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런던, 파리, 뉴욕의 개들은 어떻게 죽었는가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에게 가한 폭력으로 들여다보는 우리의 모습

by 세이지SEIJI

2025년 한국 사회에서 들개 문제가 뜨겁다. 언론은 연일 들개로 인한 사고를 보도하고,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말한다. "선진국에는 들개가 없다." 정말 그럴까?

아니, 더 정확히 물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배회견(들개)을 '없앴을까'?

불과 100년 전, 런던과 파리와 뉴욕의 거리를 들여다보자. 그곳에는 우리가 선진적이라고 믿는 동물 복지의 기원이 있다. 동시에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폭력의 역사도 있다.



도시에 남겨진 동물, 도시가 버린 개들

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길들여진 동물이다. 약 15,000년 전의 일이다. 그만큼 개와 인간의 관계는 길고도 특별했다. 농촌 사회에서 사람들은 개뿐 아니라 말, 소, 돼지, 닭, 양 등 다양한 동물과 함께 살았다. 동물들은 일상의 일부였고, 삶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되어 살아가자 대부분의 농장 동물들은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말은 운송 수단으로 한동안 남았지만, 소와 돼지와 닭은 도시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개만은 남았다.

개는 도시에서도 여전히 인간 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들의 지위는 완전히 달라졌다. 농촌에서는 목축견, 사냥견, 경비견으로서 명확한 역할이 있었던 개들이 도시에서는 '쓸모'를 잃었다. 주인을 잃거나, 버려지거나, 혹은 애초에 주인이 없던 개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그들은 '배회견'이 되었다.



과학 없는 공포가 만든 학살

배회견에 대한 혐오의 가장 큰 원인은 광견병이었다. 19세기 사람들은 광견병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개에게 물리면 미쳐 날뛰다가 죽는다는 공포만이 있었다(실은 광견병은 개만 걸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는 이 병은 도시 사람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것은 1885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배회견은 단순히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다. 따라서 배회견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1811년, 뉴욕시는 배회견 살해를 합법화했다. 그해 여름, 뉴욕시 경찰서장 애브너 커티스는 2,610마리의 배회견을 거리낌 없이 죽였다. 명분은 "도시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와 "행인에게 위협이 된다"였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도시라는 공간이 주는 무질서함과 익명성에 대한 원초적 불안감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 - 배회견, 노숙자, 이민자, 가난 - 에 대한 공포가 배회견 학살을 정당화했다.


1830년대 런던에서는 더 교묘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당국은 배회견 살해를 장려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았다. 대신 배회견이 특별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 노숙자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가난한 인간 불청객과 비인간 불청객을 동시에 몰아내는 전략이었다. 배회견 = 노숙자 = 도시의 불청객. 이 등식은 자연스럽게 성립했다.


1845년, 파리 경찰 당국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배회견 살해가 수십 년간 지속되자 적나라한 폭력에 반감을 표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배회견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1850년, 프랑스는 Grammont Law를 제정했다. 이 법은 동물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해결책은 간단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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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살처분이라는 위선

배회견 살처분은 이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시영 구금소'에서만 집행되었다. 파리의 경찰들은 배회견 한 마리를 구금소로 끌고 갈 때마다 약 2프랑의 보너스를 받았다. 일종의 성과급이었다.

1840년대 뉴욕에서는 배회견을 때려잡고 돈을 받는 브로커들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는 소년들도 있었고, 대부분 이민자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었다. 이들은 거리에서 배회견을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이는 배회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배회견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 = 이민자 = 노동계급 =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하층민. 배회견에 대한 혐오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살처분 방식도 다양했다. 파리에서는 개의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뉴욕에서는 익사였다. 개들을 자루에 넣고 강에 던지는 방식이었다. 보이지만 않으면, 들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였다.

1884년, 벤저민 워드 리처드슨은 런던의 배터시 개 보호소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마취제의 일종인 클로로포름과 탄산가스를 이용한 대량 살처분이었다. 그는 이것을 '인도적'이라고 자처했다. 개들이 고통 없이 잠들듯 죽어간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게, 조용히, 효율적으로. 그것이 '인도적'의 정의였다.


하지만 1903년 뉴욕에서 한 여성이 목소리를 냈다. ''플로라 킵'은 렉싱턴 애비뉴에 'Bide-A-Wee Home' 보호소를 설립하며 인도적 살처분을 전면 반대했다. 그는 살처분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우는 행위의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사회는 킵의 보호소에는 대부분 여성들만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너무 감정적이라고 조롱했다. "개 따위에게 그런 연민을?" 사람들은 킵을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여성으로 치부했다.


그보다 앞서 1860년 런던에서 '메리 틸비'는 홀링스워스에 'The Temporary Home for Lost and Starving Dogs'를 설립했다. 1871년 이 시설은 배터시(Battersea)로 이전했고, 오늘날까지 운영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보호 센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선택적 구조였다. 주인이 찾아갈 만한 개, 입양될 가능성이 있는 개만 살아남았다. 애완견이 아닌 대부분의 배회견은 역시 살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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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정당화한 차별

1859년은 중요한 해였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이 이론은 왜곡되었다.

