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INA Apr 19. 2021

지금은걷고 있지만...

4월 17일

토요일 아침이니까, 달릴 준비를 하고 나선다. 느긋이 커피를 마시고, 아침 7시가 지나서 나가는 날이 좋은 날이다.  4월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데, 영상을 겨우 넘은 추운 날씨이다.  공원에 도착에서 걸어가는데 바람이 차다.  코끝이 시리게 추웠던 날들이 지나가고, 코끝에 닿은 봄바람이 아직은 기분 좋은 차가움인 아침이다. 천천히 걸어서 공원 호수 앞에서 섰다. 긴 호흡으로 숨을 쉬어본다. 후~ 하~  후우~~ 하아~~ 후 우우~~~ 하아아 ~~~ 고작 10초 남짓한 시간을 숨을 쉬었을 뿐인데 세상이 여유로워 보인다. 하늘은 맑고 깊었고, 구름은 그 깊음 과 넓음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멋스럽게 걸쳐져 있었다. 카펫 구름 모양이라는 구름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드랍고 푹신한 하얀 카펫이 깔려있는 것 같은 그런 구름이 걸려있는 하늘이다. 달리기 시작하기 전 찰나의 물 멍, 오늘도 좋다. 카메라 안의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어 보아도  그 마법 같은 황홀함을 다 담아내기는 부족하다. 


오늘도 달리기를 시작한다. 항상 그렇듯이 시작은 같다. 천천히 시작한다. 감사하다. 오늘을 시작한다.  


저번 주 토요일 이후, 몇 번의 봄비 이후 파릇파릇 나무들의 색깔이 변해가고 있었고, 노란색, 하얀색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바람에 흔들 걸리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꽃이 피어난 걸까?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뿐일 텐데... 못 보고 놓치고 지나갈 뻔했다. 


마지막 1마일 정도를 남겨 두고  달려가는데 앞에 빨간 재킷 입고 걸어가시는 낯설지 않은 뒷모습의 할아버지 두 분이 보인다. 작년 마라톤을 트레이닝할 때, 아침 7시에 나와서 뛰면 만나는 할아버지들이었다.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며 반가움에 혼자 신이 나서 달려간다. 굿모닝 ~ 하며 지나가는데, 할아버지들 너 아직도 뛰고 있네, 마라톤 트레이닝한다고 하더니 잘 달렸냐고 물어보신다. 보통 그냥 그렇게 짧은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달리던 길을 멈추고, 할아버지들의 발걸음을 맞혀서 걷기 시작했다. 다들 백신 맞으셨어요? 건강하셨죠?라고 질문을 했다. 그럼 우리 백신 다 맞았지. 오랜만에 다시 봐서 반가워요. 너도 여전히 달리고 있구나. 


할아버지 한분이 말씀하신다. 지금은 걷고 있는 이곳을 셀 수 없이 달렸었지... 음 나는 1985년? 난 1990년 인가?부터 였을 거야.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왔다가 이 공원을 오기 시작했지... 한 번은 달려서 이 친구를 따라잡았었지. 그렇게 우리가 이곳에서 달리면서 만났지. 그리고 우린 필라델피아 마라톤도 같이 달렸고, 하프 마라톤, 여러 종류의 레이스를 같이 많이 달렸지. 이 친구는 뉴욕 마라톤도 달렸었어.  지금은 발목이 안 좋아서 이렇게 토요일 아침마다 같이 걷고 있지...


그렇게 할아버지들과 얘기를 하고 걷고, 다시 뛰어 돌아갔다. 걷기 시작한 곳에서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30년도 넘는 시간을 지나 이곳을 지켜 오신 분들이다. 30년 전 이곳은 어땠을까? 앞으로 30년 후 이곳의 모습은 어떠할까? 상상해봤다. 이곳에서 나도 걷고 있을까?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이 감사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시간에 나와서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다. 모두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매주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Timeless.  빠르게 변하고, 변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질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들이 되고 싶다. 그렇게 좋은 것들로 시간이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이 느껴지듯, 첫 마라톤을 준비하던 여름은, 작년 여름이라고 이름이 바뀌었고, 가을에 마라톤을 달렸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그리고 또 약속이나 한 듯 토요일 아침 7시 즈음에 나와서 각자의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걷고, 달리고, 달리고 걷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나눈다.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걷기 시작하고, 달리는 법을 배우고, 넘어져 보기도 하고, 일어나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잘 넘어지는 법도, 잘 일어나는 법도 배우면서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한걸음을 때는 것조차 불안정하던 시간을 건너와 흔들리지 않고 걷는 날을 지나 이제는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언제나 넘어질 수 있고, 언제나 다칠 수 있고, 언제나 달리지 못할 수도 있는 날은 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달리고 시작한다. 지금 건강히 달릴 수 있는 오늘이기에... 


2021년 4월 17일 - 6.24 miles; 8'53"; 55분 22초 





매거진의 이전글 막다른 길일지라도 달려가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