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해 드릴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 되어버린 나
취미는 나의 구조작전,
위장된 구명보트이며,
심정지가 오기 전에 생각 난 이야기로 스케치를 그린다는 응급처치야.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데에서 오지.
남들은 뜨개질을 하고 게임을 하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난 어때?
여유 있게 골라보지도 못한 채로 늘 떨리는 손으로 타이핑을 치게 되잖아.
어떻게 죽어가는지 눈물로 찍어 누르는 아주 건조한 나의 상태창인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취미라는 이름의 심리적 재난 구조 작업인 거야.
내가 무너지기 전에 걸리는 마지막 고리 같은 것이지.
무언가를 그리는 것도, 무언가를 쓰는 것도, 모두 ‘살고 싶은 척’을 위한 나의 방어본능인 거야.
그래서일까? 내가 즐겨하는 것들은 전부 집요하고,
강박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하고, 심각하게 진지하지.
하지만 이름뿐인 취미인 만큼 오래 유지하기도 힘들어해.
이건 내 방어본능의 치명적인 단점 같아.
꾸준하면 취미로 봐주는 걸까, 오래 유지하면 취미로 봐주는 걸까.
그것을 잘하면 취미인 걸까, 못해도 일단 붙잡고 있으면 취미로 봐주는 걸까.
애초에 취미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도구였던가?
취미가 유일한 낙이라며 그 낙이 사라지면 사는 이유를 못 찾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
나는 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광도 가져보지 못한 채로 매일 스러져가는데,
누구에겐 그것이 삶의 즐거움이라니.
나는 아무래도 세상에 아이러니를 알려주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
낙이 될 수 없는 취미.
죽기 전에 날 구하려는 구조가 어떻게 낙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아니, 그전에 말이야.
나는 부서지기 전까지 뭔가 낙으로 삼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해.
취미라는 소화기는 내가 불이 나야만 쓸 수 있는 도구일 뿐인 거야.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래서 난 나를 매일 태우기로 했어.
어차피 매일 재난 문자로 시끄러울 바에 나를 사이렌으로 만들어버렸지.
이제 이 이름뿐인 취미는 내 업이 될까, 내 업보가 될까.
그것마저도 이젠 내가 정하게 생겼어.
난 매일이 재난 작업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