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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29.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8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8, 7월 9일 노트르담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nanque) , 보리스 마을(Village des Bories)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놀기 위해 뛰어간다. 오늘은 특별히 아이들이 친구들과 노는 동안 혼자서 텐트 정리를 한다. 돗자리 위에 캐리어 두 개를 모두 활짝 펼쳐 놓고 다시 차근차근 짐 정리를 한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는 분명히 필요할 것 같았던 물건들 중에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쓰지 못한 것도 있다. 다음번에 아이들과 장기 여행을 떠난다면 어떤 물건이 요긴한지 분명히 알 것 같다. 그리고 짐을 훨씬 간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어디에서나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오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네 명의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신나게 노는 중이다. 이제 가야 한다고 말하기가 무척 미안하다. 서로 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주소를 주고받는다. 아이들은 언젠가 독일에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만나자고 당부도 한다. 나도 이 눈빛이 선하고 꾸밈이 전혀 없는 부부와 다시 한번 아쉬운 인사를 나눈다. 알게 된 지 불과 하루밖에 안되었는데도 벌써 인연의 끈이 생긴 것 같다.











세낭크 노트르담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nanque)



아쉬운 맘을 뒤로 한채 조금 늦게 오늘 일정을 시작한다. 그래도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맘을 먹는다. 비록 원래 계획했던 방문지 중 한 군데를 포기해야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첫 목적지는 캠핑장에서 약 40분 거리의 세낭크 수도원이다. 여름에 프로방스 여행을 계획한 몇 가지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라벤더가 만개한 들판을 보는 것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들이 근처에 많은 곳이라서 그런지 이미 길가에는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고, 단체 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도 보인다. 예감이 좋지 않다. 역시나 중국인들이 무리를 지어 차에서 내린다. 저 그룹과 움직인다면 조용하게 풍경을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단체 관광객 그룹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서둘러 수도원으로 간다. 엽서 속 풍경만큼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인 보랏빛 물결이 우리를 반겨준다.


라벤더 개화 시기인 7월에 맞추어서 라벤더로 유명한 지역을 일정에 넣었다. 마을에 조금씩 심어둔 라벤더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라벤더를 경작하는 곳은 처음 보았기에 감동적이었다. 뒤돌아보니 엄마만 신나서 사진 찍고 감흥에 젖어 있었나보다. 아이들은 쨍쨍한 오후의 태양 아래에서 벌써 지친 것 같다. 얼른 시원한 기념품 샵으로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으로 달래준다.


줄줄이 단체 관광객이 샵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 이제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자.







다음 목적지는 해발 240미터 위에 세워진 Village des Bories 마을이다. 이곳은 농업을 위한 임시 거처로 지은 마을이라고 한다. 온전히 돌로만 지어진 마을이 독특하다.


지금은 사람은 살지 않는다.



비교적 다루기 쉬운 석회암을 다듬어 벽돌로 사용하였다. 두 차례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곳을 후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원래 방문하려고 했던 근처의 고흐드(Gordes)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척 작은 유적지이다. 지역의 흔한 돌로 만든 소박한 건축물들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곳이다.



고흐드(Gordes)


예정대로라면 오늘 방문할 곳 중 하나인 고흐드 마을이다. 늦은 오후에 도착하니 마을에 진입하는 차량이 너무 많다. 그래서 멀리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 또 한 곳의 잊지 못할 멋진 숙소에 도착했다.


친절한 남매가 운영하는 에어비엔비



3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셨다는 할아버지가 우리를 맞아 주셨다. 창고에서 자동차를 손보고 계셨다. 숙소 관리는 여동생이 하는데 지금은 시장에 가고 없고 곧 돌아온다고 하신다. 일층에 마련된 우리의 숙소는 넓고 깨끗했다. 필요한 것이 잘 갖추어진 숙소였다.


넓은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영어를 매우 잘하시고 식물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이 박식한 남부의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은근히 친절한 부류의 사람이다. 정원에 있는 분홍 꽃이 핀 나무는 만지면 안 되는 독성이 있는 식물이라고 알려주신다. 이런 꽃이 곳곳에 있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리신다.


우리가 하루만 자고 갈 거라고 하니, 프로방스에서는 한곳에 길게 머물러야 한다고 조언해주신다.  맞아요. 어르신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희에겐 어쩌면 인생의 딱 한번일지도 모를 여행이라서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요. 어쩌면 이런 마음이 커질 수록 여행은 피곤한 이벤트 끝나게 될 수도 있다. 긴 여행은 정신수양도 요구한다. 욕심과 내려놓음, 기대와 실망의 중간에서 균형 잡기.


옆 동네 유명 관광지를 가리키시며 그런 곳은 음식값도 비싸고 볼 것도 없다며 시골 노인다운 불평을 하신다. 아이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더니 눈빛이 똘똘하니 공부 잘할 거라고 하시기에 공부에는 아직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본인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봐 왔기에 잘 안다며, 공부를 잘할 눈빛이니 꼭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신다. 친정 부모님이 없는 나는 연세 많은  어른들이 나의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줄 때 어쩐지 맘이 뭉클해진다.


무심한 듯 다정한 시골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장에 갔던 누이가 돌아왔다. 훨씬 젊고 생기가 넘치는 여주인은 볼인사까지 해주면서 먼 곳에서 온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겨준다. 부엌살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내일 아침으로는 따뜻한 빵과 크로와상을 준비해주겠다고 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지내고 싶을 만큼 좋은 곳이다.


오랜만에 부엌이 잘 갖춰진 숙소에서 파스타를 만들었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몇가지 재료로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었다. 마트에서 사온 로스트 치킨이 아직도 따뜻하다. 문 앞 테이블에 한상 차려 놓으니 또 마음이 느긋해지고 행복해진다. 모기가 덤벼들기에 모기향을 피웠다. 미세 먼지가 많다는 옛날 모기향이지만 이곳에서는 모기향마저 향기롭게 느껴진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지역의 로제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비웠다. 공기가 신선해서 한껏 들이마신다. 아직 몸에 남아 있는 한톨의 긴장감까지 심호흡으로 뱉어본다. 무사히 하루 일정을 마쳤기에 또 기쁘다. 아이들과 일기를 쓰고 편안한 잠자리에 든다.


어제와 오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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