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 : 월요일의 일탈
정상을 찍으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 아닌, 가보고 싶은 곳을 계속 찾아 걸어갔던 길 끝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늦가을 잡고, 하이킹과 등산 사이를 가보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편한 옷을 골라 입고, 장갑과 모자도 챙긴다. 운전하고 가는 길, 하늘은 맑고 높다. 낙엽이 이미 많이 떨어져 버렸지만, 친구랑 처음 가보는 길, 어른들의 소풍이 신이 난다.
처음 가보는 길이어서 내비게이션을 보고 찾아갔다. 고속도로가 아닌 동네 길을 따라간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동네 길을 지나고 고속도로를 타고, 옆에는 뉴저지주 사이 델라웨어 리버를 중간에 두고, 펜실베이니아주 국도 209를 따라 달려갔다. 주변의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Raymondskill Fall 이 있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다른 폭포들 (Dingmans falls and Bushkill falls) 도 보였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가방 가득 간식도 챙기지도, 이젠 쌀쌀한 날씨에 장갑도 끼고, 모자도 쓰고, 지도 앞에 섰다.
지도 앞에서, 어느 쪽으로 걸어 볼까? 오른쪽으로 가보자. Trail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서 폭포가 나왔다.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가장 높은 3단 폭포라고 한다.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듣는 폭포 소리에 조금 놀랐다. 물이 떨어져서 나는 소리가 생각보다 아주 컸다. 우리가 선택한 오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길은 폭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폭포를 따라 옆으로 내려가는 경사가 꽤 가팔랐다. 폭포를 보여주러 아이들과 다시 오고 싶은데, 우리 아가들 이 길을 잘 올라오고 내려올 수 있을까? 폭포를 따라 내려갔다 다시 걸어 올라오는 거리는 약 0.6 km 정도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지도 앞에서 만나 우리의 또 다른 선택, 옆에 다른 Trail을 걸어서 가볼까? 아니면 차를 타고 다른 곳을 가서 걸어 볼까? 우리의 선택은 신속했다. 안전하게 건강하게 오늘을 즐기자. 초행길이니, 지도를 따라 차로 3km 정도 가면 나오는 다른 하이킹 코스를 찾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Cliff Park Trailhead였다. 이곳에서도 선택의 연속이다. 이번에도 우린 오른쪽 길을 선택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곳에 주황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여기 주황색 트레일 라인 인가? 옆에는 누가 돌보지 않은 집도 보이고, 11월 중순이라 그런지 단풍은 이미 다 떨어져 버려 바닥에 있다. 다음번에는 10월 중순에 와서 단풍을 많이 보고 가자고 했다. 낙엽들이 양쪽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트레일 길을 따라가는 길이 쉽다. 나무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그렇게 춥지만은 않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가 우린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났다. 우리의 선택은 오른쪽이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들었던 것 같은 폭포 소리가 가까워 온다. 그렇게 걸었더니 정말 또 다른 폭포. 우리가 만난 4번째 폭포는 Hackers Falls이었던 거다. 지도에도 표시가 없어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폭포를 만나니 가던 발걸음이 즐겁다.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만나 폭포와 두 번째 시작했던 장소의 중간에 정도였던 곳이고, 차를 타지 않고 걸어도 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다음엔, 걸어와 봐도 좋겠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앉아서 폭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자리를 만들었다.
알록달록 김밥, 따듯한 김이 나오는 보온병에 들어있던 물로 만든 달달한 믹스커피, 가방 속 간식들을 꺼내 먹으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한참 폭포 앞에서 좋다, 시간을 내어서 놀아야 한다, 떠나야 한다, 오길 잘했어를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돌아가는 길 가방이 가볍다.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조금 좁혀지는 것 같다. 우리의 인생 가방에는 어떤 것들을 넣고 가야 할까?
눈으로만 담기 아까운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리막이 있었으니, 오르막이 있다.
