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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Sep 30.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29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29, 7월 10일 Roussillon , Bonnieux —> Sault-> Valensol->Verdon




아침에 주인은 약속한 따뜻한 크루아상과 쵸코가 들어있는 빵을 준비해 주었다. 보답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기념품을 전하고, 방명록에 좋은 후기를 남겼다. 앞 페이지를 보니, 몇몇 한국 투숙객들이 남긴 글이 있었다. 

훈훈한 배웅을 받으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을 밟으러 간다. 






숙소에서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산 위에 있는 후 쏠 리옹(Roussillon)이라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때 황토의 주생산지였다고 한다. 어제 간 보리스 마을은 주변의 석회암을 다듬어 집을 짓고, 이곳 역시 이 지역의 황토로 지은 건물들로 마을이 붉은빛이다. 


스님들의 황톳빛 옷이 마을의 황톳빛과 같다. 


한 무리의 승려들이 지나간다. 어디서 왔는지 물어봤었는데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동남아시아 쪽이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모두 같은 색의 승려복과 비슷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다. 무척 즐거워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또 고양이에게 홀려서 자리를 뜨지 않으려 한다. 

고양이의 뒤를 쫓고 있다. 


생 미셸 성당(Eglise Saint- Michel)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


시골마을의 소박한 성당은 내가 가진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을 위로해준다.  아이들에게도 그런가 보다. 초를 켤 때만큼은 정말 진지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비롭다. 
붉은빛과 황갈색 빛이 감도는 황톳길


 황톳길을 50분가량 돌아본다. 메마른 황토는 건조한 재료인 파스텔로 그리면 잘 표현될 것 같다. 자연이 만든 색감이 풍성하고 아름답다. 나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나 혼자만 생각하는데, 이곳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풍부하고 따뜻한 색감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풍화와 침식이 빚어낸 바위의 모습도 여느 화가의 조각 작품 못지않다. 


물론 아이들은 조금 힘들어했다. 덥고 건조하고 먼지가 날리는 길을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했으니까. 



재미있는 모양의 문고리와 옷걸이들 
귀여운 닭 모양 장식품



작은 생수병 뚜껑에 물을 담으며 노래 부르는 중






점심은 15분 거리의 보니유(Bonnieux)에서 먹기로 한다.  


보니유(Bonnieux)


마을은 비탈진 길 위에 있어서, 마을 아래 야외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조금 올라가니 마을 아래 전망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작은 카페가 있다. 야외에 테이블이 있고, 사람들이 적당히 있는 것이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늘 그렇듯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지고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테이블은 6개 정도인데, 웨이터 혼자서 주문을 받는다. 프랑스의 식당에 오면 항상 우리나라의 신속한 식당 시스템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오기까지 5~10분을 기다린다. 웨이터가 왔다고 해서 바로 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 우선 음료수를 시킨다. 음료수가 나오기까지 5~10분을 기다린다. 음료수가 나오면 음식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10~20분을 기다린다. 음식이 나온다. 30분가량 음식을 먹는다. 웨이터가 와서 디저트나 커피 주문을 독촉한다. 5~10분 후 커피와 디저트가 나온다. 바쁜 웨이터에게 함부로 말을 걸기가 무섭다. 때를 잘 보고 재빠르게 계산서를 부탁한다. 5~10분 후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다준다. 카드를 건네준다. 5~10분 후 카드를 돌려받는다. 이런 식으로 테이블이 얼마나 찼느냐에 따라 점심시간은 최소 1시간 10분에서 최대 1시간 40분이 소요될 수 있다. 하하하. 그러니 프랑스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평상시보다 더 마음을 더 느긋하게 먹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나처럼 성격이 급하고 또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은 이 점심시간을 정신수양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날 프랑스와 벨기에의 준결승 경기가 저녁 8시에 있었다. 



아이들은 도도한 눈빛의 고양이에게 홀려서 또 꼼짝 않고 있다.



고양이를 따라가는 중이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드디어 성당(Bonnieux - église haute)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의 성당, 조용하고 시원하다. 성당은 항상 우리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내려가는 길을 훨씬 수월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항상 멋지다. 
들판을 확대해서 촬영해보니 라벤더가 만발한 밭이 보인다. 





자 오늘이 그 날이다. 얘들아! 라벤더가 활짝 핀 들판으로 가자. 








발랑솔(Valensole), 만개한 라벤더


고운 빛만큼  아름다운 향기도 은은하게 풍긴다.


라벤더 밭 옆에 해바라기 밭


나의 미천한 사진 실력으로는 현장의 감동을  반도 담을 수 없다. 


벌들은 꽃들 사이로 붕붕 날아다닌다. 아이들은 각자의 카메라로 사진 속에 이 장관을 담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포기했다. 나의 사진 찍기 실력으로는 이 아름다운 광경의 반도 카메라에 담을 자신이 없다. 


라벤더와 해바라기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다니. 개화 시기에 잘 맞춰 온 것 같아서 스스로를 칭찬해준다. 멋진 계획이었어. 생각보다 넌 치밀한 구석이 있다니까!


나는 너무 기쁘고 또 동시에 너무 슬펐다. 죽기 전에 이런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런 감정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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