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O', -son, Fitz- 에 담긴 사연들
어제 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배우 이름이 나올 때마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Paul McCartney, Robert De Niro, Dwayne Johnson... 이 사람들의 성씨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특히 McCartney가 신경 쓰였다. Mc가 뭘까? 맥도날드의 Mc와 같은 건가? 호기심이 발동하면 잠이 안 오는 성격이라, 결국 책상 앞에 앉아서 영어 성씨의 유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파면 팔수록 재미있었다. 성씨 하나하나에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
먼저 McCartney의 Mc부터 파헤쳐봤다. 알고 보니 Mac과 Mc는 모두 게일어(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쓰던 켈트족 말)에서 온 말로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쓰이던 표현이다. MacDonald는 "도널드의 아들", McGregor는 "그레고르의 아들"이라는 뜻인 거다.
그러면 아일랜드에서 주로 쓰이는 O'는 뭘까? O'Neill, O'Connor... 이것도 게일어인데 "후손"이나 "손자"라는 의미란다. O'Neill은 "니얼의 후손"이고 O'Connor는 "코너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인데 지역에 따라 다른 표현을 쓴 거였다.
재미있는 건 Fitz-라는 접두사도 있다는 점이다. Fitzgerald, Fitzpatrick... 이건 노르만 프랑스어(11세기~13세까지 영국을 지배한 왕조)에서 온 말로 역시 "아들"이라는 뜻이다.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 프랑스 귀족들이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웨일스에는 또 다른 방식이 있었다. ap-라는 접두사인데 역시 "아들"이라는 뜻이다. ap Rhys가 Price가 되고, ap Richard가 Pritchard가 되고, ap Hywel이 Powell이 된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하기 쉽게 줄어든 거였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son 계열이었다. Johnson, Anderson, Peterson... 이런 성씨들 말이다. 이것도 당연히 "아들"이라는 뜻인데, 북유럽에서는 정말로 세대마다 성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Erik의 아들은 Erikson, Olaf의 아들은 Olafson이 되는 식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금도 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단다. 아버지나 어머니 이름에 -son(아들)이나 -dóttir(딸)을 붙여서 성을 만든다. Jón의 아들은 Jónsson, Jón의 딸은 Jónsdóttir가 되는 거다.
상상해보니 신기했다. 우리나라처럼 김씨 대대로, 이씨 대대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매 세대마다 아버지 이름에 따라 성이 바뀌는 거다. 어떤 면에서는 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방식 같았다.
William은 보통 남자 이름인데 성이 Williams 처럼 s가 붙으며 복수형이 성인 사람들도 보게 된다. 이게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William's son에서 son과 어포스트로피가 탈락하고 s만 남은 경우다. 즉, 이 말도 누구의 아들, 딸이란 의미인 것이다. Robin Williams나 Miles Davis도 그런 경우. Davis는 David's son이 줄어서 생긴 경우이고 Roberts도 마찬가지다.
성씨의 유래를 더 찾아보니 정말 다양했다. 직업에서 온 성씨들이 특히 많았다. Smith는 대장장이, Taylor는 재단사, Baker는 제빵사, Miller는 방앗간 주인이다. Cooper는 통을 만드는 직공이었고, Fisher는 어부였다.
Will Smith를 볼 때마다 "아, 이 사람 조상은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Taylor Swift의 조상은 바늘과 실로 옷을 만들었을 거고. 성씨 하나로 몇백 년 전 조상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니, 참 묘한 기분이다.
지명에서 온 성씨도 많다. Hill, Wood, Brooks, Ford... 언덕 근처 살던 사람, 숲 근처 살던 사람, 개울 근처 살던 사람, 여울목 근처 살던 사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도로명이나 번지수가 없었으니까, "Hill 씨네"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을 거다.
외모나 별명에서 온 성씨도 있다. Brown, White, Black은 말 그대로 갈색, 흰색, 검은색이고, Short는 키가 작았던 거고, Armstrong은 팔 힘이 센 사람이었을 거다. 지금 같으면 별명으로 끝날 일이 성씨가 되어서 대대로 내려온 거다.
찾아보다 보니 영어 성씨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반 고흐나 문호 괴테의 이름에도 비슷한 사연이 숨어 있었던 거다.
Vincent van Gogh의 'van'은 네덜란드어로 'from'이라는 뜻이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나타내는 거였다. 독일의 Johann Wolfgang von Goethe에서 'von'도 마찬가지로 독일어로 'from'을 의미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샤를 드골 공항으로 유명한 Charles de Gaulle의 'de'는 프랑스어로 'of'나 'from'이라는 뜻이다. 영화배우 Robert De Niro나 감독 Guillermo del Toro의 경우도 비슷하다. 'Del'은 스페인어로 'of the'라는 의미다.
이런 성씨들은 대부분 귀족이나 특정 토지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어디어디 출신의", "어디어디 영지의" 이런 식으로 자신의 출신지나 소유지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던 거다. 평민들이 직업이나 아버지 이름으로 성씨를 만들 때,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나 출신 지역으로 정체성을 표현했던 셈이다.
이런 걸 찾아보고 있으니 문득 깨달았다. 성씨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구나. Mac, Mc, O', Fitz-, ap-, -son... 모두 "아들"이나 "후손"이라는 뜻에서 출발했지만, 지역과 언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거다.
게일어, 노르만 프랑스어, 웨일스어, 북유럽어... 영국 제도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언어와 문화가 섞여 있었던 거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영어라는 언어도 사실은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Paul McCartney를 보면서 비틀즈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씨족에서 시작된 긴 이야기의 끝자락을 보는 것 같다. Robert De Niro를 보면서 이탈리아의 어느 지역 출신인지 궁금해진다.
영어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역사책을 읽고 있고, 문화를 공부하고 있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언어 공부가 재미있는 거 같다. 겉으로는 문법과 어휘를 배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배우는 거니까.
이런 걸 알고 나니 사람들의 이름을 다르게 보게 됐다. 그냥 호명용 기호가 아니라, 몇백 년 몇천 년의 시간이 응축된 작은 역사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성씨도 마찬가지일 거다. 김씨, 이씨, 박씨... 각각의 유래와 이야기가 있을 테고, 그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을 거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 내 이름, 내가 사는 곳의 지명...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 층층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 말이다.
McCartney의 Mc를 찾아보다가 결국 이런 깨달음까지 오게 됐다. 언어 공부의 묘미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호기심 하나에서 시작해서, 어느새 삶과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
다음에 또 어떤 궁금증이 생길지 기대된다. 분명히 또 다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