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생의 무게에 대하여
어제도 방 한구석에서 거미를 발견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아니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거미. 처음엔 그저 '거미가 있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손을 흔들면 황급히 도망갈 것이고, 그게 전부일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을 들여다보니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다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촉각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감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계속 지켜보니까 도망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 작은 몸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거미의 생은 정말 단순할까?
우리는 곤충을 '미물'이라 부른다. 한자로 微物, 작을 미에 물건 물. 작은 것. 하찮은 것. 그 이름 안에 이미 우리의 판단이 들어있다.
크기가 작으면 생도 단순할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자동적으로, 의심 없이. 누구나 거미도 죽기 싫어한다는 것쯤은 안다. 고통을 느낄 거라는 것도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도 인간보다는 하찮잖아. 저차원이잖아. 단순하잖아!'
정말 그럴까?
우리가 거미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없다'로 치환해버리는 건 아닐까. 측정할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감할 수 없으니 단순하다고 결론 내려버리는 건 아닐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간은 확신에 차 있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대로였다. 물질의 최소 단위는 그저 아주 작은 알갱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작으면 단순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이 등장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했다.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는 순간, 전자는 이미 다른 상태가 된다. 관찰한다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 개입한다. 우리가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중립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중슬릿 실험은 더 당혹스러웠다. 빛이 파동인가, 입자인가? 답은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였다. 관찰 방식에 따라 본질이 달라 보인다니. 인간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충격적인 건 '스케일의 역설'이었다. 원자 하나를 확대해보니 그 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빈 공간 속에서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고, 그 궤도는 나름의 법칙을 따르고, 그 상호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복잡했다.
작다고 단순한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측정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원자 하나 안에도 우주가 있었다.
그렇다면 거미는 어떨까.
우리가 거미의 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순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인간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거미가 단순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 영역이 다르기 때문 아닐까. 공감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를 뿐 아닐까.
양자세계를 관찰할 도구가 없었던 시절, 인간은 그 복잡성을 상상조차 못했다. 마찬가지로 거미의 세계를 들여다볼 도구가 없다고 해서, 그 세계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거미의 매 순간도 엄청나게 복잡할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측정할 수 없을 뿐.
인간 또한 우주적 시점에서 보면 티끌 같은 존재다. 양자물리학이 인간의 오만을 깨뜨렸듯이, 우리는 다른 생명 앞에서도 겸손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만약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가 있다면. 그들의 눈에 인간은 어떻게 보일까.
인간의 희로애락, 사랑과 미움, 고뇌와 환희.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단순한 화학반응'으로 보일까. 그들도 인간을 '미물'이라 부를까. "저것들은 고작 저 정도밖에 못 느끼네. 참 단순한 생이야"라고 말할까.
우리가 거미에게 하는 것처럼.
크기와 복잡성은 비례하지 않는다. 가치와 존재의 무게는 스케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이 증명했듯이.
다시 거미 앞에 선다. 여전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이 '단순하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이 작은 생명도 자기만의 복잡한 우주를 살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볼 수 없는 차원에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 진짜 아는 것은 얼마나 될까.
더 단순한 생이란 과연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