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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Oct 04.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32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2, 샤모니(Chamoix)



아침에 조식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정원을 거닐었다. 싱그러운 7월의 여름 아침이다. 풀잎과 나뭇잎은 아직도 신선한 이슬을 머금고 있다. 온도와 습도가 우리 몸에 최적인 상태이다. 정원에 심은 사과나무 사이로 걸어본다. 아직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것인지 정원에는 우리 셋 말고는 아무도 없다. 오늘도 하늘은 완벽한 하루를 선물하려고 하나보다. 구름 하나 없이 반짝이는 날이다. 이쯤 되면 살짝 걱정이 된다. 이 나라 이렇게 비 안 와도 괜찮은 건가?






야외 테이블 위에 새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다. 여기에 커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린다면 죄책감에으로 몸 둘 바를 모를 것 같다. 따뜻한 크루아상 한 바구니와, 두 가지 종류의 치즈와 베이컨을 담은 접시, 신선한 오렌지 주스, 코코아와 커피, 요구르트, 딸기와 골드 키위를 담은 유리그릇으로 여왕의 아침 식사 같은 식탁이 정성스럽게 차려진다. 어제 오후부터 아침까지 제대로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식탁이 예뻐서 색연필로 그려보았다.



딸아이는 특히 더 만족스러워한다. 예쁘게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니 어딘가 몸가짐도 더 예쁘게 가지려고 하는 듯하다. 집에서도 종종 이렇게 차려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제 그르노블에서 숙소까지 한 시간 정도 이동한 덕에 오늘의 목적지인 샤모니까지 이동 시간이 한 시간 가량 줄어 들어서 2시간가량만 더 가면 된다.


샤모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몽블랑에 오를 수 있는 작은 도시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할 만한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숙소를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치가 좋은 곳이라 캠핑장을 예약하려고 했으나 한 달 반 전에 이미 마을 내의 캠핑장은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에어 비앤비를 예약했다. 그나마 마을 안에 위치한 곳을 예약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초반의 여행이 주로 프로방스였기에 남부의 평야와 낮은 구릉, 라벤더와 로마 시대의 건축물을 보았다면 이제 샤모니에서는 몽블랑과 일대 높은 산봉우리들의 웅장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샤모니로 가는 길







이런 길로 들어설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잠시 후 길은 더 좁아지는 숲으로 들어간다.



숙소에서 출발해서 한동안은 잘 닦인 도로를 편안하게 달렸다. 어느 순간 한적해 보이는 마을 길로 안내를 하기에 살짝 불안감이 찾아왔지만 무시하고 구글맵을 신뢰했다. 아직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벌써 산이 시작되는 건가? 길은 점점 좁아지며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길로 이어졌다. 나무가 점점 많아지고 길은 점점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커브길이 많아진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난감할 텐데. 점점 긴장되기 시작한다. 결국 산속에 건물이 몇 채 보인다. 마을은 아닌 것 같고 창고 따위로 쓰이는 건물인 것 같다. 경사로에 위쪽에서 차량 한 대가 내려온다. 하는 수 없이 후진해서 길을 비켜준다. 고맙다며 인사하고 지나간다.


급기야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구글 네비는 계속 진행하라고 하는데, 길가 표지판에는 4륜 구동 차량만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략 난감하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샤모니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인데 이렇게 길이 험하다고? 오분 가량 어찌할 바를 몰라서 멍하게 있었다. 주차된 다른 차에 가서 물어보니, 샤모니로 가는 고속도로가 있다며 다시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빨리 갈 수 있는 고속도로를 놔두고 왜 구글맵은 이 험한 곳으로 안내했던 걸까?


문제의 원인은 내가 구글 맵의 설정에서 유료도로를 제외하는 옵션을 켜 둔 데 있었다. 유로도로를 제외해두었으니 당연히 이런 산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다시 유료도로를 포함한 길을 탐색하니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직선으로 샤모니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안내한다. 여기까지 좁은 산길을 얼마나 두려워하며 왔던가? 내려갈 때는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알기에 긴장이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금방 마을 앞 대로변까지 운전할 수 있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추억을 하나 만들었군.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니 만년설이 덮인 웅장한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광경에 압도당한다.


숙소 앞에 안전하게 주차를 마치고, 짐을 내리는데 한국인 등산 동호회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다른 도시에서는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했는데, 샤모니에서는 정말 많이 자주 보게 된다. 한국인의 산 사랑은 이 곳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숙소 주변의 풍경



아직 본격적으로 마을 탐험을 나서지 않았지만, 숙소 바로 앞의 풍경만 보아도 이곳이 여느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다. 공기마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벌써 이 마을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곳에서는 3박 4일을 지낼 예정이다. 작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정말 편리하다. 숙소의 창문을 여니 맑은 날이라 몽블랑의 희고 둥근 정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몽블랑(Mont-Blanc)


아름다운 숙소



5분 거리에  에 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에 오를 수 있는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걸어가 본다.  한 달 전에 온라인으로 케이블카 탑승권을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3일을 묵기로 한 것이다. 만일 내일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날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탑승장을 중심으로 숙소는 5분 거리, 시내 중심도 5분 거리에 있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부디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기도한다. 높은 산 위의 날씨는 예측 불가인 경우가 많으니, 우리의 운을 시험해 볼 기회이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내일은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서 몽블랑을 감상한 후 중간 지점으로 내려와 둘레길을 트레킹을 할 예정이다.


오는 길에 마을 입구의 마트에 들러서 3박 4일 동안 먹을 식료품을 구매했다. 주방이 있으니 아침과 저녁을 한국식으로 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오늘 들른 마트에 배추를 팔고 있었다. 모든 마트에서 배추를 팔지는 않기에 배추가 보이면 바로 사야 한다.  파와 마늘, 생강 등을 함께 사서 김치를 한통 담글 수 있었다. 저녁은 아이들의 요청으로 삶은 계란을 넣은 비빔면을 해 먹었다.

작은 배추 한 포기가 쏙 들어가는 요긴하게 쓰인 용기
아이들은 점점 더 한국 음식이나 아시아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내일 역시 많이 우려도 하고 기대도 했던 일정 중의 하나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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