 잔디가 깔려 있는데, 새로 받은 자리는 그냥 맨땅이다. 에잇.


캠핑장 시설



하지만 소나무 아래라서 그늘도 있고 좋다. 캠핑장이 꽤 규모가 크다. 수영장에 미끄럼 틀도 있어서 아이들이 신났다. 세탁실도 크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여러 군데라서 기다릴 일도 없다.


캠핑장 모습





아이들과 오후의 햇살이 아까워서 수영을 한다. 수영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느긋하니 좋다. 배영을 하며 하늘을 본다.  며칠 만에 캠핑장에 오니 또 좋다.


밤에 바람이 좀 불어서 엄마는 또 걱정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자니 다행이다.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잘 다니니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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