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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8.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7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7, 7월 8일 아비뇽(Avinong)


아비뇽은 학창 시절 배웠던 '아비뇽의 유수'에서 들어 봤던 지명일 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뭐 다른 도시에 관해서도 크게 아는 것은 없지만.  또 얼마 전부터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아비뇽 다리'라는 노래를 불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비뇽과 나와의 인연은 이 정도이다.


캠핑장에서 20여분 차로 가면 성벽으로 둘러 싸인 아비뇽 시내에 도착한다. 도로에서 좌회전하여 성문 중 한 군데로 진입한다. 미리 검색해둔 주차장에 어렵지 않게 주차까지 성공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나오면 바로 아비뇽 교황청(Palais des Papes)과 광장이다.


마침 꼬마 열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어서 타기로 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비뇽은 제법 규모가 커서 걸어서 이 열차를 타고 다니면 큰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관광객과 함께 열차를 타고 주요 포인트들을 돌아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편하게 앉아서 구경하고, 친절하게 한국말로 녹음된 안내 방송도 들을 수 있다.

다양한 언어로 녹음된 안내 방송, 한국말도 가능하다.
광장 앞 카우보이
마을을 둘러싼 성벽, 표지판에 우리가 다녀온 도시들의 이름이 있어서 반갑다.


아비뇽은 여름마다 열리는 연극 페스티벌로 성 안쪽 도시가 떠들썩하고 축제 분위기이다. 빈 공간만 있으면 연극과 각종 공연을 홍보하는 포스터들을 붙여 두었다.

아비뇽의 연극 축제 (Avignon) 기간


거리 곳곳에서 무대 의상을 입고 공연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비록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무대 의상과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정말 재미있는 이벤트이다.


30분 정도 열차를 타고 다시 아비뇽 대성당과 교황청이 보이는 광장에서 내린다. 열차를 타면서 지나쳤던 큰길( Rue de la République) 쪽으로 걸어가 본다. 이 길은 차량이 전면 통제되어 차도 위에도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짧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길 양옆으로 물건을 파는 임시 가판대가 들어섰다. 길가의 카페와 야외 테이블에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홍보물을 받아들고 진지하게 읽어본다.



특이한 기구를 통해 노랫소리를 함께 듣는 중
맛있는 사과와 살구 타르트




어느새 우리도 한껏 이 분위기에 파묻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를 듣고, 알아들을 수 없지만 짧게 연극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참여할 것을 권하고 공연 안내장을 나눠준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 있을까 하고 안내장을 유심히 본다.


길을 걸으며 과일과 크림이 신선한 타르트를 먹는다. 아이들은 마치 놀이 공원에서 퍼레이드를 보는 기분이라고 한다.



관광객도 공연 종사자들도 모두 즐거운 거리이다.


거리 공연하는 사람들


연극을 하거나 순수 미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의 경제 사정이 어떨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오래된 불안과 걱정의 근원이 경제적인 문제여서 그럴까? 어린 시절부터 고흐 같은 자연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밥을 굶을까 봐 중간에 포기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커다란 두려움의 구덩이가 있는 것 같다. 거기서 나오는 검은 애너지가 나를 걱정이 많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같다. 그 공포란 것은 원초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화창하고 행복한 아비뇽의 거리에서도 완벽하게 두려움을 내쫓지 못한다.



온몸에 페인트칠을 하고 꼼짝 않고 서서 공연하는 이분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형 공연을 준비하시는 이 노년의 신사도 행복하겠지?


회전목마가 있는 마을이 많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있는데 공연 홍보팀이 지나간다.
점심으로 먹은 쌀국수, 우리의 아시아 음식 사랑은 계속된다.







아비뇽 다리(Pont d'Avignon)에서 바라본 성벽과 대성당



아비뇽 다리(Pont d'Avignon) 또는 성 베네제(Pont Saint-Bénéze)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비뇽의 랜드마크인 아비뇽 다리는 교황궁과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다리는 양치기 소년이었던 베누아(훗날 성 베네제)가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후에 지었다고 한다. 전쟁과 홍수로 원래 22개였던 아치는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4개의 아치와 성 니콜라스 교회만이 남아 있다.



중간에 끊긴 다리
론강


성 니콜라스 교회













아비뇽 대성당 앞의 십자가상


성당 내부
교황청 안뜰과 건물, 요새처럼 견고하다.
가이드 기기에 어린이들을 위해 증강현실 및 게임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설치되어 있다.


대성당과 교황청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빌렸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 그중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증강현실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비어 있는 특정 방에 진입하면, 증강현실을 통해 교황청의 화려한 옛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한국말로 설명해주니 정말 편리하다. 한국인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그 많은 언어 중에 한국어가 포함되어 있는 걸 보면 왠지 으쓱해진다. 증강현실 속에서 방마다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  넓은 교황청 방을 지루하지 않게 둘러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탐험이 되었다.  덕분에 나도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역사를 배우면서 천천히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교황청의 기념품 샵







하루 종일 신나게 돌아다니고 캠핑장에 돌아와도 아직 해가 대낮처럼 밝다.  캠핑장 측에서 어린이 손님을 위해 인형 탈을 쓰고 나와 댄스 타임을 열었다.

오후의 평화로운 캠핑장



수영장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내기로 한다. 아들은 어느새 독일에서 온 알렉산더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미끄럼틀을 함께 타면서 사귀었다고 한다. 마음이 제법 맞는지 둘이 재미있게 논다. 자연스럽게 딸아이도 비슷한 또래의 알렉산더의 누나 파올라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다. 한두 시간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다 보니 그 부모와 나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눈빛이 선한 상냥하고 진솔한 느낌의 부부였다. 저녁을 먹고 그 식구들이 머무는 오두막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독일에서 온 식구들은 2주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프로방스에 왔다. 일주일 가량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소박함이 묻어나는 그들의 살림살이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각자의 나라에서의 삶을 보여주느라 바쁘다.


이 친절한 부부와는 독일의 이민자들, 메르켈 총리에 대한 견해, 학교 교육 등 평상시 내가 독일에 대해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비록 서로 서툰 영어이지만 마음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한 달 가까이 셋이서만 24시간 붙어다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어 아이들도 나도 더 즐거운 밤이었다. 우리는 일정상 내일 떠나야 하기에 아이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함께 놀기로 약속하고 우리의 작은 텐트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외국인 친구를 처음 사귀게 되어 기뻐했고, 아들은 오랜만에 '남자' 사람과 놀게 되어 좋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어른들과 대화를 하게 되어 기뻤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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