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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May 31. 2021

비가 오면비가오는 데로...

5.29.2021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인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미국의 현충일 주말이다. 작년 주말의 사진은 뽀송뽀송 구름에 파란 하늘, 여름이 시작되는 듯 보였다. 이번 주말은 매매 비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데, 왠지 모르게 나쁘지 않다. 


금요일 오후부터 하루 종일 내린 비는, 토요일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다. 매일 토요일 아침 10km를 달리며 시작하는데, 밤새 비가 와서 축축한 아침, 오늘은 안에서 걷기로 한다. 어, 느리게 걷는 것 쉽지 않다. 집중을 해서 의도적으로 느리게 걷는 것이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30분을 가까스로 채웠다. 익숙한 것을 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 가끔씩 이렇게 리듬을 바꿔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비가 오고 그래서, 아침부터 냉장고를 털어본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만들고 싶다고 했던 딸기청을 만들기로 했다. 딸기청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쓸 때가 많다. 딸기 우유도 만들고, 아이스크림, 스콘이나 케이크, 이곳저곳에 휘핑크림과 둘러 주면 멋진 디저트가 된다. 지금 제철 과일인 딸기로 만든 달콤함, 아이들은 신이 난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신이 난다. 


흐르는 물에 식초를 적당히 뿌리고 딸기를 잘 씻어준다. 그리도 적당히 나눠 준다. 자기가 먹을걸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에 신이 나서, 집중한 입을 하고 딸기를 챱챱챱 자른다. 아주 귀여워 죽겠다. 엄마는 막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는다. 비 오는 아침 나쁘지 않다. 아니, 생각보다 아주 좋다. 


비가 오고 그래서, 어제저녁부터 내리던 비처럼, 자연스럽게 어제저녁부터 마시던 레드와인을 따라 마신다. 점심이라서 냉장고를 다시 열어 봤다. 당근이 많다. 당근이랑 계란이 듬뿍 들어간 김밥을 만들어야겠다. 

야채도 많이 먹이고 싶고, 프로틴 가득한 키토 김밥을 만들어 먹이고 싶지만, 짭조름한 아는 맛 스팸은 포기할 수 없다. 레드 와인 때문이 었는지, 그 중요한 단무지를 까먹고 열심히 싼 김밥들을 보고, 남편은 조용히 냉장고 안에 있던 단무지를 잘라서 썰어진 김밥 위에 올려준다. 그리고 라면을 끓여준다. 김밥엔 라면이지... 오늘 정말 막 나가는데... 김밥에, 라면에 레드와인 까지... 비가 오는 토요일 이 뭐라고 이러고 있다. 


어... 큰일이다. 비가 멈췄다. 한 시간, 두 시간... 비가 그친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진다. 나에게 더 이상 비가 오는 토요일이라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주섬 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비가 오고 나서 온도가 떨어져서 인지 공기가 차갑다.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는 달리기의 시작이다. 아침부터 차곡차곡 먹은  브런치, 스팸 가득 김밥, Sodium 가득한 라면 그리고 아주 후한 마음으로 가득가득 따라 마셨던 레드와인이 어우러진 무거운 몸을 움직여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오래 달리기는 공복에 하기로... 보통 달리러 나오는 아침에 12시간 정도 지난 저녁런. 축축하고 구름 가득한 날씨여서 인지 한산한 공원이다. 그래도 좋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달리러 나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밑줄을 그었던 문장 중에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걸.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 그런 여러 가지 흔해 빠진 일들이 쌓여서 - 지금 여기에 있다."  나도 그렇게 달리기를 하면서 지금 여기에 있다. 오늘도 오늘을 내가 살아낼 수 있는 만큼만 산다. 


오늘은 달리고 시작하는 아침이 아닌, 오늘을 달리고 끝내는 저녁이다. 비록 비가 하루 종일 올 거라는 일기예보는 틀렸지만, 오늘 또 이렇게 달릴 수 있었어 좋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또 비가 그치면 비가 그치는 데로 내가 계획되로 되지 않는 일상일 지라도 나는 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오늘 생각보다 좋았던 하루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좋았다. 


10km 1:00:17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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