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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Oct 02.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31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1, 7월 12일 그르노블




이제 우리는 프랑스 남부에서 중동부 쪽으로 이동한다. 오늘 숙소는 그르노블(Grenoble)이라는 인구 15만의 도시의 에어비앤비이다. 느낌이 좋지 않다. 예약은 확정되었는데, 대개 숙박 당일  1~2 일 전에는 숙소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메시지가 오는데 아침까지 이렇다 할 연락이 없다. 주인에게 문의하는 메시지를 보내 둔다.




두 시간여를 달려 그르노블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르노블은 오래된 도시로, 지명은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그라티아누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부와는 확연히 달라진 지형이 흥미롭다.





시내 중심가의 Indigo 실내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마쳤다. 주차장 바로 앞에 International Cusine이라고 표시된 CYCV라는 식당이 있다. 아이들이 주차장에 들어올 때 이 식당에서 비빔밥을 파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둘 다 흥분해서 그 식당에 가보자고 난리다.


작은 식당이었다. 식당의 셰프는 한국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나라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추장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비빔밥을 그것도 프랑스인이 만든 비빔밥을 맛보게 되어 재미있었다. 가게에서 직접 담갔다는 김치도 맛이 있었다. 주변이 대학가라서 학생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저녁에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판다고 꼭 와보라고 한다.


프랑스 셰프가 만든 비빔밥






아직은 낮 12시이지만 아직까지 숙소 주인에게서 연락이 없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에어비앤비 본사에 메시지를 남겨둔다.



귀여운 케이블카
케이블카를 타고 강 건너편 산 위의 요새(Fort de La Bastille)로 갈 수 있다.


남부의 지형과 달라진 동부 지역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르노블 시내. 올드 타운의 건물과 외곽의 새로 지은 건물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이 있어서 1시간 정도 참여했다. 두고두고 이야기할 만큼 재미있었나 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 나는 근처 숙소를 검색해본다. 한 시간 안 되는 곳에 멋진 성이 있다. 성을 호텔로 개조한 곳인데, 성 옆에 작은 숙소가 가성비가 좋다. 성의 정원과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다. 사이트에 나온 사진을 보니 매혹적이다. 원래 우리 계획에도 성을 개조한 호텔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일정이 있지만, 이 곳도 가격 대비 멋져 보인다. 서둘러 예약을 하고 이 숙소로 향한다. 오후에 성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르노블은 원래 내일 샤모니로 가는 도중에 잠시 머물기로 한 도시라서 미련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성으로 출발한다.

 






호텔 로비



멋진 양복을 입은 연세가 지긋한 지배인이 우리를 맞아 준다. 호텔 로비는 고풍스럽고 조용하다. 우리는 성 안의 방이 아닌 정원을 가로질러 별도의 건물에서 머문다. 아이들은 우리는 왜 성에서 못 자고 헛간에서 자냐고 묻는다. 헛간은 아니란다. 얘들아.


비록 성 안의 방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적정한 가격의 방







주변은 온통 풀밭과 산과 나무뿐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다. 오히려 그르노블 시내보다 이런 자연 속의 아름다운 성과 풀밭을 즐길 수 있어서 훨씬 좋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일단 일어난 일은 받아들이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기로 하니 다음 단계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쾌하게 생각하여 화만 내었더라면 하루를 망치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로비에서 할아버지 지배인에게 저녁 식사를 예약하고, 지금은 맥주와 치즈, 음료를 정원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멋진 경치가 내다보이는 곳에 선베드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두 명의 아버지와 두 명의 십 대 아들로 보이는 팀이 이미 그곳에 있었다. 나는 다소 떨어진 옆 선베드와 테이블을 사용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들은 옆동네 스위스에서 휴가를 왔다고 한다.



선베드에 누워 파란 하늘과 들판과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오후의 햇살이 우리를 감싸 준다.  아이들은 풀밭에서 놀기도 하고 그네를 타기도 했다. 맥주 한 병과 치즈를 함께 즐겼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잠시 성의 안주인이 되었다고 상상해본다. 정말 완벽하군.

평화롭고 느긋한 오후를 즐겼다.



한낮의 태양에 적당히 데워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로 한다. 우리 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더 좋았다.



황혼이 질 무렵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다.



할아버지 지배인은 분주히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세심하게 음식을 세팅해주기도 하고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제 막 웨이터 일을 시작한 것 같은 젊은 청년도 함께 일을 거든다. 그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들의 태도와 말투, 손님을 대하는 매너를 유심히 관찰한다. 옆 테이블에 앉은 오후에 정원에서 만난 두 아버지와 두 아들 그룹에서 영업일을 할 것 같은 아버지가 말을 건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지 묻는다. 우리의 여행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스위스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어디고 주차하기도 어렵고, 물가는 너무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프랑스로 휴가를 온다고 한다. 수줍은 십 대의 아들들은 별 말이 없고 이 유쾌한 아버지와 그 친구는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끼리 맥주 한잔 씩을 더 마시고, 잠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함께 대화를 나누기에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가 되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이 곳이야말로 밤하늘의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이리라. 숙소 밖은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밤이 되니 쌀쌀했다. 겉옷까지 차려 입고 작은 손전등을 들고 숙소에서도 더 떨어진 풀밭으로 갔다. 작은 불빛도 없는 곳이어야 한다.


기대했던 대로 하늘에는 별이 무수히 많았다. 은하수도 또렷하게 보인다. 주변에 가로등도 건물도 없기 때문에 완벽한 어둠 속에서 선명한 별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잠시 서서 별을 보았다.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아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별을 보여주려고 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 보다 일관된 물질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도 언젠가는 설명해 줄 날이 오겠지?


오늘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일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행히 여러 가지를 만나서 즐길 수 있었다. 비록 예정에는 없던 일이지만, 인생이 언제 내가 계획한 그대로 흘러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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