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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Oct 01.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30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0, 베르동 협곡(Verdon), 무스 띠에 생 마리(Moustiers-Sainte-Marie)




라벤더와 해바라기를 원 없이 보고 오늘의 숙소로 간다. 사실 지금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내가 왜 이렇게 먼 곳에 숙소를 잡았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이곳의 도로가 구불구불한 협곡 지대라는 것을 예약 당시에도 알았을 텐데, 실제 이 곳을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내일 일정이 주로 생뜨 크르와 호수(Lac de Sainte-Croix ) 주변임을 감안한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호수 근처 호텔에서 자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사실 이 청정지역에서는 꼭 캠핑장을 이용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호수 주변 캠핑장은 이미 예약이 끝나서 좀 떨어진 캠핑장도 괜찮겠거니 했던 것 같다.



바위를 뚫은 아치형 게이트


아이들이 이동 중에 찍어 준 사진


오후 6시를 넘기고 산으로 난 도로를 이용해서 숙소로 가야 하는데, 주변 풍경이 점점 험악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더니, 돌을 뚫어 만든 터널을 지난다. 다행히 차량이 많이 다니는 시간은 아니지만, 간혹 뒤에 차량이 따라붙으면 옆으로 비켜주어 추월하도록 하는 편이 맘이 편하다. 나는 이런 길에서는 속력을 낼 수 없다고요.


사실 오늘과 내일 이 산악 지대 일정이 나에게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두려웠던 곳이다. 여행 사이트의 의견을 분석해보니 이 지역에서 운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사람들과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어쨌든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고임에 분명했기에, 사실 이 곳을 계획에서 빼고 싶었다.


하지만 예의 그 도전의식(?)이 발동하여 피해 가지 않기로 결정한 곳이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지려면 2시간도 더 남았겠지만, 산속의 도로는 평지보다 훨씬 더 빨리 어두워진다. 태양은 이미 산 뒤 어딘가에 가려져 있다. 아이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좀 두려웠다.









어쨌든 무사히 캠핑장에 도착했다. 7시가 지나 도착해서  캠핑장 사무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대신 문 앞에 나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의 캠핑 장소와 캠핑장 안내서가 담겨 있었다.


오늘 밤 우리의 텐트를 치게 될 캠핑장


캠핑장의 카페, 프랑스와 벨기에의 준결승 경기 중이다.
저녁으로 카페에서 하와이안 피자를 먹었다.


카페 티브이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준결승 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좀 이상하다. 프랑스가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는데 환호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이상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캠핑장은 네덜란드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주로 벨기에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깨어 텐트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다. 숲 속이라 다른 곳보다 조금 추웠지만 에어 매트리스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오리털 침낭이 있어서 텐트 안은 훈훈하다. 피곤한 녀석들을 위해 조용히 아침을 준비한다. 전기밥솥에 밥을 올리고, 남은 야채를 잘게 썰어서 카레를 만들었다.


완소 아이템, 뚜껑이 깨져서 꽉 닫히지 않아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다.


역시나 숲 속의 공기는 신선하고 달콤하다. 폐 깊숙이 이 공기를 담아본다. 이 공기, 정말 다르다. 사실 이 캠핑장에서 2박 예정이었지만, 역시나 나는 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조금 생각을 달리 하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법 한데, 한번 묘한 불안함에 사로잡히니 떨쳐버리기가 쉽지않다. 오늘은 이 산악 지대에서 벗어나 평지 마을에서 자기로 선택한다.








베르동 협곡(Verdon)
도로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나를 가로막는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왜 나는 이곳을 굳이 일정에 넣었을까? 나는 근원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는 이번 일정에 대해 생각할 때 유독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무스 띠에 생 마리(Moustiers-Sainte-Marie)라는 마을이다.



바위 사이에 별을 매달아 두었다.
오르고 또 오른다.
Notre Dame de Beauvoir
돌산을 뚫고 마을로 내려오는 물이 제법 많다.



마을은 경사로를 따라 이어지고, 산 중턱의 성당까지 가려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거친 돌산과 마찬가지로 거친 돌로 만든 계단과 돌담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신기하게도 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의 양이 제법 많다. 이 물들을 가두고 있을 만큼 높은 산도 아니고, 나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여행 내내 비는 거의 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성당까지 등반하듯 올라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성당까지 올라온다. 성당 뒤편으로는 바위 산 봉우리이다.  성당 안뜰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서 잠시 땀을 식힌다.


