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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Aug 30. 2021

비가 오는 바람에...

8월의 마지막 주 : 하프마라톤 레이스 트레이닝

억... 소리가 나는 아침이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는다. 밝은 것 보니 아침인가 보다. 무겁고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더 무거운 두통을 잠재우러 키친으로 내려가 타이레놀을 급하게 복용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도 가능한 동선을 움직이며 아침을 켜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드르륵드르륵 원두커피를 갈아 후루룩 프렌치 프레스에 옮겨 담고,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린다. 정신이 더 말짱해지면서 두통이 계속되기 전에, 타이레놀이 분해되는 시간이, 내 정신이 말짱해져 두통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시간보다 빠르기를 기대해 보며 주말 아침에 커피를 들이켠다. 카페인 금단 두통 일수도 있게 다는 생각에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어제 비가 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달렸던 하프 마라톤 레이스의 후유증이 최고조인 일요일 아침이다. 뻐근하게 뭉쳐있는 종아리를 마사지에 넣고 멍 때리며 커피를 마시며 어제 아침을 생각하는데, 피식 웃음이 난다.

만약 또 그 상황이었더라도 앞뒤 생각 안 하고 달렸을 테니...


토요일 아침 달리기는 주말을 시작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내가 정해 놓은 언제나 깨질 수 있는 건강한 루틴이다. 내가 나를 위해 정한 루틴이 부담스러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중 아침에도 달리기를 하지만, 주말 달리기가 더 특별한 이유는 시간 구애 없이 제일 편안한 곳에서 그저 달리기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Peace Valley Park

싱가포르에서 잠시 살다 돌아온 여름부터 주말마다 이곳을 달리고 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같은 곳에서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데 매주 다른 나를 만난다. 이번 주 주말처럼...


필라 델피아 하프마라톤 까지는 4 주 남았고, 뉴욕 마라톤 까지는 10 주 정도 남은 상황이다.

20km를 달려야 하는 날이다. 아침에 비가 올 확률 50%이라고 날씨를 예보한다. 그렇다면, 비가 오지 않은 확률도 50% 이기에, 달리기가 끝날 때쯤 비가 오길 바라는 기대를 하면서 아직은 비가 오기 전 구름이 잔뜩 물고 있는 어두운 하늘을 위로하고 꾸물 거리며 나선다.  


집을 나올 때 보다 밝아진 아침 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아주 습한 아침이다. '긴 바지  괜히 입고 나왔어. 짧은 바지를 하나 챙겨 올걸...' 후회가 밀려온다. 더운 날 달릴 때 온도보다 10도 (화씨) 높게 생각을 하고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어두웠던 아침에 생각보다 선선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긴바지를 입고 나와 버렸다. 다음에 더 좋은 선택을 하면 되지...


평소처럼 나이키 앱을 켜서 20 km을 달리려는데 몇 번이나 다운로드가 되지 않는다. '아, 비가 오기 전에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이 급한데, 왜 이건 안 되는 거야?'  거리는 비슷할 테니 하프 마라톤 레이스 가이드 런을 켠다.  20km 나 21.1km  뭐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갈 길이 멀다. 일단 달리기를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직 20km가 내 앞에 있다. 천천히 나의 페이스를 찾아 달리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오르막길이 나온다. 매주 지나가지만 매주 쉽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동안 만나는 오르막길 매번 지나 가지만 쉬어지지 않는다 때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올라간다. 올라가야만 지나가 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한발 한 발을 내디뎌 나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 이 나의 노하우 라면 노하우 겠다. 오르막길을 따라 나오는 내리막길의 페이스가 더 중요하다. 너무 빨리 달려 나가질 않기, 겨우 1/4 거리를  달려온 거리다.  호흡을 가다듬고 페이스를 유지해서 10km를 달렸다.


10km 달리고 나니 몸도 마음도 풀려서 처음 달릴 때 보다 호흡이 안정적이다. 15 km을 달려 나가는데 굵은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달리기가 끝나고 내려주기를 기도 했는데, 아... 아쉽다. 빗방울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에 갈려진 구간을 달리고 있어서, 비가 호수 물에 떨어지는 소리에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는 걸 알았다. 아직 6km 나 남았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왜 20km 런이 다운로드되지 않고 하프마라톤 레이스 런을 달리게 되었는지, 만약 20km 런이었다면,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긴 리커버리 런은 언제라도 멈출 수 있기에...


혼자 달리는 상황임에도, 하프마라톤 레이스를 시작했기에, 연습도 실전처럼 한다. 만약 실전 레이스 상황이었다면 비가 온다고 쉬지 않을 테고, 레이스를 그만두지도 않을 테니 그냥 준비한 데로 달린다. 비가 점점 세게 내려서 아이패드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절었다. 빗물로 가득한 운동화가 질퍽질퍽한 소리를 내며 무겁게 나아간다.  그 순간 나를 지나가는 러닝 그룹들도 비를 맞으며 달려간다.  앞에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 러닝 그룹이 달려가고 있다. 선두를 따라 12 명정도 줄을 지어 달려간다. 그들과 거리를 좁혀 달려간다. 비는 점점 세게 오는데 앞에서 달리고 있던 러닝 팩이 없었더라면, 정말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비가 와도 달린다.'라는 말은 아무리 달려도 너무 어렵다. '달리고 있는데 비가 와서 열심히 끝까지 달렸다.'였다.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 앞으로 달려갈 거리가 달려온 거리보다 짧았기에 돌아갈 수 없었고, 걷는 것보다 달리는 게 세차게 내리는 비를 덜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비가 와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Good Job!

빗속을 달리면서 옆에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Good Job. 굿잡. 어쩜 내가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 었을지도 모르겠다. You too. 너도 하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대답도 중요하지 않다, 다들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빗속을 달리고 있었으니...


끝까지 달려서 들어왔다.  

21.10 km 2시간 13 6'18 페이스 

비가 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달려들어 하프 마라톤 거리를 달렸다. 첫 프린스턴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면 달렸던 날들과 확연히 달랐지만, 오늘도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오늘을 달렸다.


타이레놀과 카페인이 적절히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보다 이제  이상 두통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두득 두드득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아직은 뻣뻣한 팔과 다리를 쭉쭉 스트레칭을 시켜준다. 그리고  마음도 슬슬 깨워준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다.

#우중런 #하프마라톤트레이닝 @Seina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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