'사회다윈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생물종에도, 인간 내부에도, 사회와 문화 차원에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위계가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약육강식을 자연의 법칙이자 자명한 진리로 만들어버렸다. 우수한 종이 열등한 종을 지배하는 것,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 우수한 계급이 열등한 계급을 지배하는 것. 모두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다윈의 사촌 '프란시스 골턴'은 우생학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순수한 혈통이 더 우수하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인간에게도, 개에게도 동시에 적용되었다. 개 품종 개량은 우생학 실험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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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계급의 특권이었다

'Pe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작다는 뜻의 프랑스어 'petit'에서 왔다. 이 단어는 중세 시대 귀족 여성들이 데리고 다닌 작은 개를 지칭하는 데서 유래했다. 애완견은 처음부터 특권의 상징이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찰스 2세를 비롯한 왕족과 귀족들이 애완견을 사랑했다. 그리고 점차 "애완견을 사랑하는 능력"이 귀족 엘리트의 교양이자 특권이라는 인식이 영국 사회에 퍼졌다. 감성이 풍부하고 세련된 사람만이 작은 생명을 섬세하게 돌볼 수 있다는 논리였다.

18세기를 거치며 애완견 문화는 귀족 계층에서 중산층으로 확산되었다. 이제 문제가 생겼다. 중산층도 개를 키우기 시작하자 상류층은 자신을 구별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순수혈통견'이었다.


1859년, 영국 뉴캐슬에서 최초의 도그쇼가 개최되었다. 개의 외모와 혈통을 심사하는 자리였다. 1873년 영국에서 Kennel Club이 설립되었고, 1884년에는 미국에서 AKC(American Kennel Club)가 설립되었다. 각 품종마다 '품종 표준(breed standard)'이 확립되었고, 혈통서(stud book)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도그쇼는 표면적으로는 개를 심사하는 자리였지만, 본질은 달랐다. 그것은 주인의 계급을 증명하는 장이었다. 여성은 남성과 함께 개를 출품할 수 없었다. 노동계급 사람들은 상류층이 모두 떠난 후에야 자신의 개를 보일 수 있었다. "모든 좋은 개들이 집에 간 후"에.

이제 명확한 위계가 생겼다. 순종견 = 상류층 =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개. 잡종견 = 배회견 = 노동계급 = 제거되어야 할 개. 같은 종이지만, 인간이 만든 기준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경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들

1880년대, 유럽 각국에 경제공황이 불어닥쳤다. 사람들도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개는? 배회견의 수는 급증했다. 구금소의 살처분은 본격화되었다.

가난한 사람과 배회견은 함께 버려졌다.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약자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투사한 것은 무엇이었나

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가까운 동물이었다. 15,000년을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런 개에게조차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사했다.


공포를 투사했다, 광견병이라는 이름으로.

계급 의식을 투사했다, 순종과 잡종이라는 구분으로.

경제적 효용성을 투사했다, 쓸모 있는 개와 쓸모없는 개로.

미적 취향을 투사했다, 아름다운 개와 그렇지 않은 개로.

사회적 불안을 투사했다, 통제 가능한 개와 불가능한 개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영국, 프랑스, 미국도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이랬다. 배회견을 집단 학살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살하고, 익사시키고, 가스로 죽였다. 그리고 그것을 '인도적'이라고 불렀다. 배회견을 죽이는 일을 이민자와 노동계급 소년들에게 맡기며 그들까지 함께 혐오했다. 특권을 위해 인위적으로 품종개량을 저질렀다. 자신의 신분상승과 과시욕을 위해 애완견을 들이고 필요없어지면 유기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가

2025년 한국 사회로 돌아와 보자.

오늘 우리는 배회견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품종견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가? "위험한 개"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 개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개에게 투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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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배회견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내 개'와 '남의 개'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모든 질문이 100년 전 런던, 파리, 뉴욕에도 있었다. 그들은 배회견을 '없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보이지 않게 만든 폭력이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잃어버린 연결"은 결국 이것이다.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우리의 두려움, 계급 의식, 불안을 동물에게 투사하지 않는 것.

사랑한다면, 왜 순종이어야 하는가?

사랑한다면, 왜 '내 개'여야 하는가?

사랑한다면, 왜 귀여워야 하는가?

사랑한다면, 왜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동물에게조차 인간은 최근까지도 폭력을 저질러왔다. 그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반복할 것이다. 아니 반복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더 '인도적인' 방식으로, 더 '과학적인' 근거로,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2025년 대한민국은 19세기 런던, 파리, 뉴욕이 동물들에게 저질렀던 폭력과 얼마나 닮아있고 얼마나 다를지 생각해봤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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