높은 곳에서 우리가 올라온 길들을 내려다본다. 우리 참 열심히 다니고 있구나. 마치 숙제를 하듯이 한 곳 한 곳 계획했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행을 다닐 때처럼 계획표를 세우고 매일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간다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매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삶은 말 그대로 끝없는 모험이 되겠지? 삶은 흥미로운 도전이 되겠지?








모터보트를 빌려서 뱃놀이를 해보기로 한다.


셍뜨 크화 호수 (Lac de Sainte-Croix)
언덕 위의 집들


아들은 노를 젓는 배를 빌려야 한다고 한다. 안된다. 무조건 그늘막이 있는 모터보트다.  


나는 또 물도 무서워한다. 내가 직접 운전하는 배라면 더욱 공포스럽다. 그래서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면 나는 얼어붙고 만다. 으악 안돼 얘들아 꼼짝 말고 앉아 있어. 그냥 앉아서 숨만 쉬어. 아이들은 또 이런 내가 재미있다. 더 몸을 흔들어댄다. 물에 손을 담근다. 이 나쁜 놈들 땅에 내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호수가 넓다. 호수가 푸르다. 하늘도 파랗다. 호수를 둘러싼 산도 멋지다.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어본다. 내 안의 그 녀석만 없다면 삶도 여행도 더 즐길만할 텐데.






점심을 먹을 때 오늘 묵을 숙소를 검색해본다. 내일 갈 목적지와 이곳의 중간 지점이 좋겠다. 구글로 가까운 숙소를 검색하고 가격대가 적당한 곳으로 예약을 한다. 바로 예약을 확인해주는 메일이 온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갑자기 일정이 바뀐다고 해도 즉석에서 새로운 숙소를 손쉽게 예약할 수 있다. 영어를 몰라도 된다.

 

유럽용 유심칩을 원래 내가 사용하던 폰에 삽입하고, 주로 구글맵이나 급하게 검색할 때만 폰을 사용한다. 현지에서 전화통화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다면 전화통화보다 어플의 메신저를 활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모든 예약은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니 전화 영어에 자신이 없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협곡 지대를 빠져나오니 곧바로 들판이 이어지고 또 끝없는 라벤더 밭도 펼쳐진다. 어제도 실컷 보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내려서 라벤더 밭을 바라본다. 이 주변은 라벤더 밭이 아주 흔한 것 같다.


긴장되던 곳을 벗어나서일까? 평지를 달리면서 콧노래가 나온다. 두 여성 개그맨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아이들과 즐겁게 드라이브를 즐긴다.


어쩌면 마음이 불편한 곳은 꼭 가야 할 의무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잘했다는 마음도 든다. 삶의 어떤 선택도 정답은 없는 듯하다. 나는 항상 내가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누구도 정답은 모른다. 내가 해석하기에 따라 어떤 경험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게 마련일 뿐.


영화 '두 교황'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죄를 이렇게 고백한다. "아이였을 때 가장 먼저 지은 죄는 삶을 즐길만한 용기가 없어서, 책 속에 파묻혀 공부만 한 것입니다.” 삶을 즐길만한 용기 없음이,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 없는 자들의 죄인 것이다.







오늘의 예약한 숙소는 시스테 롱이라는 작은 마을의 저렴한 호텔이다.  


시스테 롱(Sisteron)의 Rocher de la Baume
당일날 예약한 호텔


가성비가 나쁘지 않은 강변에 위치한 호텔이다. 오늘 필요한 물건만 간단히 챙겨서 방으로 간다. 모두 샤워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베트남 식당을 찾아보라고 성화이다. 다행히 걸어서 5분 거리에 별점이 4개나 되는 베트남 식당이 있다.


무엇보다 숙소 앞 광경이 예술이다. 여행 책자에서도 본 적 없는 멋진 산이 숙소 앞 강 건너에 우뚝 서있다.




연세가 지긋하신 신사분들이 산 쪽 방향으로 멋진 카메라를 세워두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산에서 누가 뛰어내리기라도 하나 싶어 그분들에게 무얼 기다리는 거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석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느긋한 미소의 유쾌한 할아버지들과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 여행의 좋은 점 하나는 베트남 음식점을 찾기가 비교적 쉽다는 점이다.


저녁으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었다. 아이들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니 엄마는 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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