낙엽이 떨어져서 길인지 모르겠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또 만난 선택. 지도는 없었다. 어떤 트레일에 있다는 것만 알려주는 것 같은 색깔. 노란색. 그리고 누가 적어놓은 "Waterfall", 우리가 지나온 폭포를 향한 표시.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시작했던 폭포로 갈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 선택한 왼쪽 길. 그리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나무길, 양쪽에서 나무들이 위에서 만나고 있었다. 낙엽이 다 떨어져 버린 지금도 너무 아름다웠는데, 낙엽이 가득한 시기에 온다면, 더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풍경일 거 같다. 그렇게 너도 한 장, 나도 한 장,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우리의 오늘을 남겨본다. 많은 곳을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들. 오늘 우리가 찍은 이사진도 곧 지금을 추억을 기억하게 해 줄 고마운 기록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코로나 시대. 지금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또 암호같이 나온 표지판과 색깔들. 오렌지 색깔, 노란색, 하얀색, 카메라 심벌, 오렌지 색깔을 따라 걸었다.
오늘 선택의 앞에 섰을 때 계속 오른쪽부터였다. 두 번째 왼쪽 길이다. 왼쪽으로 왔던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해서 만난 곳. 그렇게 걷는데, 낙엽을 치워고 있는 아저씨를 지나간다. 낙엽이 가지런히 길이 나있었던, 이분의 수고였던 것이다. 낙엽에 길이 덮여 길을 잃지 않게 낙엽을 치워주는 일을 하고 계셨다. 다행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 낙엽을 치워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는 낙엽을 치워주는 사람인가?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트레일 길을 잠시 벗어나 조금 더 들어가 보니, 그 길 끝자락을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걸었던 것 같은 길을 따라 우리도 걸었다. 지도를 보니 아까 우리가 차에서 운전하고 지나갔던 그 절벽 위였다. 그 길이었다. 그렇게 강을 내려가 보면 걸었다. 어쩌다 보니 제일 높은 곳에 도착했다. 숨이 탁 트이는 그렇게 멋진 곳이었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아찔하게 높은 그런 곳이었다. 오늘의 하이킹은 선택의 연속이었는데 여기 가보자, 저기 가보자 하면 걷다 도착한 곳은 제일 높은 곳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방향이 틀렸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바꿔서 걸어간다. 무작정 걷는다고 해서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에 도착하지 않는다. 힘들게 헤매고, 애를 쓰다 도착할 수 있겠지만, 안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선택이다. 돌아가는 길에 나온 또 다른 선택, 오렌지색과 파란색 길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파란색 길을 선택해서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하는 내리막 경사길, 우리가 이렇게 높이 올라왔었나? 처음부터 이 길로 올라왔으면 정말 힘들었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났던 호수. 고요하다. 걷다가 폭포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고요한 호수. 힘차게 흘러내려가는 물을 감당하며 담고 있던 폭포와는 다른 게, 호수는 가을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고요한 울림도 폭포의 울림만큼이나 강했다.
처음 우리가 올라갈 때 멀리서 보이던 오래 방치되어 있던 집의 뒷모습이 보인다. 우리 결국 돌아왔나 봐. 도착해서 보니, 우리가 갔던 방대 방향 왼쪽 길이었던 것이다. 뒤돌아 보니,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왼쪽으로만, 왼쪽으로만 선택을 했어도, 처음 가보는 길에 대한 설렘에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가보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만났던, 폭포, 나무길, 정상, 호수, 어떻게 만나 졌더라도 감동이었을 것이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달리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뉴저지 주를 지나며, 등산같이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도, 폭포를 타라 내려오던 내리막길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나무 길도 걸었던 그런 하루였다. 제일 높은 것을 빨리 올라가 보자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던 하루가 아니었다. 걷다가 만난 것들에 감사했던 시간이었고, 사랑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냈던 하루였다.
오늘 선택의 연속이다. 앞으로 가지고 갈 것들, 누구와 가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지도를 보고 방향은 언제 바뀌어 야 하는지, 모든 것이 선택이었다. 우린 최선의 선택을 했고,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정상을 찍으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 아닌, 가보고 싶은 곳을 계속 찾아 걸어갔던 길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