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못걷는 환자를 걷게해서 퇴원시켰더니

노인 요양원의 문제점

by 조세현

86세 노인 할머니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었으므로, 요새 이 나이는 노인이 아니다. )가 노인요양원 요양 보호사가 동반하에 외래에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진찰을 해보니 보행기나 지팡이를 잡고 걸을 수 있으나, 근력이 부족하여 힘들다고 하신다. 무릎이 관절염으로 O자 다리로 휘어져 있고, 방사선 소견 상 퇴행성 관절염이 심하였다.

인공 슬관절 전치환 수술을 권하였고, 보호자 면담을 위해 혈액 검사만 하고 직계 가족과 함께 다음 주 오시도록 하였다. 다음 주 오실 때는 평소 드시는 혈압약과 당뇨약의 처방전 또는 약을 전부 가져오시라 부탁 드렸다. (사실상, 이는 부탁이 아니고 필수적으로 확인 해야하는 의사의 명령이나, 요사이 환자 분들의 이의나 질문이 과격하여 부탁을 드리는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왜 멀리 사는 바쁜 자식들을 오라 해야 하느냐, 나는 수술하다 죽어도 좋으니 자식은 부를 필요없다. ) 참으로 이런 독거노인 분들이 많아 질 수록 의사생활 하기가 힘들어 진다. 대학교수 시절에는 이런 설명과 설득을 전부 간호사나 전공의 들이 했으나, 퇴임하고 나니 전부 나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한 이야기 또하고, 마치 내가 죄를 진 듯 보호자가 오셔야 수술동의서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약을 쓰고 계신지 알아야 약물 중복처방에 의한 부작용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한 다섯번 반복해 말씀드렸다. 진료실 밖에서는 빨리 안봐 준다고 소리 지르는 환자분도 계신데, 이런 분일 수록 자기 차례가 되면 대여섯번 동일 한 질문을 반복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따로 살고있는 딸이 와서 어머니 수술에 동의하고, 먹는 약물도 다 파악이 되서 수술일자를 잡았더나, 왜 한달씩 기다려야 하는가, 오늘 입원시켜서 빨리 수술해 달라는 것이다. 방사선 소견으로 보아 관절염은 적어도 3년이상 경과된 중증인데,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빨리 수술해 달라고? (이 말은 물론 환자에게 할 수 없는 말이죠.) 할수없이 전산상 환자 수술예약 명부를 보여드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미 한달이상 기다리고 계시므로 순서대로 수술해 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죠. 정급하면 대학병원으로 가서 사정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했더니, 이미 대학병원에 가서 교수님께 진찰 받는데만 6개월 기다리고, 의사 만난 후 수술은 또다시 6개월 기다리라 했다는 것이다. 아, 그렇게 잘 알고 계신분이 한달후에 수술해 드린다는 것이 늦다고 하시면 우리나라 어느병원에서도 수술 받으시기 어려우실 것이다.

설명이 아니라 설득을 해서 한달 후 수술을 받도록 예약을 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마쳤고 양측 각각 수술하여 약 한달정도 입원기간이 소요되었으며, 다리가 똑바로 펴지고, 무릎이 100도 정도 굴곡되엇다. 환자는 지팡이 한개 정도 집고 병원 복도를 잘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재활치료도 마쳤다. 이제 퇴원하시고 병원에서 가르쳐 드린대로 지팡이 한개만 집고 동네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햇볓을 쪼이면서 (vitamin D의 활성화를 위해서 필수) 하루 한시간 이상 걸으시라고 말씀드리고, 두달 후에 외래에 오셔서 방사선 사진과 진찰을 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퇴원시켜 드렸다.---이런 인사는 원래 내가 받아야 하지만 통 퇴원하면서 감사 인사하는 환자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다.

이런 일상이 지속되고,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수술했던 그 할머니가 응급실에 119 구급대에 의해 전송되어 왔는데, 깜짝놀랐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나? 아니면 뇌출혈이라도?

환자를 만나보니 의식이 가물가물, 간신히 내말을 듣고 대화는 가능하나 일어나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누워계신다. 너무 누워있어서 꼬리뼈에 작은 욕창이 생겼다. 처음 수술하기 전 불러서 만났던 환자의 딸이 옆에와서 사나운 눈으로 환자와 나를 부라리고 있었다. 우선 보호자를 면담실로 데리고와서 조용히 대화를 해보니 퇴원할때 환자분에게 보행기나 지팡이를 집고 열심히 걸으시라고 말씀 드렸느데, 걷지는 않고 요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것이다. 요양원에 맡겨두면 물론 환자의 보호자는 편하다. 의식주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요사이 노인 요양원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입원비도 저렴하니 보호자로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도 여러가지 치료가 있을 터인 바, 이 할머니는 원래부터 운동을 싫어하는 분이었는데 간신히 설득하여 수술하고 열심히 운동시켜 걸을 수 있게 해서 퇴원을 시켰으나, 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부터는 아예 누워서 일어나지를 않았다고 한다. 환자는 퇴원할 때 부터 열심히 걸으시라는 말씀을 누차례 드렸으나 요양병원에서는 환자가 일어나 걸으려 하면, 가능한 걷지 말라고 하였으며, 나의 권유와 반대의 치료를 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딸에게 물었더니, 할머니가 걷다가 넘어지면 병원 책임이니 걷지 말고 휠체어나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소변 보러 자주 화장실 가는 것이 낙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편안히 누워서 소변 보시도록 소변 줄을 줄창 끼워 놓았다는 것이다. 소변 검사에서는 다수의 세균과 백혈구가 검출되는 전형적인 소변 줄에의한 세균성 방광염 소견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예이다. 누죽걸산이라는 말이있다. 누우면 죽고, 걸어야 산다는 뜻인데, 노인의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지침이다. 환자는 수술을 받기 이전보다도 더 나빠진 상태로 의식까지 명료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전신의 관절이 굳어버린 상태로 응급실로 왔다. 과연 나는 이 환자를 다시 어떻게 치료하여야 할까, 설사 그 지난 고생을 같이 해서 걷게 만든다 한들 환자가 퇴원후 또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는 다는 보장은 없다. 환자도, 보호자도 다같이 협조해야 하며, 요양원도 노인 환자의 치료 원칙은 누워서, 음식을 투여하는 생명의 연장에만 있지않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거나,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늦잠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