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스타이너의 철학을 통한 동물과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
게리 스타이너(Gary Steiner)는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오류를 지적한 미국의 현대 철학자다. 그의 대표작 『Anthropocentrism and Its Discontents』에서 그는 플라톤부터 데카르트, 칸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어떻게 '인간의 이성'을 특권화하며 동물을 도덕적 고려 대상에서 배제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문제는 단순히 "동물을 학대하지 말자"는 차원이 아니다. 스타이너가 파헤친 것은 우리 사고 체계의 뿌리다.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 "언어를 사용하는가?"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가?" — 이런 기준들로 동물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제해온 수천 년의 역사. 그것이 바로 인간중심주의의 정체였다.
*게리 스타이너의 저서는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출판된 것이 없어서 원제를 그대로 썼음.
스타이너는 비판에만 머물지 않았다. 2008년 출간된 『Animals and the Moral Community』에서 그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가 제안한 핵심 개념은 '친연성(kinship)'과 '우주적 전체성(cosmic holism)'이다.
친연성(kinship)이란 단순히 "동물을 사랑하자"는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존재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욕구를 가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같은 '가족(kin)'이라는 것. 혈연관계를 넘어선, 생명으로서의 친족 관계. 스타이너는 이성이나 언어 능력이 아니라, 동물의 '주관적 삶(mental life)'—감각, 욕구, 관심—이 도덕적 고려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주적 전체성(cosmic holism)은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인간, 동물, 자연이 서로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생태계 안에서 상호의존하며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다. 흥미로운 점은 스타이너가 이 개념을 제시하면서도 자유주의적 가치(정의, 공정성, 개인의 권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전체주의적 사상이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고 요구했다면, 스타이너는 정반대를 말한다.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되, 그 자유가 다른 존재의 고통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의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치의 범위를 인간 너머로 확장하자는 제안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나의 자유는 소중하다. 하지만 내 자유가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그건 진짜 자유가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범위를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까지 넓혀보자는 것이 스타이너의 제안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리 스타이너와 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들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싶은 거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나? 가죽 가방은?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은?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스타이너의 논리를 밀고 나가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조차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니야?" 그래서 아예 생각 자체를 접어버린다. 할 수 없으면 안 하면 그만이고,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으면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편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당장 완벽한 실천과 변화를 실행할 수 없다고 해서 인식과 깨달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영웅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극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직장에 다니고, 밥 먹고, 잠자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의 판을 짠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세상의 판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루아침에 완전 채식주의자가 될 수도 없고, 모든 소비를 윤리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꿈같은 이야기"라며 치부해버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깨닫고 새롭게 인식하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2012년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치킨, 햄버거, 삼겹살, 갈비, 스테이크, 돈까스 같은 노골적인 육식 요리를 아예 먹지 않았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있다. 커피 속에 든우유는? 치즈는? 조개와 새우는? 99% 채식인 요리지만 위에 계란으로 만든 마요네즈 소스가 살짝 뿌려져 있는 건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내리지 못했다. 설령 혼란스럽지 않더라도 실천에 대해서는 여전히 100%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않는 것과 의식하는 것, 불편을 느끼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니까. 하지만 손쉽게 실천한 것의 윤리성에만 취해 편안함을 느끼려하는 관성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지 않기 위해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스타이너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다.
"나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내 선택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질문들을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일상에서의 실천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실히 해나가면 된다. 육식을 줄여보는 것,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 유기동물 입양을 고려하는 것, 혹은 단지 길고양이를 보며 "저들도 나처럼 고통을 느끼는 존재구나" 하고 인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변화다.
게리 스타이너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어디까지 도덕 공동체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가?"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저,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내 생애 세상의 판을 뒤집지는 못해도 내 반경 안의 세상의 판만큼은 바꿀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